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토드 부크홀츠 지음, 이승환 옮김 / 김영사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유시민의 경제학 까페"에 이어 두 번째로 읽는 경제 에세이다

오래 전에 추천받은 책인데 이제서야 읽는다

그 때가 대학 막 입학했을 때니까, 벌써 10여년 가까이 된 셈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서점 한 구석을 차지하는 걸 보면, 아직도 빛이 바래지 않는 좋은 책인 것 같다

원저는 1989년에 나온 것이라, 러시아 대신 소련이 나오고 공산주의의 미래에 대한 예측도 들어 있으며 주로 레이건 시대 얘기다

(아버지 부시도 부통령으로 등장한다)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 같지만, 애덤 스미스부터 시작해 훌륭한 경제학자들의 이론이 여전히 우리 생활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제목처럼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인 셈이다

 

흔히 경제학은 쓸모없는 학문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저자도 지적했지만 경제에 대해 그렇게 잘 안다면 돈을 한 번 벌어보라는 비웃음을 당하기 십상이다

불행히도 웃음거리를 모면할 수 있는 경제학자는 리카도와 케인스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고 한다

학문적으로는 뛰어난 업적을 쌓은 학자들도 실제 경제 행위에 있어서는 이윤을 얻는데 실패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경제학이란 돈 벌기 위한 학문이 아니라 국가의 경제 정책을 세우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부동산 투기를 연구하는 게 빠를 것이다

경제와 경영은 다른 학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 경제에 별 도움이 안 되는 학문이라 비웃지만, 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주위의 모든 정책들은 바로 이 석학들의 이론을 도입한 것이다

그들의 위대한 이론에도 불구하고 늘 경제가 휘청거리는 원인을, 경제학자들은 정치가에게서 찾는다

정치가들이 경제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란 것이다

 

애덤 스미스의 말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내가 빵을 먹는 것은 농부의 자비가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한 그의 이기심 때문이므로 나는 농부에게 감사해야 할 이유가 없다"일 것이다

어린 시절 유치원에서부터 식사하기 전 이 음식을 먹을 수 있게 고생한 농부 아저씨들에게 감사하라는 말을 듣고 자란 나로서는, 스미스의 주장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어렸을 때는 역시 서양 사람들은 개인주의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좀 커서 살펴 보니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스미스의 주장대로 농부는 자기 이익을 위해 곡식을 제배하고, 또 나는 내 이익을 위해 값을 지불하고 그것을 살 뿐이다

여기에 자비나 선행의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스미스는 각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생산 활동을 열심히 하면 "보이지 않는 손"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조절해 줄 거라 믿었다

지금이야 완전 시장 경제의 문제점을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적어도 보호 무역으로 일관하던 18세기 영국에서는 센세이션한 얘기였을 것이다

 

사실 수입품에 대해 높은 관세를 매기는 정책은 국내 산업을 보호한다고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상당한 손해를 보는 셈이다

국산품을 애용하라는 애국심에 기댄 구호들을 지키다 보면, 소비자들은 질이 떨어지는 상품을 비싼 값에 사야 한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한 나라 경제 수준은 금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재화가 얼마나 되느냐로 측정된다고 했다

그렇게 따지면 국산품이든 외제품이든 가격이 싸고 품질이 좋은 제품을 구입하는 게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다

관세 장벽이 허물어지고 재화의 유통이 자유로운 시대가 소비자에게는 가장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

 

경제학자들의 기본적인 생각은 돈이 유동되면 될수록 모두가 부유해진다는 것이다

스미스는 이런 예를 든다

링컨 대통령이 영국제 버버리 코트와 미국 코트 중 애국심을 생각해 미국 것을 산다

그러면 그 돈은 단지 미국 상인에게만 지불될 뿐이고, 링컨은 품질이 떨어지는 것을 입게 된다

그런데 영국 코트를 사면 미국 달러를 지불하므로 영국 상인이 돈을 벌고, 그 상인은 은행에서 다시 영국돈으로 바꿀 것이므로 은행은 달러를 벌게 된다

