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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만든 사람들 - 나라를 위한 선비들의 맞대결
이성무 지음 / 청아출판사 / 2009년 11월
평점 :
작년에 도서관에 신청해 놓고 못 읽었던 책이다.
두 사람씩 비교하는 포맷은 다소 식상한 면이 없지 않으나 서점에서 얼핏 보기로는 비교적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것 같아 신간 신청을 했다.
열 네 명의 사람들을 비교했는데, 정도전과 이방원은 신권정치와 왕권정치로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특별히 새로울 것은 없었고, 조광조와 남곤, 최명길과 김상헌 등도 흔히 비교되는 인물들이라 별 감흥은 없었다.
새로운 인물 비교로는 류성룡과 이이, 송시열과 윤휴 정도?
사실 이이는 이기이원론 때문에 이황과 비교될 줄 알았다.
그런데 뜻밖에 이이를 류성룡과 비교해서 관점이 신선했다.
아마도 동인과 서인의 영수라는 측면에서 비교한 것 같은데 나이대도 다르고 특히 이이는 임진왜란 이전에 사망해 전쟁 당시 조정을 이끈 류성룡과 크게 비교될 만한 정쟁 같은 건 없는 편이다.
최명길이 인조에게 총애를 받았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최명길을 위시한 인조 반정 공신들이 후에 소론이 됐다고 한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최명길을 비롯한 주화파는 소론, 김상헌을 비롯한 척화파는 노론으로 가게 된다.
현실을 중시했던 주화파였던 만큼 주자학 보다는 양명학을 받아들였다.
예송논쟁이 현종 때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인조 때도 사친인 계운궁 사망시 인조의 상복 문제 때문에 나라가 시끄러웠다.
인조는 선조의 손자인데 왕통으로는 선조를 이었기 때문에 친어머니인 계운궁의 상을 당해도 3년복 대신 1년복만 입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예론의 대가인 김장생이다.
당연히 인조로서는 자신의 부모를 사친으로 대접하는 신하들의 이런 태도가 못마땅 했을 것이고, 아버지를 추존하고 싶어한다.
이런 문제 때문에 성종 역시 즉위 후 아버지 의경세자를 덕종으로 추존했다.
그런데 선조도 방계로 왕위를 계승했으니, 선조의 생모가 죽었을 때는 상복 문제를 어떻게 했을까?
선조 즉위 당시 아버지 덕흥군은 사망한 상태였으니 상관이 없겠으나, 어머니 하성대부인의 경우는 어땠는지 궁금하다.
선조 즉위 해에 사망한 걸로 되어 있는데 과연 어떤 식으로 상복 문제를 해결했을까?
따지고 보면 성종의 아버지는 세자의 신분으로 죽은 만큼 추존하는데 큰 무리가 없겠으나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은 왕통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으나 원종으로 추존할 때 얼마나 무리가 따랐을지 짐작이 간다.
더군다가 호란이 발생하여 나라의 존망이 걸린 때가 아닌가.
신하들과의 대립은 차치하고서라도 추존하는데 따르는 온갖 복잡한 절차와 비용 등은 또 어떻게 감당을 했을까?
최명길은 인조의 마음을 십분 헤아려 추숭 사업에 동조하는 입장이라 신임이 각벽했다고 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가장 적극적인 주화파였던 최명길은 명나라와 내통한다는 무고를 받고 삼전도비를 훼손시켰다는 죄목으로 끌려간 김상헌과 함께 무려 4년의 시간을 심양의 감옥에서 보낸다.
김상헌은 최명길 보다 나이가 10여 세 윗세대다.
함께 갇혀 있으면서 김상헌이 단지 이름을 얻기 위해 척화를 주장한 게 아니라 진심으로 춘추의리를 따르고 있음을 깨닫고 그의 인품을 존경했다고 한다.
김종성의 책 <한국 인물사 통찰> 에서 김상헌의 척화 주장을 두고 그럴 듯한 말로 포장해 실은 죽고 싶은 마음은 눈꼽만큼도 없고 청의 심문에도 교묘하게 빠져 나왔다고 비아냥 거렸는데 후대 사람의 이런 가벼운 시선 보다는 당대인인 최명길의 평가가 훨씬 더 신뢰가 간다.
항상 궁금했던 게 왜 대표적인 척화파인 김상헌 대신 젊은 오달제 등이 잡혀 가서 죽었으냐, 이런 걸 보면 김상헌은 말 뿐인 척화파 아니었냐 싶었는데 책을 보니 최명길이 나이가 많은 김상헌을 배려해 가장 많이 알려진 젊은 세 사람을 보낸 것이라고 한다.
결국 김상헌도 노구를 이끌고 청나라로 끌려가 4년 간의 감옥 생활을 하다가 청이 북경에 입성하면서 소현세자와 함께 귀국한다.
최명길이 인조의 총애를 받아 정치 일선에서 활약했던 것에 비해 의외로 김상헌의 정치 활동은 많지 않았고 인조 반정 때도 1등 공신이 된 최명길과는 달리 참여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권력욕의 화신처럼 그려진 김종성의 책과는 달리 자신의 신념대로 살았던 당시 기준으로는 완고하지만 의리를 지킨 꼿꼿한 분이 아니었나 싶다.
이런 점들이 평가를 받아 후에 김상헌의 후손들이 가문 대대로 크게 이름을 날렸을 것이다.
동의하기 어려웠던 부분은, 심환지와 정약용을 비교한 부분이다.
저자에 따르면 정조가 심환지로 대표되는 노론 벽파와 심하게 대립했고 정약용으로 대표되는 남인 세력을 친위 세력으로 키우려고 했으나 이른 죽음으로 물거품이 됐다는 식으로 설명하는데, 심환지에게 보낸 정조의 밀찰에서 드러난 것처럼 정조는 결코 심환지와 대립하지 않았고 오히려 국정 운영의 중요한 파트너로 생각했다.
이 부분이야 말로 지금까지 잘못 알려져 왔던 만큼 보다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조가 규장각을 통해 소외된 남인 계층이나 서얼층을 양성하려고 했던 것은 분명하겠지만, 과연 드라마나 소설에서 처럼 이들을 친위 세력으로 삼아 노력 벽파와 일전을 벌이려고 했는지는 매우 의문스럽다.
사도세자의 죽음이라는 지나치기 힘든 문제가 분명히 존재했겠으나, 24년 동안 정국을 주도했던 노련한 정치가였던 정조는 밀찰에서 보여준 것처럼 노론 벽파 역시 정권의 파트너로 함께 데리고 갔던 것으로 생각된다.
보다 많은 학술적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