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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로마, 비잔틴제국 - 변화와 혁신의 천 년 역사
이노우에 고이치 지음, 이경덕 옮김 / 다른세상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무려 천 년이나 지속된 제국이다 보니 꽤 방대한 분량일 줄 알았는데 막상 받아 놓고 보니 겨우 250여 페이지에 불과하다.
글자 사이 간격도 꽤 넓은 것 같아 혹시 일본에서 출간될 때는 문고본 형태의 가벼운 분량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런 적은 분량의 책은 기왕이면 문고본 형태로 싸게 출판해 주면 참 좋을텐데...
내용은 이해하기 쉬웠다.
비잔틴 제국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기 때문에 상당히 긴장을 하고 시작했지만, 저자는 천 년의 역사를 한 권의 책에 무리하게 담으려 하지 않고 이 제국이 어떻게 시작해서 발전하고 다시 쇠퇴하게 됐는지 핵심 사항을 짚어가며 간략하게, 그러나 정확하게 설명한다.
우리와 같은 동양인의 관점이라 그런지 더 친숙한 느낌이 든다.
제일 인상깊었던 분석은, 대체 왜 비잔틴 제국에서 기독교를 받아 들였냐는 것이다.
당시 기독교가 제국 내에 워낙 많이 퍼져 기독교인들과의 제휴를 위해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용인했다는 말은 그저 일설에 불과하다고 한다.
실제로 기독교는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가 즉위할 때까지 국교이면서도 다른 종교와 공존했고 이교도적인 관습법도 많이 용인됐다고 한다.
저자가 기독교인이 아니라 그런지 기독교에 대해 상당히 날카로운 관점을 유지하는데, 비잔틴 제국이 진정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인 가장 큰 이유는, 기독교가 실은 황제의 전제 정치에 적합한 이념이 되기 때문이라고 본다.
기독교인들은 황제 숭배를 거부하다가 박해받고 순교한 전적이 있지만, 성경을 자세히 살펴 보면 여러 구절에서 현재 권력을 가진 자에게 복종하라고 가르친다.
고대 그리스 로마의 민주정 전통에서 전제정으로 넘어 오는 과정에서 기독교는 황제가 전권을 갖는 전제정의 이념적 기반으로 재탄생한다.
기독교 역사에서 굉장히 새로운 측면 같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로마법 대전을 만들고 정복 사업을 펼친 위대한 황제이면서도, 니카 반란을 계기로 전제 정권을 성립한다.
터키에 가서 이 학살이 일어났던 경마장 터를 직접 봤었다.
가이드가 여기서 3만명의 시민이 죽었다고 하는데도 잘 실감이 안 났는데 책을 보니 꽤나 심각했던 일종의 시민 봉기였던 것 같다.
로마 제국이 빵과 서커스를 계속 공급할 수 있었던 까닭은, 속주 이집트에서 건너 오는 식량 탓이었는데 제국이 이슬람의 침입을 받아 식민지를 잃자 더 이상 시민 계급은 제국에 기생해서 살 수 없었다.
비잔틴 제국이 강했던 까닭은 일종의 병농일치제로, 농민이 스스로 무장을 해서 싸우러 나갔기 때문인데 농촌이 피폐화되면서 군역과 조세를 피하기 위해 스스로 토지를 팔고 노예가 되어 의무로부터 벗어난다.
농촌 사회의 붕괴는 필연적으로 군사력 약화를 불러 일으켰고 이 틈사이로 성장한 것이 귀족 계층이었다.
13세기 초에 4차 십자군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고 나서도 여전히 지방에서 비잔틴 제국이 명맥을 이어가고 결국은 수도를 되찾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귀족들의 힘이라고 본다.
저자의 날카로운 지적대로 만약 비잔틴 제국이 과거의 강력한 전제정이었다면 십자군은 콘스탄티노플을 차지하는 순간, 귀족들도 모두 제압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비잔틴 제국은 이미 황제 한 사람에게만 모든 권력이 쏠려 있는 황재 독재 국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제국의 수도를 점령하고도 결국은 지방 귀족들의 반란을 제압하지 못하고 반 세기만에 쫓겨나고 만다.
고대에서 중세로의 이행 과정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왕은 귀족에게 농사지을 땅을 주고, 귀족은 왕에게 군사를 빌려 준다.
봉건제가 시작된 것이다.
놀랍게도 황제 역시 직할지를 가지고 직접 농장을 경영해서 소득을 올린다.
황제가 직접 운영하는 농장에서 판매한 달걀로 왕비의 금관을 만들어 선물했기 때문에 달걀보관이라 불리는 유물도 있다고 하니, 황제의 위상 변화를 알 만 하다.
한 때 10세기 무렵은 다시 세력을 넓혀 가기도 했으나 결국은 상승하는 투르크 세력에 밀려 15세기 초, 이 천 년 제국은 문을 닫고 만다.
중세에는 대포가 없기 때문에 성벽이 높으면 절대 함락시킬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도 이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고, 비잔틴 제국 역시 두껍고 높은 테오도시우스 성벽을 건설했던 모양이다.
이 강력한 성벽은 수많은 외침을 이겨냈으나 결국은 오스만 투르크의 대포에 무너지고 만다.
지난 번 터키에 다녀와서 이스탄불을 둘러 봤던 것이 큰 도움이 됐다.
그동안 비잔틴 제국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저자의 말대로 천 년을 유지했다는 것부터가 너무나 경이롭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생각한다.
이 위대한 제국에 대해 좀 더 알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