우리는 왜 우울할까 - 멜랑콜리로 읽는 우울증 심리학
대리언 리더 지음, 우달임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간만에 읽는 지루한 책.

잘 읽어 보려고 두 번이나 봤는데도 크게 와 닿지가 않았다.

정신분석에 관련된 책이었다면 안 봤을텐데...

어쩐지 나는 이런 무의식의 세계가 모호하고 말 가져다 붙이기 같은 느낌이 들어 거부감이 일어난다.

나는 책에서 비판하는 인지행동치료를 더 선호한다.

저자는 우울증의 내면에 깔린 무의식의 세계를 분석해야 한다는데 사례로 드는 상황들이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나 역시 정신분석을 받아볼까 생각해 본 적은 가끔 있다.

기본적으로 나는 감정 변화가 심한 편이고 어떤 면에서는 양극성 장애가 아닐까 가끔 생각하기 때문에 내면에 숨겨져 있는 컴플렉스나 억압된 기제를 터뜨리면 좀 더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인간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늘 품고 있기 때문이다.

 

애도와 멜랑콜리아의 차이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데, 애도는 상실의 슬픔을 이겨내는 과정이고 멜랑콜리아는 상실을 안고 산다고 할 수 있겠다.

멜랑콜리아가 막연히 우울증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만성 우울증과는 좀 다른 정신 상태인 것 같다.

확실히 이런 진단명이 붙은 사람들은 정상적인 감정 상태는 아닌 것 같다.

왜나면 이들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들을 쉽게 공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약물적 치료를 선호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정신분석으로 병적인 정신 상태를 바꿀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프로작 남용에 대해 서문에서부터 비판하지만 프로작 같은 항우울제야 말로 정신병이나 우울증 등을 하나의 병적 상태로 인정해 주고 진정한 치료법을 제공해 준 해결책이라 보는 쪽이라 책을 읽는 내내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다만 애도 반응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

가까운 이를 잃는다는 것, 이를테면 자식이나 배우자, 혹은 부모를 잃은 슬픔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대해 자세히 논하고 있는데 나 역시 최근에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이런 과정을 겪었다.

엄마가 직장인이었기 때문에 할머니는 엄마 대신이었고 엄마에게 느끼는 애착을 나는 할머니에게 느꼈었다.

엄마나 아빠는 나를 위해 죽을 수 없어도 할머니는 나를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에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나는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게 될 줄 알았다.

그래서 한동안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순간순간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와 혼자 울 때가 많았고 삶이 허망하고 우울한 감정을 많이 느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자연스럽게 그런 감정들이 옅어지면서 이제는 할머니를 떠올려도 감정 기복이 크지 않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잊혀져 가는 것이 정상적인 애도 반응인데 멜랑콜리아의 경우는 상실의 슬픔을 안고 사는 경우로 끝없는 죄책감과 자책감에 시달린다.

망자와 헤어지지 않고 망자와 함께 사는 것이다.

가끔 TV에 죽은 배우자의 무덤을 매일 찾아 보고 심지어 가상의 전화통화까지 하는 사람들이 소개되는데 이것이야말로 멜랑콜리아의 전형이라는 생각이 든다.

거창한 장례의식을 행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러니 인간의 모든 행위에는 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왜 고대인들도 무덤을 만들고 그 무덤 조성에 수많은 노력을 쏟았는지 알 것 같다.

단순히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기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망자와의 헤어짐으로 얻게 되는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한 과정이었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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