은행이 이 달러를 다른 사업에 투자하면 부가가치가 발생한다

링컨은 같은 값으로 더 좋은 코트를 입게 된다

이처럼 국산품을 사는 게 애국이 아니라, 질 좋은 물건을 낮은 가격에 사는 합리적인 행동이 결국 모두를 부유하게 만든다

 

고등학교 경제 시간에 배우던 여러 이론들의 창안자들이 등장해 흥미로웠다

이 책을 먼저 읽었으면 경제 시간에 졸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가장 어려웠던 이론이 비교우위론인데, 이것을 창안한 사람이 리카도다

스미스가 절대 우위론을 주장해 국내 제품보다 생산비가 적게 드는 외국 제품만 수입하라고 한 반면, 리카도는 비교 우위론을 내세워 모든 물품들은 다 교역의 대상이 되야 한다고 했다

경제학 시간에도 나온 유명한 로빈슨 크룻 얘기가 등장한다

로빈슨이 그의 충복 프라이데이와 무인도에 갇히는데, 로빈슨은 오두막을 짓고 물고기 잡는데 프라이데이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스미스 이론을 적용하면 두 가지 다 프라이데이가 앞섬으로 로빈슨과 교역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리카도에 따르면, 로빈슨은 프라이데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오두막 짓기 보다 물고기 잡는데 시간이 덜 걸리므로 로빈슨은 물고기만 잡고 프라이데이는 오두막만 지어 서로 교역하는 게 둘 다에게 유리하다

즉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할지라도, 상대적으로 생산비가 적게 되는 일에 집중한 후 교역하는 쪽이 아예 무역을 안 하는 것보다 낫다는 얘기다

이 비교우위론은 꽤나 어려운 문제라(문제집에 나오면 자주 틀렸다) 리카도는 국회에서 정치가들을 이해시키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경제 시간에 배웠던 것들 중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용어는 "수정 자본주의"다

애덤 스미스-국부론, 케인스-수정 자본주의, 이런 식으로 외웠던 것 같다

케인스는 한계 효용으로 유명한 마셜의 제자인데, 뛰어난 천재였다고 한다

19세기만 해도 전문화가 덜 된 시점이라 케인스는 자신의 천재성을 드러내는 여러 학문 중 하나로 경제학을 택했다

그는 애덤 스미스의 완전 방임주의가 내포한 모순점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라는 중재자 내지는 구원자를 등장시킨다

즉 불경기가 오면 수요를 촉진시키기 위해 공공 사업 등을 통해 정부가 투자를 하라는 것이다

케인스의 조언을 받아 들인 정책이 루즈벨트의 그 유명한 뉴딜 정책이다

세계 공황 이후 미국은 정부가 나서 일자리를 창출하므로써 경기를 활성화 시켰다

오늘날도 케인스의 수정 자본주의는 각 정부의 기본 정책으로 받아 들여진다

 

그런데 케인스는 정부 관료들의 이기심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빅토리아풍의 학자였던 케인스는 정부 관료들이 양심껏 정책을 수행하리가 믿었다

불행히도 양심적인 관료를 드물었다

기업과 결탁해 다수 소비자의 이익을 무시하는 정책들이 속속 발표되면서, 뷰캐넌을 위시한 공공학파가 등장한다

관료들 역시 자신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합리적인 인간에 불과하므로, 국가에 지나친 권력을 줘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 때 등장한 새로운 개념이 "합리적인 무시"다

정부의 부정 행위를 감시하는데 100만원이 드는데 비해, 그 부정을 바로잡아 얻는 내 개인의 이익은 2원에 불과하다면 감시하는 것보다 부정을 눈감아 주는 게 훨씬 합리적일 것이다

다수보다 소수 이익집단이 언제나 로비에 성공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소수 이익집단은 정책이 시행될 경우 얻게 될 혜택을 나눠 가질 사람이 적기 때문에 한 사람에게 돌아올 몫도 커진다

그러므로 그들은 끊임없이 정치가를 어르고 달래면서 수억원을 들여 로비를 펼친다

 

결국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정부는 특별히 도덕적이지도, 악하지도 않은 그저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일 뿐이라는 얘기다

그러므로 정부에 지나친 기대를 건 케인스의 이론은 어느 정도 수정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불경기를 타개해야 할까?

