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무덤벽화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모사도
국립중앙박물관 엮음 / 국립중앙박물관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난 뭐랄까, 고구려 벽화의 의의와 체계를 정리해 주는 그런 책인 줄 알았는데 모사도의 가치에 대해 설명한, 기대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방향의 책이었다.
사실 박물관에서 모사도 전시를 해도 너무 흐릿하고 선명하지가 않아 차라리 도판으로 세심하게 수정한 것이 낫지, 실제 벽화 상태 그대로의 모사도는 큰 감동이 없었다.
뭘 표현했는지 제대로 이해를 못했다고 할까?
그런데 이 책은, 일제 시대 문양 전문가인 오바 스네키치 등에 의한 실제 벽화 모사도의 의의와 가치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뤄 벽화에 대한 이해는 돕는데는 실패했다.
내 배경지식이 너무 부족하다고 해야 할까?
다만 이미 100 여년의 (최초 모사도는 1912년 그려짐) 역사를 가진 모사도가 벽화의 손상에 의해 단순히 그대로 그렸다는 수준을 넘어서 일종의 유물로 대접받아야 한다는 논고에는 적극 동의하는 바다.
2천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외부와의 접근이 차단된 채 그 모습을 유지해온 벽화가 근세에 발굴되면서 급속하게 손상되고 있는 시점에서 처음 발굴 당시 벽화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모사도의 가치는 새삼 강조할 게 없을 정도로 귀한 것 같다.
뒤의 논고에 보면, 일본은 원래 모사도의 전통이 있고, 페리 제독에 의한 개항 이후 전통 파괴 바람이 불었으나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민족이라는 개념을 정립시키기 위해 전통 복구에 열을 올리면서 모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고 한다.
오바 스네키치는 동경대 미대에 들어갔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 실용 미술 쪽으로 진로를 돌렸고 교수로 임용됐으나 총독부에서 모사를 의뢰받은 후 교수직도 버리고 30여 년을 조선 고분 모사에 몰두한 특이한 이력의 미술가다.
무엇보다 가치가 있는 것은, 수정이나 보완을 거치지 않고 가능한한 박리 상태까지 그대로 표현하려 애쓴 정확도에 있겠다.
얼마나 꼼꼼하게 모사를 했는지 현재 손상이 당시에 비해 얼마나 진행됐는지도 판독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장인정신은 높게 사야겠다.
당시 일본의 조선 고적 조사는 식민지 정책의 일환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아쉬운 점은 많으나 어쨌든 기록으로 꼼꼼히 남긴 점은 다행스런 일이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은, 고구려는 3세기부터 7세기까지 계속 무덤 벽화를 남겼는데 왜 신라나 백제에는 벽화가 없을까?
나라마다 장의 풍습이 달라서인가?
유독 고구려만 벽화가 있는 게 신기하다.
중국과 가장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인가?
처음 벽화가 나타나는 3세기 중반부터 5세기까지는 무용총처럼 생활 풍습을 많이 그렸고 5세기부터 6세기까지는 사신도와 장식도를 그렸고 마지막 시기에는 사신도만 그렸다는 걸 보면, 후반으로 갈수록 종교적 의미가 더해진 것 같다.
보통 프레스코화처럼 벽에 회칠을 하고 마르기 전에 밑그림을 그린 후 채색을 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물감이 떨어져 나가는데 강서 대묘, 중묘, 소묘 등은 화강암으로 된 벽 자체에 연백을 발라 그린 일종의 석벽화라 물감이 오래 유지된다고 한다.
통일이 되면 고구려 벽화들도 유명한 관광명소가 되지 않을까?
훼손 가능성 때문에 직접 들어가지는 못한다 해도 근처에 모형관 만들어서 관람할 수 있을 것 같다.
북한측의 학술 성과는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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