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된다는 것 - 아이 교육을 위한 부모의 작은 철학
볼프강 펠처 지음, 도현정 옮김 / 지향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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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파란 눈의 귀여운 아이 표지가 인상적.
곧 아이가 태어날 예정이라 이 아이와 어떻게 조우할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많다.
올바른 육아법에 대해 고민하기도 한다.
일단 부딪쳐 봐야 하겠지만, 광풍 같은 사교육 열풍에 휘둘리지 않기, 아이가 정말 원하는 것을 찾아 주기, 있는 그대로의 아이를 받아 들이고 사랑하기, 이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과연 내가 대세의 흐름에 벗어나서 소신을 갖고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나도 다른 엄마들처럼 영재 교육, 영어 유치원, 고액 과외 이런 것들에 휘둘리지 않을까, 나도 그런 상업적인 교육 시스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두렵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서 이 세상에 없던 생명체와 처음 만나 어떻게 이 아이를 키워야 할지에 대해 많은 지혜를 얻었고 약간의 용기도 생긴다. 

결국 제일 중요한 것은 부모가 모범을 보이는 것, 행동으로서 감동을 준다고 해야 할까?
나는 체벌과 권위적인 교육법에 반대하고 아이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자유주의 교육관을 가지고 있고, 책에 따르면 그게 세상의 흐름이라고 한다.
그런데 막상 주변에서 버릇없는 아이들과 그것을 전혀 제지하지 않고 오히려 잘한다고 부추기는 엄마들을 볼 때면 은근히 화가 나기도 한다.
주변 사람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아이들, 큰 소리로 미술관 같은데서 떠드는 아이들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쳐다 보는 엄마, 이런 광경을 보면 속에서 괜시리 부아가 치민다.
혼자 사는 세상인가, 지 아이만 소중한가, 저렇게 키워서 뭐하냐, 이런 짜증이 밀려온다.
책에서도 자유주의 교육관에 수반되기 쉬운 일련의 문제들, 즉 아이가 전제군주처럼 변하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한다.
아이는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명령하는 전제 군주와 같다는 몽테뉴의 표현이 신선하다.
그러나 결국 부모는 신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의 무한한 요구를 전부 맞출 수 없다.
또 종국에는 부모로부터 벗어나 사회의 구성원으로 적응해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규칙과 절제를 배워야 한다.
모든 부모다 염려하는 것도 결국은 내 아이가 사회에서 잘 적응해 행복한 삶을 살길 바라는 게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일정한 경계선, 여기까지다라고 한계를 짓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일 것 같다.
경계선을 긋고 그 안에서는 자율권을 부여하는 것, 그리고 그 경계선을 조금씩 확대시키는 것, 이것이 가장 바람직한 최선일 것 같다. 

아이 역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금지와 규칙들을 체득해야 한다.
학교에 들어가면 당장 교사와 또래 집단으로부터 그 한계를 체험할 것이고, 그 전에는 부모의 몫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는 일종의 권위를 가져야 한다.
저자는 이 권위가 강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부모로서 모범을 보일 때 아이가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된다고 했다.
마치 난파당할 것 같은 배의 선장이 흔들리지 않는 지도력과 안정감을 가지고 선원들을 격려할 때 그 선장을 믿고 의지하는 것처럼 말이다.
안 되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말하고, 확고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부분에서는 아이와 타협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종국에는 아이가 자기 규율을 습득하여 자신의 삶을 컨트롤 할 수 있게 만드는 것, 가장 바람직한 목표일 것 같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깊었던 구절은, 아이를 위한답시고 지나치게 미래에 매달리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가 이 미친 사교육 열풍에 기꺼이 동참하는 것도 아이에게 좋은 미래를 선사하기 위해 미리 준비하는 차원이다.
그러나 대부분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준비가 아니기 십상이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 이를테면 아이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침해하고 학원 뺑뺑이를 돌리는 것이 정말 아이의 미래에 바람직한 영향을 끼칠 것인지는 진지하게 생각해 볼 문제다.
중요한 것은, 이런 학습 매니저 같은 태도가 아니라 아이의 관심과 흥미를 지속적으로 자극하도록 많은 체험과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긴 호흡으로 아이의 성장을 바라보는 것이다.
나는 이 "긴 호흡" 이라는 표현이 참 마음에 든다.
아이는 자기만의 고유한 성장 속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다른 아이와의 비교는 무의미하다.
결국 이 말은 있는 그대로 내 아이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라는 말과 통할 것 같다.
조급하지 않고 아이의 개성을 인정하면서 부모가 그리는 미래상을 버리고 아이 자체를 존중하는 것, 쉽지 않으나 궁극적으로 부모가 가야 할 교육 목표가 아닐까 싶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이만큼 헌신했다는 것을, 아이가 고마워 하고 보답하길 바라는 마음은 어떤 부모나 조금씩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이가 그것을 몰라 주면 서운하고 헛살았다는 회의감도 느낄 것 같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면 책의 표현대로 아이는 그런 무조건적인 희생을 바란 적이 없고 순전히 부모가 좋아서 한 일인데 왜 내가 그것에 대해 고마워 해야 하냐고 반문할 수 있다.
보답을 바라지 않을 때 비로소 호의가 가치있는 것이라고 했다.
주는 것만으로 행복한 사랑, 감사와 보답이 없어도 진정으로 기쁘고 즐거운 것, 그것이 부모 자식 간의 관계인 것 같다.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말들이 많았고 꼭 부모로서가 아니라 해도 내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좋은 시간이었다.
칸트에 따르면 교양이란 자기 자신을 가지고 작업하는 거라고 했다.
남이 아닌 바로 자신을 교화시키고 도덕성을 발현시키고 좀 더 나은 사람으로 개선시키는 것.
나 자신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나를 비난하지 않는 것도 포함된다.
항상 나는 약간의 자기비하 속에서 끊임없이 나 자신을 질책하곤 했는데 이것도 성숙하지 못한 태도라는 걸 깨달았다.
칸트의 격언에 기대어 단지 지식 습득이 아닌, 진짜 교양인으로 스스로를 성장시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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