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이야기 1 - 충격과 공포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5
김태권 지음 / 길찾기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2권을 먼저 구입해서 읽었고 1권을 읽어야지 벼르기만 하다가 항상 대출 중이라 못 읽어서 늘 미진했던 책이다.
드디어 근 몇 년만에 1권을 읽게 됐다.
2권 읽을 때만 해도 누가 누구인지 헷갈리고 감이 잘 안 잡혔는데 그동안 중세에 대한 약간의 지식도 쌓여서인지 1권은 좀 더 쉽게 읽을 수 있었다.
내친 김에 2권도 다시 한 번 읽게 됐다.
작가의 원 계획은 5권까지 스토리가 잡혀 있었던 모양이다.
겨우 두 권에 그친 후 소식이 없어 아쉽다.
아마 본격적인 역사서로 읽었다면 굉장히 지루하고 빨리 머릿속에 들어 오지 않았을 거다.
작가가 재밌게 풀어 쓴 덕분에 적어도 은자 피에르, 기사 르노, 2권의 주인공 보에몽 공작 정도는 확실히 알겠다. 

책에서 못마땅한 점을 들자면 현대 정치사에 역사적 사건의 교훈을 지나치게 많이 대입시킨다는 점.
부시의 이라크 침공을 십자군 파병과 연결짓는 시도는, 뭐 한 두 번이야 작가의 소신으로 이해한다 쳐도, 이건 도대체 전 권에 걸쳐 끊임없이 등장하니 읽는 사람 입장으로서는 산만하기 그지없고 따지고 보면 꼭 들어맞는 상황도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거부감만 더 생겼다.
본격적으로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해 다루는 책도 아니면서 곁가지를 마치 중심 주제처럼 부각시켜 십자군 전쟁이라는 큰 틀을 아주 많이 흔들어 놓는 꼴이 되버렸다.
어떤 역사가든 마찬가지지만, 과거의 역사를 현대의 사건에 대입시키고자 하는 욕구는 그야말로 절제가 필요한 부분이란 생각이 든다.
지난 번 김종성의 책에서도 강감찬 장군과 박정희 연결 시도가 너무 황당해 책의 신뢰도를 떨어뜨렸는데 이 책의 저자 역시 자기 책의 진가를 스스로 깍아 먹고 있는 꼴이 되버렸다. 

또 한 가지 지적해야 할 부분은, 현재 이슬람을 테러 집단으로 몰고 가는 미국의 우익 세력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슬람은 평화와 관용의 종교라는 것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이슬람의 침략사까지 미화시키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건 뭐, 오리엔탈리즘의 반작용으로 오히려 옥시덴탈리즘을 추구하는 꼴이랄까?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한 우즈베키스탄 전시회에 대한 도록을 읽던 도중 이런 부분이 나왔다.
원래 이 곳은 불교와 조로아스터교의 문화가 혼합되어 발전했는데, 8세기 이후 이슬람이 침략하면서 당시의 토착 문화 상당 부분을 훼손시켰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 우즈베키스탄은 완전히 이슬람화 되어 있다.
어떤 문화나 세력이든 힘을 가지면 그것으로 타자를 억압하게 마련이고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강압과 훼손이 될 수 밖에 없다.
십자군 전쟁이 성전이 아니고 경제적 이윤을 위해 동방으로 향했다는 진실을 파헤치는 것까지는 좋지만, 서유럽의 팽창주의를 너무 비판하다 보니 반작용으로 이슬람의 포교 행위는 모두 평화적이고 자발적이었고 침입을 받은 민족들은 오히려 그들을 반겼다, 라는 식으로 포장하는 건 위험하다.
한 쪽에 대한 비판이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쪽에 대한 찬사로 둔갑해서는 안 된다.
그것 역시 역사 왜곡이다.
누구의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겠으나 역사가라면 자신의 주관과 이념에 너무 흔들려서는 안 될 것이고, 사건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보다 날카로운 식견이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프랑스에서는 자국의 역사에 대한 해체주의가 폭넓게 시도된다고 한다.
쉽게 말하자면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그럴 듯 하게 포장되고 미화된 역사를 보다 날카로운 시각으로 비판하는 것이다.
책에서 자주 인용되는 자크 르 고프의 십자군 비판도 이런 맥락이 아니겠는가. 

하여튼 복잡다단한 십자군 원정에 대해 만화로 쉽게 설명해서 재밌게 읽었고, 원 계획대로 다음 이야기도 빨리 출간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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