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선공주의 사생활 - 조선 왕실의 은밀한 이야기
최향미 지음 / 북성재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국립중앙도서관에 갔다가 신간으로 꽂혀 있길래 얼른 읽었다.
<공주의 남자> 라는 드라마 때문에 나온 책 같다.
저자가 사학자가 아니라서 흥미 위주로 가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역사스페셜> 작가라는 타이틀답게 사료에 근거해 비교적 신뢰할 만한 내용으로 쓰여져 괜찮았다.
300 페이지가 못되는 짧은 분량이고 대부분 아는 내용이라 한 시간 반 정도에 다 읽었다.
서점에서 서서 읽어도 될 정도의 무게감이다.
워낙 공주에 대한 사료 자체가 적기 때문에 특별히 새로 기술된 내용은 없었다.
대부분 아는 내용이었지만 좀 더 정확히 알게 됐다고 할까?
태종의 청혼을 거부하여 관노로 전락한 선비 이야기는 알고는 있었는데 정확한 배경을 책에서 읽을 수 있었다.
후궁 제도가 정착되기 전이라 임금의 아이를 낳고 잠자리를 하더라도 정식으로 직첩을 주고 관직을 수여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이 선비는 아무리 임금의 서녀라 할지라도 어미의 신분이 미천하다고 청혼을 거절하는 호기를 보였는데 불같은 성격의 태종이 가만둘 리가 없다.
왕을 능멸한 죄를 물어 아비와 아들이 모두 관노로 떨어지고 이 일을 계기로 부마 간택을 법으로 확립했다고 한다.
남존여비 시대다 보니 아무리 왕의 사위라 할지라도 아녀자의 베필을 찾기 위해 사대부가의 자제들을 선본다는 것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태종 같은 강력한 왕권 소유자가 아니었다면 시행하기 어려웠을 법이다.
책에는 혼인을 거부당한 딸이 정신옹주이고 그 모친이 신빈 신씨인데 원경왕후의 몸종이었다고 나온다.
아마도 저자가 착각을 하지 않았나 싶다.
드라마의 소재로도 많이 이용된 이 스토리의 주인공은 신빈 신씨가 아니라 신빈 김씨이다.
신빈 신씨는 3남 7녀를 낳았고 원경왕후의 몸종이었다가 태종의 아이를 가진 여인은 신빈 김씨로 그 아들이 바로 경녕군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고향인 하의도에서 정명공주 후손들과 농민들 사이에 세금 분쟁이 붙은 얘기도 흥미로웠다.
정명공주는 선조가 32세나 어린 인목왕후에게 장가들어 얻은 딸로 금지옥엽으로 자랐으나 광해군이 왕위에 오른 후 어머니를 따라 서궁에 유폐되어 스무 살이 넘도록 혼인도 못하는 불행한 시절을 보낸다.
동생 영창대군은 적자라는 이유로 유배되어 사사됐으나 다행히 공주는 여자였기 때문에 살아 남아 인조반정을 맞이한다.
어머니 인목왕후는 스물 셋이라는 당시로 보면 너무나 늦은 나이에 시집가는 딸을 위해 무려 8천여결에 달하는 농토를 하사한다.
전국에 퍼진 이 땅의 넓이가 도성 넓이보다 더 컸고 하의도는 아예 섬 전체가 공주의 소유였다고 한다.
가엾은 딸을 위한 어머니의 애틋한 마음은 이해가 가나, 국가의 재산을 곧 왕가 개인의 것으로 생각하는 전제왕권 시절의 폐해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여기수 재밌는 것은 인조의 의심병이다.
인조는 반정을 통해 왕위에 오르고 병자호란이라는 국난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삼전도의 치욕을 당한다.
그 후로도 청이 자신을 폐위하고 볼모로 잡혀갔던 소현세자를 왕위에 앉히지 않을까 근심에 사로잡혀 아들을 독살했다는 오명을 쓴 임금이다.
귀국하자마자 죽은 가엾은 아들의 자식들과 며느리까지 저주 사건에 엮어 사사했던 이 비정하고 의심많은 임금은, 인목왕후가 사망했을 때도 그녀가 남긴 비단에 새 왕을 옹립하려 했다는 글이 쓰여 있다고 의심하였다고 한다.
반정의 명분이 서궁에 유폐된 대비를 구한다는 것도 있었기 때문에 신하들의 반대로 더 커지지는 않았으나 인조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시집 가서 잘 살고 있던 정명공주도 저주 사건에 휘말려 하마터면 옥사가 일 뻔 했으나 역시 최명길의 간곡한 만류로 넘어 갔다고 한다.
그런데 이 공주는 무려 83세까지 장수했고 홍주원과 혼인하여 7남 1녀를 낳아 다복하게 살았다.
어린 시절의 불행을 충분히 보상받은 셈이다.
중종의 서녀 효정옹주와 그 사위 조의정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 알았다.
중종 역시 무려 39년을 재위하면서 9남 11녀를 낳았는데 자녀들을 몹시 사랑했다고 한다.
효정옹주가 순원위 조의정에게 하가했는데 이 사위가 하필이면 난봉꾼이라 옹주의 몸종을 첩으로 삼고 속을 썼였다.
그런데도 옹주는 당시의 유가 법도를 잘 숙지했는지 사위를 불러 혼을 내는 아버지 중종을 늘 만류했다고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20대의 꽃다운 나이에 분만 도중 사망하고 만다.
이 와중에도 조의정은 귀양간 옹주의 몸종 풍가이를 불러 들여 사랑을 나눴으니 참으로 대책없는 남자다.
중종은 이번에는 반드시 사위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옥사를 일으켰으나 신하들의 반대로 결국 풍가이는 장을 맞고 풀려났으나 후에 괴한들에게 끌려가 변사체로 발견된다.
사주한 이는 놀랍게도 상궁 은대였다.
은대는 효정옹주의 이모로 또다른 조카인 정순옹주의 남편 송인이 얻은 첩에 대해서도 사사로운 복수를 했을 만큼 대범한 여인이었다.
중종은 자기 대신 딸의 복수를 해 준 은대를 보호하려 했으나 신하들의 반대로 유배보내는 선에서 그치고 긴 시간을 끈 이 사건이 마무리 되자 세상을 떴다고 하니 얼마나 지난한 일이었나 싶다.
드라마의 소재로 이용해도 괜찮을 것 같다.
실록의 기록이 워낙 방대하여 덜 알려진 공주들에 대해서도 조금씩 기사가 있는 걸 보면 앞으로도 컨텐츠는 무궁무진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