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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인간적 얼굴
프랑수아 베르나르 미셸 지음, 김남주 옮김 / 이끌리오 / 2001년 2월
평점 :
절판
그림에 관심을 가지면서 제일 먼저 좋아했던 화가가 고흐다
배낭 여행을 갔을 때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서 고흐의 "해바라기"를 직접 봤는데 (다른 그림과는 달리 유리관 안에 들어 있어 좀 서운하긴 했다) 그 강렬한 색채와 터치에 가슴이 쿵쾅거리는 경험을 한 뒤, 고흐의 그림에 푹 빠졌다
더구나 그는 대단히 극적인 삶을 산 화가로, 광기와 천재성이라는 주제에 단골로 등장한다
말년에 아를의 정신병원에서 그렸던 그림들은 고흐의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에, 자살로 마감한 그의 생은 더욱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책은 고흐가 죽기 전 20개월 동안, 그의 정신 상태를 분석했다
고갱과 함께 살다가 어느 날 발작을 일으켜 자신의 귀를 술집 창부에게 건네 준, 바로 그 엽기적인 사건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저자가 보는 관점은 고흐는 미치지 않았고, 다만 측두엽 간질과 우울증을 앓고 있을 뿐이었는데, 질병에 대해 무지한 당시 의사와 주변 사람들이 고흐를 자살로 몰고 갔다는 것이다
고흐의 정신 상태에 대해 분석한 글을 좋았지만, 논리의 비약이 너무 많아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특히 죽기 몇년 전 그를 치료한 세 명의 의사에 대해, 천재를 자살로 몰고 갈 만큼 형편없는 실력이었다고 질책하는 것은 지나치다
그 당시 의료 수준의 한계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문제들 아닐까?
푸로작 몇 알만 있으면 우울증 따위는 쉽게 털어 버릴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하지만, 정신 병리가 과거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발달한 현대에도 우울증은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이다
더구나 고흐와 같은 열정과 광기를 가진 천재가 현대적인 정신 치료를 받는다고 해서 평범한 삶을 살았을지는 대단히 의문스럽다
고흐의 초상화에 등장하는 유명한 닥터 가셰나, (이 그림은 일본인에게 수백원 대의 최고가로 경매되는 신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닥터 레이, 혹은 닥터 페이트롱 등에 대해 저자는 그들의 학교 성적까지 들먹이며 천재를 돌보기에는 형편없는 실력이었다고 혹평한다
몇 년만에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박사 학위 통과 점수가 몇 점이었는가까지 조사한 집요함이라니!!
특히 죽기 직전에 그를 돌본 신경증 전문의 닥터 가셰는 본인이 신경증에 우울증 환자였기 때문에 고흐를 그저 실력있는 화가라고 인정해 줬을 뿐, 아무 치료도 하지 않은 채 방치해 뒀다고 비난한다
심지어 배에 총을 쏘고 자살한 날도 고흐를 방문한 후 아무런 치료도 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둬 이틀 뒤 패혈증으로 죽게 만들었기 때문에 (사실 이것은 다른 책에서도 언급되는 부분이다) 자살 방조 내지는 심지어 타살 혐의까지 있다고 비난한다
고흐네 가계도를 보면 우울증이 유전됨을 알 수 있다
평생 그의 생계를 책임진 동생 테오는 고흐가 자살한 뒤 6개월만에 역시 요양소에서 생을 마감했고, 여동생 빌헬민도 우울증으로 고생하다 요절했다
고흐의 이모나 어머니도 간질 발작과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또 그런 생각을 해 본다
비록 그런 정신 질환을 앓고 있을지라도 요즘처럼 고흐가 인정을 받았다면, 과연 자신의 귀를 자른다든가, 자살까지 가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생을 마감했을까?
고흐 같은 위대한 천재가 시대로부터 버림받는다면, 꼭 우울증 환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정상적인 성격을 유지하기 힘들 것 같다
당장 내일 먹을 빵을 걱정해야 할 정도이고, 가족도 없고, 동생에게 평생 얹혀 살며 열정적으로 그림 작업을 하나 겨우 단 한 장의 그림 밖에 팔 수 없는 처지라면 자살까지는 안 가더라도 평범한 성격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실 고흐는 세속적 성공이나 욕망과는 거리가 먼, 외롭고 험한 예술가의 길을 간 대표적인 화가다
그래서 고흐를 생각할 때마다 원래 예술가란 고독하고 외로운 것이다, 세속적 욕망에 초연한 가난한 삶을 사는 위대한 영혼이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다는 건 불가능한 일임을 새삼 느낀다
나는 늘 살아서 영광을 누리는 것과, 고흐처럼 죽어서 위대하게 평가되는 것 중 어떤 것이 진정한 행복인가에 대해 궁금했는데 양자택일 할 수는 없겠지만, 사는 동안 어떤 대우를 받는가도 대단히 중요한 문제임을 깨달았다
그 시대에 인정받지 못한 고흐는 위대한 천재를 알아보지 못한 시대에 산 불행한 예술가다
마을 사람들이 신변에 위협을 느끼기 때문에 격리 수용시켜 달라고 시장에게 청원한 후 정신 병원에 갇히게 된 빈센트의 심정은 어땠을까?
미친 사람들 속에서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끊임없이 주위 사람들은 물론 스스로에게도 증명해 보여야 하는 어이없는 현실 앞에서, 그나마 고흐가 그림으로 자신의 명료한 의식을 드러낸 건, 고흐 자신을 위해서나, 그의 예술을 감상하는 현시대인들을 위해서나 다행스런 일이다
저자는 측두엽 간질을 미친 것과는 구별되는, 감기와 같은 단순한 질환에 불과하다고 보는데 이게 옳은 의견인지 잘 모르겠다
측두엽 간질은 전신성 경련을 일으키지 않지만, 발작이 일어나면 살인을 저지르고도 본인이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학교에서 배울 때는 측두엽 간질 환자가 발작하면 미친 상태가 된다고 이해했는데 (낫을 들고 살해한 후 본인이 한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의 진단명은? 답=>측두엽 간질, 이런 식으로) 표면적인 이해에 불과해서 뭐라고 말은 못하겠다
그렇지만 저자 역시 정신 병리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
표면적이고 지엽적인 지식을 고흐라는 특정한 인물에게 적용시키기 위한 논리적 비약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우울증의 공격성이 자신을 향한다는 건 흔히 알려진 사실이다
고흐 역시 귀를 자른다거나 자살하는 식으로 내제된 분노를 스스로에게 떠트렸다
요즘 같으면 정신분열증이 아닌 이상 (사실 이런 경우일지라도) 수용소에 가두는 경우가 적은데, 고흐 시대에는 확실히 격리와 감금으로 정신병을 치료했음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고흐 자신이 스스로의 행동을 통제하지 못해 요양소 생활을 할 것을 원하기도 했다
시대에 의해 타살됐다는 저자의 마지막 결론은 도저히 수용하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