밀턴 프리드먼은 통화량을 조절하라고 제안한다

불경기가 되서 돈이 안 돌면 중앙은행이 채권을 매입하므로써 민간의 통화량을 늘린다

사람들은 필요 이상의 유동성을 원치 않으므로 소비재 투자재를 구입할 것이다

반면 호경기가 되서 돈이 지나치제 많이 유통되면 중앙은행은 채권을 매각해 통화량을 줄인다

마찬가지로 일정 수준의 유동성을 유지하길 원하므로 사람들은 소비를 줄일 것이다

프리드먼은 정부 대신 통화량 조절을 통한 중앙은행의 조절을 강조했다

 

또다른 재밌는 개념으로는 마셜의 "한계효용"과 베블런의 "현시적 소비"가 있다

한계효용이란 예를 들어 요플레 한 개가 1000원의 만족감을 준다면 두 개는 9백원, 세 개는 6백원, 네 개는 300원, 이런 식으로 계속 떨어질 것이다

요플레 가격이 310원이라면 세 개를 사는 게 합리적이다

만약 네 개를 사면 310원을 지불하는데 비해, 한계효용은 300원이므로 10원의 손해를 본다

이처럼 소비자는 한계효용과 한계비용, 즉 가격을 비교하면서 사므로 값을 내리면 수요가 늘고, 값을 올리면 수요가 줄게 된다

이것이 유명한 수요의 법칙이다

또 만약 대체제가 있거나 의료처럼 가격에 비해 수요가 비탄력적인 분야는 얘기가 달라진다

 

베블런은 욕구(want)와 필요(need)를 구분했는데, 유한 계급의 경우 보이기 위한 현시적 소비와 레져를 즐긴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돈이 있으므로 남과 다르게 보이기 위해 필요 이상의 돈을 지불한다는 얘기다

캘빈 클라인의 청바지를 고가로 구입하는 이유는 다른 청바지에 비해 질이 좋아서가 아니라, 상표가 주는 네임 벨류 때문에 비싸게 산다

"빽튜더 퓨처"를 보면 1950년대 소녀가 미래에서 온 소년의 이름을 캘빈으로 추측하는 장면이 나온다

바지 뒤에 캘빈 클라인 로고가 박혀 있기 때문이다

광고는 우리에게 필요 이상의 비싼 소비를 부추긴다

아마도 19세기의 천재 경제학자들에게 광고 효과까지 고려하라고 주문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여러 경제학자들의 빛나는 이론들을 읽으면서 경제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학문이 아니라, 인류 복지를 어떻게 향상시킬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임을 느낄 수 있었다

경제학자들이 이론만 늘어 놓을 뿐 제대로 된 예측을 한 적이 없다는 불평은 현대의 불확실성에 비추면 무리한 비판일 것이다

저자도 지적한 바와 같이 시대는 급변하고 있으므로 부모는 자식에게 확실성을 어떻게 추구할 것인가 대신, 불확실성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가르쳐야 할 것이다

어쨌든 인류는 끊임없이 진보해 왔고, 과거보다 살기 좋아진 것만은 확실하다

(비록 정신적으로는 복잡해졌다 할지라도 말이다)

인간의 이윤 추구 동기를 무시한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공산주의 국가의 해체로 완전히 실패했고, 인구 폭발로 인한 식량난을 우려했던 멜서스의 인구론도 틀렸음이 입증됐다

경제학자들의 이론들이 끊임없이 재생산 되고 다듬어져, 또 정치가들이 그것을 정책에 잘 반영하여 조금씩 더 나아지는 일상을 기대해 본다

 

경제학의 기본 이론에 대해 풍부한 사례와 설명을 통해 자세히 기술되어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이다

특히 경제학자들에 대한 위트 넘치는 비판도 서슴치 않아 읽는 재미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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