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인물통찰 - 폄하와 찬사로 뒤바뀐 18인의 두 얼굴
김종성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항상 느끼는 거지만, 전문가가 아닌 필자의 주장은 상식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적어도 전문가라면 한 분야에서 논문을 쓰고 연구하는 정도는 되야 할 것 같다.
어떤 주장을 할 때 근거를 밝히는 것, 자연스러운 인과관계를 도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곤 한다.
서점에서 이 책을 보고 기존의 평가와 다른 관점으로 역사적 인물을 되돌아 본다고 해서 흥미가 생겼는데 이 쪽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 걱정을 했었다.
그렇지만 역사학과 출신이고 아주 엉터리는 아닐 거라 생각하고 읽게 됐는데 평가는 실망 쪽이다.
환단고기를 믿어야 한다고 내세우는 식은 아니지만,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았다.
제일 위험한 것은 현대인의 관점으로 과거를 바라보는 것인데, 사대주의가 부끄러운 게 아니라 당시의 국제 질서를 인정한 현명한 외교 정책이었다까지는 좋지만, 한미 동맹을 주장하는 보수층이 바로 숭명반청을 주장하던 노론 집권세력과 똑같은 거다, 이런 식의 단순 비교는 진도를 너무 나갔다는 생각이 든다.
전 세계의 패권을 쥐고 흔드는 오늘날의 미국을, 이미 망해버린 17세기 노론 집권층의 머릿속에 존재하던 명나라와 어떻게 비교할 수 있단 말인가.
오히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자존심을 지키려고 당시 최강국이었던 야만족의 나라 청을 배척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반미가 반청과 통하는 게 아닐까?
저자의 이런 현대주의적 관점은 연산군이나 정도전에 대한 평가에서도 나타난다.
정도전이 정말로 추구한 것은 왕의 권한을 제한하는 재상정치였고 그것은 힘없는 백성들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가진 자들의 권력 추구, 즉 소수 귀족인 사대부들을 위한 정치였으니 정도전을 민중을 생각하는 개혁가로 볼 게 아니라는 식이다.
왕조 국가이자 전근대 사회였던 15세기 조선 사회에서 그런 식으로 따지면 오늘날 민주주의나 서민정치에 합당한 의식을 가진 정치가가 과연 있기나 하겠는가?
원의 간섭과 홍건적, 왜구의 침략 등으로 엉망이 되버린 고려 사회를 재정비하고 국가의 틀을 새롭게 갖춘 조선 개국자들의 시대적 역할은 오늘날 민주주의 관점으로 결코 평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연산군은 또 어떤가.
그가 강력한 왕권을 휘둘렀다고 해서 과연 사대부의 권력을 제한하고 민중의 편에 선 왕인가?
집권층을 억누르면 곧 백성을 위하는 왕이 되는 것인가?
연산군의 공포 정치는 아무리 좋은 쪽으로 해석해도 미화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폭정을 일삼는 왕들이 많았고 저자의 말마따나 태종도 아버지를 유폐시키고 세조도 동생들과 조카를 다 죽이고 왕위에 올랐지만 연산군처럼 대책없이 사회 근간을 흔들지는 않았다.
그 보다 더 나쁜 왕들도 많다더라는 식으로 연산군의 폭정과 정책 실패를 미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차라리 광해군이 왕위를 빼앗긴 것은 유교적 명분론에 반하고 무리한 궁궐 공사를 강행했기 때문이라고 냉정하게 평가하는 게 더 와 닿는다.
광해군의 평가에서처럼 어쨌든 정권을 못 지키고 무너진 것은 명백한 실패가 아닌가. 

동의하는 부분도 많이 있었다.
장수왕이 중국에 사대정책을 취하고 조공을 바쳤다는 점, 명성황후는 실세가 아니고 사실은 고종이 권력을 휘둘렀다는 점, 이황이 실은 관료로서 야심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다는 점, 정조 시대의 한계점 같은 것들이다.
장수왕이 북위와 남조 왕조들의 책봉을 받으려고 애쓰고 당시의 국제 질서를 인정했기 때문에 국가의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평가는, 후에 연개소문이 당과 충돌하는 바람에 결국은 망국까지 갔다는 평가와도 일정 부분 통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성계가 여진족이었다느니, 강감찬의 귀주대첩 덕분에 거란과 고려, 송, 일본 등의 동북 아시아가 250년 동안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느니, 김대건이 실은 프랑스 제국주의자에게 이용을 당했던 거라느니 하는 주장은 동의하기 어려웠다.
