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의 기원
시라카와 시즈카 지음, 윤철규 옮김 / 이다미디어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다소 어렵고 그러나 또 가독성은 높았던, 갑골문과 금문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좋은 책.
한자에 대한 지식이 더 있었다면 훨씬 유용했을 것 같다.
한나라 때 허신이 쓴 <설문해자>의 내용 중에도 당대 관점으로 해석한 것이 많기 때문에 실제 한자의 기원과는 차이가 많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갑골문 등이 알려지기 전이라 한나라 사람들의 상식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제일 흔한 오해가 입 구口 자다.
입을 형상화 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갑골문에 따르면 이것은 제물을 바치는 그릇을 뜻한다.
글월 문文 같은 경우도 문신의 의미라고 한다.
저자는 한자를 은나라의 창작물이라고 본다.
은나라는 희생제의가 일상화된 제정일치의 국가였는데 점을 치고 그 결과를 기록하는 갑골문을 통해 왕의 권위를 신성시 했다.
점을 치고 해석하는 貞人 이 곧 왕을 의미하는데, 점 卜자와 조개 貝 를 합한 글자라는 게 신기하다.
또 개를 희생 제의로 바쳐 액운을 피했기 때문에 개 犬 자가 들어간 글자도 많다.
개가 인류 최초의 가축이었음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간다.
辛 같은 경우는 문신을 새긴다는 의미라 妾 이나 童 등에 그 의미가 남아 있다.
일종의 노예를 뜻했다는 것. 

은나라 사회가 제정일치였기 때문에 조상신을 섬기는 과정에서 동물 뿐 아니라 인신공양도 서슴치 않았는데 이 때 제물로 쓰이는 이들이 전쟁 포로, 즉 이민족이었다.
발목을 베는 월형이나 코를 베는 비형 같은 끔찍한 육체형은 바로 이런 희생제의 과정에서 이민족을 처리하는 방법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궁형 역시 가축을 도축하는 과정에서 지식을 얻었다.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수당 시대에 오면 이러한 육체형은 사라지고 흔히 알고 있는 5형, 즉 태형이나 장형, 도형 등으로 바뀐다.
어떤 의미에서는 일종의 인권 향상이었던 셈.
은나라 시대의 희생제의 관습을 읽으면서 자꾸 생각나는 게 고대 이스라엘이다.
시기도 비슷하고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섬기면서 가축을 잡아 제를 올렸듯 은나라에서도 조상신을 섬길 때 사람이나 동물을 바쳤다.
액운을 없애기 위해 높은 사람을 묻을 때는 단수장, 즉 사람의 목을 쳐서 그 머리 수십 구를 묻기도 했다.
고대 그리스의 신화 세계처럼 갑골문을 통해 밝혀지는 은나라 사회의 모습이 참으로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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