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패러독스 - 기발한 상상력과 통쾌한 해법으로 완성한 경제학 사용설명서!
타일러 코웬 지음, 김정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도서관에서 우연히 고른 책인데 읽다 보니 예전에 읽었던 책이다.
그런데도 일부 에피소드를 제외하고는 전혀 새로웠다.
제대로 읽지 않아서인가, 원래 시간이 지나면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건가?
하여튼 지루하지 않게 재독했다.
앞서 읽은 <상식 밖의 경제학>과 비슷한 포맷인데 좀 더 자세하다.
경제학 하면 딱딱한 원론만 생각하기 쉬운데 이런 일상적인 접근법은 항상 반갑다. 

저자의 주장은, <상식 밖의 경제학>에서처럼 인간은 경제학에서 전제하는 완벽하게 합리적인 존재가 절대로 아니며, 단순히 보상과 처벌로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센티브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반드시 돈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저자는 내적 동기, 즉 자부심이나 책임감, 사회적 인정 같은 보이지 않는 요소들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한다.
이를테면 딸에게 설거지를 시킬 때 돈을 주면 딸은 푼돈을 받기 위해 부모 말에 복종한다는 느낌이 들어 자발적으로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또래 집단에서도 용돈받고 설거지 했다는 것은 그다지 자랑스러울 게 없고 오히려 부모에게 순종하는 어리숙한 범생이 이미지로 비치기 쉽다.
그 돈은 사실 딸에게 아주 큰 가치를 갖는 것도 아니다.
하기 싫으면 돈 필요없어, 이렇게 말하면 끝이다.
돈 몇 푼으로 자신을 조정하려고 한다고 자존심에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얼마 안 되는 푼돈으로 딸을 구슬리기 보다는 차라리 그녀의 내적 동기에 호소하는 게 더 효율적이다.
가족에 대한 봉사, 가족 내에서 딸이 갖는 위치나 존재감 등을 강조하는 것이다.
오히려 그렇게 하면 딸은 자부심을 가지고 자신이 중요하다고 인식한 설거지를 열심히 하게 될 것이다.
내 경험에 비춰 봐도 이건 매우 일리있는 지적이다.
돈 줄테니까 이걸 해라, 부모가 이렇게 시키면 벌써 나에게 명령을 내렸다는 것 자체가 기분이 나쁘다.
어린 마음에도 그까짓 돈 안 받으면 그만이지 이런 반발심이 먼저 든다.
그것은 얼마 안 되는 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 자리를 열심히 구하는 것과는 또다른 문제다.
왜냐하면 남은 일을 해야 돈을 주지만, 부모는 나에게 무조건적인 사람이라고 다르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돈으로 자식을 구슬른다는 건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리고 자녀의 내적 동기를 이용하려면 자녀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어떤 자아상을 가지고 싶은지 어떤 사람으로 비치고 싶은지를 잘 알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
그러니 돈 몇 푼으로 간단히 자녀의 행동을 교정하려는 (설거지를 시킨다거나 성적을 올리는 것과 같은) 시도는 애초부터 너무 성의가 없는 태도인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통제감을 갖길 원한다.
나 역시 간절히 바라는 게 바로 나 자신에 대한 자기 절제다.
내가 나를 완벽하게 컨트롤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고 싶다.
그래서 보상과 처벌이 반발심을 살 수 있다.
누군가에게 강요당한다는 느낌, 자발적이 못한 분위기를 사람들은 혐오한다.
실제로 그 일을 통해 얻게 되는 소득이 확실할 때도 말이다.
내적 동기에 호소하라는 저자의 충고에 일리가 있고, 남들은 몰라도 일단 나 자신에게 써먹어 보려고 한다.
나 역시 내 마음을 제대로 컨트롤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길고 지루하기만 하는 회의를 자주 갖는 이유도 반드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바래서가 아니다.
일방적으로 회사의 지침을 전달받는 게 아니라, 내가 참여한 회의에서 결정된 내용을 실행하는 것이므로 회사에 소속감을 느끼고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느낌을 준다.
또 회의는 누가 내 편이고 누구와 연합해야 하는지를 탐색하는 권력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단순히 효율성만 따져서는 길고 지루한 회의가 대체 왜 계속 존재하는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없다.
그러고 보면 인간사에는 숨겨진 이면이 참 많다.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은밀한 것들이 말이다. 