이성계의 4대조인 이안사가 세거지인 전주를 떠나 삼척을 거쳐 함경도로 이주한 사건은 임용한씨의 <조선국왕이야기>를 통해 자세히 읽었다.
그 때도 이안사를 따라 170여 가구가 이주했다는 부분에서 약간의 의문을 품기는 했으나 당시 시대적 환경으로 이해를 했었다.
그런데 저자는 이 부분을 두고, 많은 가구가 주인을 따라 이주한 것이야 말로 이성계의 조상이 전주의 농경민 집단이 아니라 유목민의 증거라고 주장한다.
사료 비판이라는 이유로 실록에 나온 태조의 가계에 관한 부분을 완전히 거짓으로 치부하는 건 합리적이지가 않다.
또 이안사가 그렇게 큰 세력을 가졌다면 그깟 지방관 하나 제압하지 못하고 첩 문제로 다투다 집단 이주를 했겠냐고 하는데 이런 상황 논리야 말로 가장 위험한 논리 전개라고 생각한다.
그 지방관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 정확히 밝히지도 않은 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이렇게 넘어갈 수는 없다.
또 몽골이 국토를 유린하는 시대에 어떻게 그 많은 가구가 북쪽까지 전진했냐고 하는데 몽골이 1년 내내 전국을 지배했던 것도 아니고 이런 추측은 근거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이성계 집안이 함경도 부근의 여진족 출신이었다면 당시나 후대 기록에 일말의 의문이라고 남겨야 하는데 전혀 찾아 볼 수가 없다.
심지어 고려인들이 깔보던 여진족이 세운 나라라 사대부들이 16세기가 될 때까지 산림에만 머물고 정치 참여를 거부했다느니, 세종이 한글을 만든 것도 제 문자를 갖는 유목민의 전통을 지키고 사대부들의 문화적 자부심을 누르기 위해서였다느니 이런 논리적 비약이 심해 공감할 수가 없었다.
김대건이 프랑스 제국주의자들의 침략 앞잡이로 이용당하다 조선 정부에 처형당했다는 평가도 지나친 비약이다.
선교사들이 종교를 앞세워 포교에 나서면 군대가 뒤따라와 총칼을 들이대는 식의 식민 지배가 19세기에 자주 벌어진 것은 사실이라 할지라도 선교사 개개인의 신앙적 포교 활동을 무조건 정치나 시대적 큰 관점으로만 평가할 수도 없는 것이고, 무엇보다 과연 프랑스가 19세기 말의 조선을 본격적으로 침략할 의도를 가지고 있었는지도 의심스럽다.
병인양요를 일으켰다고 하지만 정말로 식민 지배의 야심이 있었다면 한 번 패했다고 그걸로 끝이겠는가.
김대건은 정치적 인물도 아니고 한국 역사에 큰 역할을 한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그는 순교자의 관점에서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시 조선 정부가 서구 제국주의자들의 침략 야욕을 꺽기 위해 천주교 박해를 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과장과 논리의 비약이다.
유교의 교조주의는 이미 심각한 상황이었고 남인들에 대한 정치 공세로 본격적인 박해를 시작했다는 것이 정설 아닌가.
흥선대원군이 쇄국주의자로 낙인찍힌 큰 이유가 신미양요 때 러시아도 일본도 아닌 오늘날 한국인이 짝사랑하는 미국을 물리쳤기 때문이라는 것도 정말 넌센스다.
저자의 반미적 관점을 역사적 인물의 평가에 적용해서는 안 된다.
흥선대원군의 쇄국 정책은 명백한 시대 착오였고 미국이 아니라 어디를 물리쳤다고 해도 그는 여전히 시대를 잘못 읽은 정치가다.
인물 뒤집기는 이래서 항상 위험하다.
새로운 관점에서 평가를 하려면 기존의 학설을 뒤엎을 수 있는 수많은 근거와 사료들을 준비해야 하는데 대부분은 한 두 가지 정황적 추론으로만 기존의 평가를 무시하려고 한다.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많고 저자의 논리 전개가 허술하다는 느낌이 들어 약간은 실망스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