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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친왕 일가 복식
국립고궁박물관 지음 / 국립고궁박물관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
이 곳을 가면 원래 읽으려고 했던 책은 놔두고 꼭 다른 책에 먼저 눈이 간다.
보고 싶은 책들이 너무 많아 그냥 지나치기가 힘들다.
이런 비싼 도록들은 이 곳 도서관이 아니면 절대 만날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먼저 읽게 된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영친왕비가 입었던 적의 같은 것을 관람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 본격적인 도록으로 출간한 모양이다.
가격은 무려 10만원!
책 무게가 굉장하다.
사진이 얼마나 세밀하게 잘 찍혔는지, 실제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선명하고 섬세하다.
자수 부분 등을 확대해 놓은 사진을 보면, 실 한 올 한 올의 질감까지 느껴진다.
복식에 관심이 많다면 소장해도 좋을 도록이다.
영친왕과 왕비, 아들 진과 구의 복식, 장신구 일체가 실려 있다.
일본에서 결혼한 후 큰아들 진을 낳고 형인 순종 내외를 알현하러 왔을 때 입었던 복식이 대부분이다.
그 가엾은 큰아들 진은 8개월 만에 세상을 뜨고 둘째 구가 태어난다.
이 분이 미국 여자와 결혼했다가 이혼한 분이다.
영친왕은 키가 굉장히 작아 이방자 여사와 거의 비슷하고, 생김새가 고종을 닮기 보다는 어머니 엄귀비와 비슷한 것 같다.
솔직히 젊은 시절의 모습은 그다지 매력적인 왕자님은 아닌 듯.
일본 육군 장교로써 군을 시찰하는 사진 등은 식민지 시대 왕자로 태어난 시대적 한계를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조선 하면 어쩐지 소박하고 검소한 문화, 혹은 백의민족 등이 떠오르는데 궁중 문화는 확실히 선비들의 사대부 문화와는 격이 달랐던 것 같다.
중앙박물관에서 본 조선 시대 옷이나 장신구, 가구들을 보면 굉장히 단아하고 소박한 멋이 있는데, 궁궐에서 쓰는 물건들은 그 화려함과 다채로움에 정말 깜짝 놀랬다.
의례복 뿐 아니라 평상시에 입는 상복 등도 어쩜 그렇게 아름다운 색색의 비단으로 지었는지, 또 문양은 얼마나 섬세하고 아름다운지 감탄했다.
전통적인 방식의 염색일텐데 분홍, 자주, 녹색, 청색 등 옷감의 색깔이 하도 고와서 몇 번을 들여다 봤다.
대부분 비단천인데 민무늬는 거의 없고 고운 문양이 다 새겨져 있고, 그 위에 자수 장식도 정말 아름답다.
재봉질 된 곳도 있지만 대부분 손바느질이라 책의 설명대로 당시 침방 나인들의 뛰어난 바느질 솜씨를 엿볼 수 있었다.
여느 왕실 못지 않은 화려함에 정말 놀랬다.
또 장신구나 그것을 보관하는 상자와 보자기 등이 얼마나 다채롭고 화려한지!
특히 머리를 장식하는 비녀나 뒤꽂이 등은 온갖 보석들로 꾸며서 감탄 그 자체였다.
희한하게 목걸이나 귀걸이 같은 악세사리는 전혀 없고, 반지도 장식이 전혀 없는 단아한 옥반지 같은 걸 끼는데 머리 장신구들 만큼은 정말 화려하다.
한복에는 치렁치렁한 악세사리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인가?
이 머리 장신구만큼은 사대부가의 마님들도 매우 화려했던 것 같다.
노리개와 주머니 등도 색감이나 자수 문양이 정말 아름다웠다.
이런 장신구를 보관하는 상자는 비단천으로 곱게 싸서 그 자체만으로 감상의 미가 있다.
누가 조선의 문화를 소박하다고 했던가!
유럽 왕실 못지 않은 화려함에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뒷쪽에 실린 유물 기증 과정을 읽어 보니, 원래 이 복식은 이방자 여사가 도쿄국립박물관에 위탁했던 것이라고 한다.
88서울 올림픽을 기념하여 도쿄박물관에서 우리나라 전시회를 기획했는데, 조선 왕조의 복식들이 일본에게 넘어가 전시회를 열게 되면 여론이 나쁠 것이라 우려한 우리 박물관 측에서 이방자 여사와 도쿄 박물관을 설득해 결국은 반환하게 했다고 한다.
당시 대통령이던 노태우가 일본을 방문해 한일 정상회담을 했는데 이 때 성과로 복식들을 돌려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단지 위탁한 건데 그냥 돌려 받으면 안 되나 싶기도 한데, 책에 따르면 아마도 그냥 맡긴 것은 아니고 뭔가 반대 급부가 있었을 거라 무조건 달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모양이다.
만약 이런 중요한 유물이 한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계속 동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면, 우리로서는 조선 시대 궁중 의상을 실제 볼 수 없을 뿐더러, 이것을 일본에 가서 봐야 하는 기막힌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야 말로 식민지 지배를 상기시키는 슬픈 현실이 아닌가.
다행히 일본 정부가 원만한 외교를 위해, 또 이방자 여사의 입장을 배려해 유물 일체를 반환하기로 결정해서 지금은 고궁박물관에서 이 복식들을 볼 수 있고, 도록까지 나와 많은 사람들이 열람할 수 있다.
이런 걸 보면 프랑스에 있는 외규장각 의궤들도 어서 빨리 돌아와 연구가 진행되야 할텐데 안타깝다.
프랑스에 있어 봤자 그 사람들에게 무슨 중요도 있겠는가.
실제 착용 사진이 없어서 좀 아쉽긴 하지만, 궁중 복식과 장신구를 볼 수 있는 정말 좋은 기회였고 다음에 박물관에 가면 좀 더 관심을 기울여 자세히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