여자들이 왜 별 쓸데도 없는 스포츠카나 다이아먼드 같은 선물에 열광하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이것은 일종의 신호 보내기인데, 마치 공작새 수컷의 화려한 꼬리가 포식자에게 잡아 먹힐 위험이 크고 꼬리를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해 에너지 소모가 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을 감수할 만큼 자원이 풍부하다는 것을 광고하는 것처럼, 여자들 역시 불필요한 위세품에 투자할 여력이 있는 남자를 능력있게 평가하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는 별로 필요하지 않는 선물이라 해도 값이 비싼 것에는 환호하게 되고 남자가 타고 다니는 차나 입고 다니는 옷 등으로 능력을 가늠하는 것이다.
이것은 직원을 채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실무에 필요한 지식들을 학습시키지 않더라도 높은 학력은 이 사람이 성실하고 회사일에 잘 적응할 것이라는 가능성의 확인으로 받아들인다.
회사가 높은 학벌에 연연하는 것은 학교에서 실무를 잘 가르쳐서가 아니라 그 정도 학업을 견뎌낸 사람이면 틀림없이 회사일도 잘 해낼 거라는 기대감에서라고 하니 뽑는 사람 입장에서는 일리가 있는 얘기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신호 보내기의 의미를 잘 파악해야 한다.
한 가지 재밌는 예가, 저자는 종신 재직권이 있기 때문에 교수 회의에 나갈 때 넥타이를 매지 않고 자유로운 복장으로 참석한다.
이것은 내가 어떤 복장을 하든 남들이 어떻게 평가하든 나는 그런 평가에 전혀 내 위상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일종의 신호 보내기다.
그런데 위치가 불안한 사람이 이런 전략을 쓴다면 즉 시간강사가 넥타이도 안 매고 공식석상에 나타난다면 당장 입방아에 오를 것이고 그 사람의 평가에 치명적일 수 있다.
그러므로 아무나 자유로운 복장을 입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부자가 허름한 옷을 입고도 당당할 뿐더러 오히려 저 사람은 부자인데도 겸손하고 소박하다는 좋은 평가마저 끌어 낼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의 재산이 많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이 허름한 복장을 하면 자원이 없어서 저렇게 하고 다닐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광고하는 꼴이 된다.
그러니 함부로 일반적인 정서에 반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내가 과연 관습을 무시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지 잘 따져볼 일이다. 

제일 흥미를 끈 것은 역시 문화적 경제학이다.
예전에 책을 읽을 때도 이 부분을 열심히 봤던 기억이 난다.
문화 생활을 하는데 돈이 많이 들지는 않는다.
진품을 갖고 싶다는 소유욕이 강하지 않는 이상 말이다.
도서관에 책은 널려 있고 명화는 미술관에 가서 관람하면 된다.
클래식도 몇 백원만 내면 당장 다운받아 들을 수 있다.
오히려 문화생활에서 중요한 자원은 주의와 시간이다.
이 attention이라는 단어가 참 중요한데, 사람이 주의를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의외로 크지 않다.
당장 미술관에 가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처음 한 두 시간은 열심히 관람을 하지만, 두 시간이 넘어가면 다리가 아프고 그 그림이 그 그림 같고 나중에는 서 있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친다.
책도 마찬가지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아무리 재밌는 책도 지루해지고 집중도가 현격하게 떨어진다.
더군다나 이런 문화생활은 먹고 사는데 꼭 필요한 경제 활동도 아니기 때문에 투자할 시간이 무한정 있는 것도 아니다.
또 이런 문화적 영역은 일반 대중에게 눈높이를 맞추지도 않는다.
미술관은 일반 관람객의 티켓 수입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부자들의 기부금에 의존한다.
작가들 역시 대중 소설이 아닌 이상, 그들을 타켓으로 삼지 않는다.
그러니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저자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예술 지상주의 따위는 버려 두고 나 요인에 초점을 맞추라고 충고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관심있는 것에만 주의를 기울이자는 것이다.
미술관에 가면 아무리 평론가가 격찬을 해도 내가 별 느낌이 없으면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지루한 책을 읽는다면 과감히 포기해도 된다.
그거 말고도 읽을 책이 널려 있다.
내가 문화를 즐기고자 하는 것은 그것의 예술적 가치를 인식하는 것도 있지만 교양있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싶은 욕구도 강하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관심을 아예 잃어버리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흥미있는 것에 집중하는 쪽이 훨씬 경제적이다.
나 역시 저자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관심있는 것에만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이것은 매우 경제적인 태도라 관심의 영역이 조금씩 넓어지면서 예술에 대한 지식과 깊이도 시나브로 커 간다는 느낌이 든다. 

지루한 고전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충고도 매우 유용했다.
어려운 책은 일단 가볍게 일독을 하고 다시 돌아가서 재독한다.
지루하면 결말부터 읽어라.
등장인물 중 한 명을 중심으로 따라가라.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직업, 주변 상황 등을 메모하면서 읽는다.
뛰어넘기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
첫 50페이지는 반복해서 읽어 확실히 이해한다.
정 어려우면 비평을 먼저 읽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가 안 가면 과감히 포기하라!
실제로 내가 독서에서 써먹는 방법들이다. 
특히 가볍게 읽고 다시 읽는 방법이라든가, 첫 50페이지에 집중하라는 방법은 매우 유용하다.
일단 도입부를 정확히 이해하고 나면 속도감이 붙어 집중하기 쉬워진다.
어렵고 지루한 책은 한 두 번 건너 뛰고 일독 후 다시 읽으면 쉽게 와 닿는다.
그런데도 안 되는 책이라면 던져 버리는 수 밖에. 

뒷 장에 나온 기부 문제도 의미있게 다가 왔지만 아직은 구체적으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 미국 사회에서 일반인의 기부 문화가 꽤나 확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단지 공정무역커피라는 광고문구 때문에 비싼 돈을 주고 커피를 마시는 게 기부의 진정한 태도는 아님을 확인했다.
이 문제는 내가 어떤 분야에 내 주의와 시간, 경제적 여력을 투자할지 좀 더 고민해 볼 일이다.
나 역시 세상의 모든 불공평한 문제들에 대해 전혀 무심한 사람은 아니지만 또 모든 문제에 다 관심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니, 진정으로 관심이 있는 쟁점에 대해 좀 더 고민한 후 내 자원을 투자할 생각이다.
비교적 재밌게 읽은 책이고 어찌 보면 실용서 같다는 생각도 든다.
실생활에 응용하여 삶에 작은 변화를 주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