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림칠현, 빼어난 속물들
짜오지엔민 지음, 곽복선 옮김 / 푸른역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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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의외의 책이었다.
죽림칠현이라고 알려진 인물들이 은둔자인 줄만 알았는데 은둔자의 명성을 얻으려면 일단 관직에 나가야만 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이들이 실제 은둔자라기 보다는, 오히려 정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지식인들 사이에서 명성을 얻은 유명인사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하긴 그러니까 역사에 남아 1500여 년 전의 인물들을 내가 알고 있겠지만.
그렇다고 자극적인 책의 제목처럼 진짜 속물이라고 비판하는 건 아니다.
중국어 제목에는 속물이라는 단어는 없다.
번역하면서 좀 더 자극적인 제목을 붙인 셈. 

책의 특성을 살펴 보자면, 역사적 사실들 사이에서 행간을 읽고 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살펴 본 당대 인물들 이야기.
주인공들인 죽림칠현의 이야기도 재밌었지만, 사마씨 집안이 서진을 세우는 이야기가 더욱 흥미진진했다.
역시 나라를 개국한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보다.
능력 있으면 왕위 찬탈해서 금방 최고권력자의 자리에 오를 것 같지만, 수많은 대중들이 인정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
그래서 선양 형식을 취해 명분을 만들었던 모양이다.
일종의 여론 몰이라고 할까?
혜강과 완적, 산도 등이 자세한 기록을 남겨 주로 이들에게 초점을 맞췄다.
노장사상에 경도되어 무위자연을 추구했다고 하나 이들 역시 입신양명 하여 치국평천하를 이루고자 했던 보편적인 욕망의 소유자들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점잖은 지식인들이 예교의 전통에 맞춰 정치를 펼치기엔 너무나 어지러운 약육강식의 시대였으니, 위진남북조 시대의 혼란상을 온 몸으로 살아내야 했던 당시 선비들의 노력이 눈물겹다.
혜강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위나라 황실의 사위로 위나라 조정에 충성을 바치려고 했으나 이미 대세는 사마씨에게 넘어갔고,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는 명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속세를 떠나야 했다.
결국 사마소에게 사형당하고 마는 불운한 운명이었으나 그의 이름은 역사에 남았다. 

재밌는 사실은, 구품중정제와 위진 사회였다.
예전에는 대체 어떻게 천거만으로 사람을 뽑나 이해가 안 됐는데 책을 보니 당시 사회상이 이해된다.
과거제가 전면적으로 시행되기 전이었고, 명성을 얻는 것이 중요한 사회였기 때문에 이름을 얻으면 주변의 추천을 받아 관리에 오른다.
이 때 한 번에 관리직을 수락하면 명성을 크게 못 얻는다.
여러번 겸양의 뜻을 밝히고 유비가 삼고초려 하듯 애를 좀 태운 다음에 수락해야 가치가 올라간다.
오늘날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정치 현실인 셈...
효자와 청렴한 자를 추천해 관리로 선발했기 때문에 제 살을 베는 사람이 많아져 오히려 국가에서 금지시켰다는 에피소드는 참 씁쓰름 하다.
어떤 사회든 시대든 명분과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중국인이 직접 쓴 글을 읽으니 좀 더 생생하게 인물들이 살아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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