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초승달 동맹 - 우리가 알지 못했던 기독교 이슬람 연합 전쟁사
이언 아몬드 지음, 최파일 옮김 / 미지북스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일단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처음에는 복잡다단한 11세기 에스파냐 소왕국들이 등장해 지루하고 맥을 못 잡았는데 뒤로 갈수록 책에 빠져들어 유럽과 오스만 투르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어제 읽었던 비잔틴 제국에 관한 책에서 봤던 인물들이 다시 등장해 이해를 도왔다.
역시 배경지식이 있어야 쉽게 이해가 간다.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은 이제는 어쩐지 한물 간 것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그의 책을 읽었을 때 흔히들 하는 비판처럼 무조건 종교가 모든 대립의 원인이다라고 주장하는 건 아니었다.
오래 전에 읽어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서구 세계와 이슬람 세계의 대립 관계를 역사, 사회, 정치적 측면에서 매우 섬세하게 분석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히려 미디어에서 하기 쉬운 말로, 대중을 자극하고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헌팅턴을 써먹고 있지 않나 이런 생각도 든다.
어쨌든 종교라는 이름으로 표면화 되고 있기는 하나, 궁극적으로 집단끼리의 갈등은 오랜 전통이자 역사이고 단지 신앙 하나만이 유일한 결정의 기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관점에서 유럽의 기독교 세력과 이슬람 세력이 어떻게 동맹을 맺었는지 역사적 사건을 통해 세세하게 파헤친다.
사실 이 책의 주제는 동맹 그 자체보다도, 유럽이 단일 기독교 문명권이라기 보다는 이슬람과 오랜 세월을 공존해 왔고 이슬람 역시 유럽 문명의 주된 요소임을 보여 주고자 한다.
당장 4백여 년에 걸친 에스파냐의 이슬람 지배를 봐도 그렇고, 오스만 투르크의 발칸 반도 지배 역사도 그렇다.
19세기 이후 완전히 역전되긴 했으나 유럽과 이슬람 세계와의 공존은, 동아시아와 지역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오래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역자가 역사를 전공한 사람이라 그런지 각주가 매우 꼼꼼하다.
성실한 번역자를 만난 덕분에 더 재밌게 읽었다.
특히 후기에서, 이슬람이 유럽 문화에 자양분을 제공한 것은 분명하지만, 과연 유럽 문화의 본질적인 요소인가는 다른 문제라는 지적이 날카롭다.
또 흔히 거론되는 관용이라는 것도, 다수 지배 집단이 소수집단에게 일정 부분을 허용해 준다는 의미이지, 결코 이것이 완벽한 공존이나 교류로 이해되서는 안 된다는 한계를 설정한 점도 인상깊다.
저자 역시 이슬람과 기독교의 공존 사례들이 여러 이해관계 속에 얽힌 결과이지, 상이한 두 문화의 완벽한 조화로 이해되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한다.
결국 인간이란 개인적으로는 신념과 우정, 믿음 등등 가치체계에 따라 움직이는 것 같으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이익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것을 역사가 명백히 보여준다.
특히 역사에서 한 집단의 선택을 보면 더더욱 말이다.
개인과 전체는 다른 시각으로 봐야 한다.
개인의 가치와 집단의 가치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독실한 신앙인이 공적으로 반드시 성경에 나온대로 행동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동맹을 맺을 수 밖에 없는 중요한 이유로 경제적 이권 뿐 아니라 국내의 정권 다툼을 위해 외세를 불러 일으키는 고전적인 동기도 있지만 무엇보다 용병과 농노라는 측면에서의 접근이 신선했다.
전통적으로 동아시아 역사는 병농일치제를 통해 농민이 나가서 병사가 되는 시스템이라 그런지 용병 제도를 보기 힘들다.
그런데 유럽 역사에서는 이 용병 제도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여러 민족과 정치 집단들이 뒤섞여 살아온 역사를 반영하는 듯 하다.
제국의 지배자는 농노들을 수탈하기 때문에 전쟁이 터졌을 때 함부로 농민에게 무기를 맡기지 못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비잔틴 제국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반란의 위험 때문에 선뜻 그들을 군사로 만들지 못하고 실제로 압제에 시달리는 농민층은 지배자가 바뀌는 것을 환영할 때도 많았다.
그래서 지배자는 돈을 주고 용병을 불러 오고 이 과정에서 다양한 종교와 민족 집단들이 출신 성분이나 신앙에 관계없이 싸우게 되는 것이다.
속국이라는 종속 관계 때문에 원하지 않아도 같은 기독교인들끼리 공격해야 할 때도 있고, 프로테스탄트를 압박하는 가톨릭 세력에 맞서 오스만 투르크 쪽에 협력하여 싸우는 경우도 흔했다.
크림 전쟁의 경우는 언제나 앙숙이었던 프랑스와 영국이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투르크 편에서 싸우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현실정치는 개인의 신앙과는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 분명한 논거를 대고, 물 흐르듯이 역사적 사건들을 서술해 나가 흥미롭게 읽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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