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완성 - 하버드대학교 ‘인생성장 보고서’ 그 두 번째 이야기
조지 베일런트 지음, 김한영 옮김 / 흐름출판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전작인 <행복의 조건> 을 인상깊게 읽어서 신간 나오자마자 바로 신청을 해서 읽었는데 음... 역시 구관이 명관.
<행복의 조건> 이 일종의 생애연구 보고서였다면 이 책은 오랜 연구 끝에 저자가 내린 결론을 정리한 건데 그래서인지 자료나 구체적 예시보다는 당위적인 주장이 많아 약간은 지루했다.
긍정의 힘, 류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해야 하나?
희망은 있다.
이기적인 유전자론에 너무 마음쓰지 말고 진화의 산물인 긍정적 감정들을 잘 유지하면 행복한 인생을 사는데 큰 도움이 된다.
과학적으로 입증이 됐다, 이게 요지.
그런데 어떻게 긍정적 감정들을 발전시키지?
거기까지 세세하게 알려 줄 수는 없는 걸까? 
나는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암도 낫는다, 뭐 이런 식의 주장을 일견 비웃어 왔고 플라시보 효과나 일시적 감정 해소에 불과하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제 엄청난 데이터를 가지고 과학적으로 긍정의 힘을 입증해 주니, 앞으로 생각의 방향을 바꾸긴 해야 할 것 같다. 

인상깊었던 대목을 좀 살펴 보면, 희망과 소원은 다르다는 것.
희망이 현실을 인정하고 미래에 대한 확신을 품는 것이라면, 그래서 현재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진정한 힘이라면 소원은 현실을 부정하고 막연하게 바라는 감정에 불과하다.
사고로 장애인이 됐는데 정상인처럼 살 수 있게 해달라고 하면 소원인데 예전처럼 살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지만 절망하지 않고 또다른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고 믿고 노력하는 것은 희망이다.
투사와 공감의 차이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나는 제일 마음에 들었던 대목이 종교적인 것과 영적인 것의 구분이었다.
생애연구에서도 노년에 행복한 사람이 반드시 종교적인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기독교적인 신을 믿지 않더라도 내면의 영적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훨씬 행복했다. 
오히려 배타적으로 기독교적 신을 찾는 사람이 편협하고 주변 사람과의 관계도 좋지 않았다. 
이런 사람들은 투사의 감정으로, 즉 내 감정을 남에게 투영시켜 보기 때문에 타인과 진정한 관계를 맺지 못한다.
반면 공감은, 타인의 감정을 내 것처럼 느끼기 때문에 타인과 진심어린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간다는 기독교도들이 바로 이 투사의 기법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다. 

저자는 용서를 하면 복수보다 삶이 훨씬 더 풍요로워진다고 했지만 이론으로는 알아도 실천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이지!
그 이유는 가해자로부터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으면서 내 자율권이 박탈되었기 때문에 처지를 바꾸어 가해자가 종속적인 입장이 되어 벌을 받게 되길 원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피해자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것은 주도권의 회복이다.
그래서 저자는, 강간범를 화학적으로 거세하는 것은 피해자에게 별 도움이 안 되지만, 분노의 밤과 같은 강간범 규탄 대회에 참가하는 것은 도움이 된다고 했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소년을 받아들여 양자로 삼은 어머니가 나오는데 과연 가능한 일일까 싶다.
이 정도의 고통까지 받아들일 수 있어야 진정한 용서니, 용서란 참으로 어려운 감정이다.
나는 끊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가족 중 한 명과 감정적으로 매우 얽혀 있는 상태이고 책을 읽으면서도 도저히 그 사람과는 화해할 수 없다,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을 계속 했다.
그러나 용서하지 않고 있는 나는 마음이 몹시 괴롭다.
정말로 용서는, 즉 마음에 완전히 지워 버리는 것은 당사자 보다 내 자신을 위해 유익한 일임에도 감정의 문제가 얽혀 있어 쉽지 않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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