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낯설게 읽기
기호학연대 엮음 / 문경(문학과경계) / 2003년 10월
평점 :
품절


일단 미리 밝혀 둘 것은 아주 어려운 책이다

평범한 교양서를 읽는 수준의 나 정도 독자는 꽤나 헤맬 것이다

기호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어렵고 도상적이며 이론적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 소재가 대중 문화이기 때문에 선뜻 집어든 책인데, 절대 쉽게 읽히지 않는다

화려하게 저자들의 약력을 기술해 놓은 것만 봐도 슬쩍 기가 죽는다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꼼꼼하게 다 읽은 건 아니다

어려워서 이해가 안 가는 부분들도 있었고, 지나치게 이론화 되어 실제적인 의미가 퇴색된 것 같다는 반발심이 드는 부분도 있었다

다만 책을 읽은 이상 어느 정도의 감상은 있게 마련이라 몇 자 짤막하게 적는다

 

누구나 흔히 알고 있는 것이지만, 광고는 늘 대중을 속인다

정우성과 고소영이 나오는 삼성 카드 광고에 사용된 소품들이 얼마나 비싼 것인가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우성이 타는 벤츠 자전거가 소형 자동차 한 대 값이라니, 다른 건 말 안 해도 알 만 하다

정우성은 대표적인 보보스 족으로 그려지는데 광고 기획 당시 월 300만원 정도는 저축이나 일상 생활에 상관없이 순수하게 레저 비용에만 쏟아 부을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진 사람으로 설정했다고 한다

한 달에 300만원을 버는 사람도 시청자들의 다수가 아닌 마당에 순수 레저 비용으로 쓸 사람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 카드를 쓰면 당신도 정우성처럼 멋지게 보일 수 있다고 광고는 부추긴다

 

대한민국 1%가 타는 차라고 광고하는 렉스턴을 당신이 타면 바로 그 1%에 낄 수 있다고 속삭인다

광고는 끊임없이 당신을 강조한다

그저 수많은 익명의 소비자 중 한 명에 불과한 나를 콕 집어 "당신"이라고 명칭하면서 마치 한 개인을 위해 준비한 상품인 듯 선전한다

자본주의 경제를 대표하는 광고들의 본질을 파헤치는 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 같다

 

취화선에 대한 비판도 상당 부분 동의한다

저자는 절대 취화선을 깍아 내리려는 게 아니라고 강조하지만, 임권택 감독의 작품에 대해 할 말이 많은 건 분명하다

뭐, 그만큼 거장의 작품이기 때문에 이야기할 꺼리가 많은 것이기도 하겠지

취화선은 한국의 미를 세계에 알린 작품으로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까지 받았음에도 우리 관객에게 왜 외면당했는지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베를린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오아시스"가 흥행에 성공한 것과는 반대로 수상 소식이 알려져도 취화선은 여전히 관객들로부터 외면받았다

저자는 한국의 미를 알리기 위해 지나치게 영상에 집착한 나머지, 정작 배우들의 연기나 전체적인 서사 구조가 영상미에 묻혀 버렸다고 평한다

취화선은 예술가의 삶을 너무나 정형화 시키고 속된 말로 뻔한 이야기 이상의 의미를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영화를 안 봐서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사실 이런 느낌 때문에 안 보기도 했다

"서편제"에 대한 마광수의 비판에 상당 부분 동의했기 때문에 취화선 역시 끌리지가 않았다

 

마광수가 한참 문필을 날릴 때 (즐거운 사라로 연대에서 해직되기 이전) 지루하기 짝이 없는 영화일 뿐더러 엽기적이기까지 하다고 비판했다

딸의 득음을 위해 아버지가 딸의 눈을 멀게 하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발상이냐는 것이다

눈이 멀어야 득음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데, 본인이 선택하는 것도 아니고 아버지가 딸에게 장님이 될 것을 강요한다는 게 얼마나 어이없냐고 한탄한다

사실 나도 이 부분이 무척 마음에 안 들었는데, 나름대로 이름있는 교수가 비판하니까 대리 만족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신창원에 대한 언론의 부추김도 기호학적 의미로 설명된다

신창원을 이슈화 시키고 의적으로 둔갑시킨 것도 언론이고, 또 그 현상을 비판하는 것도 역시 언론이다

사실 언론의 이런 자극적이고 모순적인 행태는 (이슈를 만들고, 다시 그것을 비판함으로써 기사를 만들어 내는 행위) 스포츠 신문 등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유력 일간지라 해도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여러 예를 통해 보여 준다

미군 병사들이 이라크인들에게 구호품을 나눠 주는 사진을 실으면 독자들은 은연 중에 전쟁의 당위에 대해 동의하게 되고, 반대로 집을 잃고 헤매는 아이들의 사진을 실으면 반감을 품게 된다

즉 언론이 어떤 사건과 사진을 택하고, 어떤 식으로 기술하느냐에 따라 여론의 행방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대중들이 특정 집단에 끌려 갈 만큼 어리석은 것은 절대 아니라는 말도 빼 먹지 않는다

대중들은 설득 당하는 것 같으면서도, 나름대로의 취사 선택을 통해 원하는 문화를 양산한다고 한다

대중에게 선택받은 것들은 (밀리언 셀러 음반이라든가, 베스트 셀러가 되는 책들, 혹은 수백만이 본 영화 등등) 대중의 정서와 기호에 적합하기 때문에 선택받은 것이다

대중과 언론은 (혹은 지배층은) 끊임없는 상호 작용을 통해 지배적인 문화와 이념을 형성해 간다고 한다

확실히 인터넷 등을 통해 대중은 문화를 창출해 내고 있다

광고가 판을 치고 갈수록 언론의 힘이 세지는 21세기에 숨은 의미까지 간파하는 똑똑한 소비자 내지는 독자가 되기는 무척 어려운 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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