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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북진을 꿈꾸다 - 고구려 영토 회복의 꿈과 500년 고려전쟁사 ㅣ KODEF 한국 전쟁사 2
정해은 지음 / 플래닛미디어 / 2009년 12월
평점 :
굉장히 쉽게 잘 쓰여진 책이다.
300 페이지 정도 되는데 4시간 좀 더 걸려서 읽었다.
상당히 빨리 본 셈이다.
각 전투의 상황들을 세세하게 기록하지는 않아 상세함은 떨어지지만 (임용한씨의 <전쟁과 역사> 시리즈가 훨씬 자세하다) 대신 고려 시대라는 긴 시기에서 외침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한 눈에 볼 수 있게 한다.
고려라는 나라가 좀 더 가깝게 느껴지고 저자의 평가대로 중원 땅에서 유목민들이 흥기하여 어지럽던 시대에 이만큼의 자주성을 견지하고 국가를 유지했던 고려인들을 결코 과소평가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관점은, 거란의 침입 이후 요나라에 사대하고 심지어 한 수 아래로 여겼던 금나라에도 사대했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당시 국제 정세를 잘 파악해 실리 외교를 했다고 평가한 점이다.
우리가 심지어 거란에게 책봉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한국인이 몇이나 될까?
그러나 11세기는 거란의 시대였고 12세기는 금을 건국한 여진의 시대, 그리고 13세기는 전 유럽과 아시아 몽골의 말발굽에 신음할 때였으니 동북아시아의 변방에 있던 작은 나라 고려로서는 이러한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도 국가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평가대로 홍건적의 침입도 무려 20만 대군을 이끌어 넘어온 만큼 결코 가볍게 치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대체 현종이나 공민왕은 얼마나 무능하면 나주와 안동까지 피신을 했나 늘 한심하게 생각했는데, 고대 전쟁에서 국왕과 수도가 점령당한다는 것은 곧 나라가 패망하는 것과도 같으니 이들의 빠른 피난을 꼭 나쁘게 생각할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것은 고려의 기본적인 군사 정책과도 관계가 있다.
성을 공격하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훨씬 중요한 시대였고 더군다나 한반도는 산이 험하기 때문에 산성을 기반으로 하는 수성전이 매우 중요했다.
그래서 외침이 있으면 성에 들어가 농성을 하면서 시간을 버는 동안, 중앙군이 대오를 정비하고 성으로 달려와 일거에 적을 섬멸하는 방법을 썼다.
수성전은 곧 중앙군의 합류를 기다리는 과정이었던 셈이다.
공민왕 역시 홍건적의 남하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동안, 안동으로 피난해 관군을 소집하고 반격할 기회를 노려 일시에 홍건적 10만을 살해한다.
어찌 보면 위험하기까지 한 선택을 한다.
즉, 보통 도망칠 때는 곡식을 모두 불태우는 청야전술을 구사하는데 배고픈 홍건적이 계속 남하할까 두려워 아예 곡식을 그대로 놔두고 떠난 것이다.
예상대로 홍건적은 개경에서 배를 채우며 사태를 관망한다.
청야전술 포기를 주장한 대원수는 파직됐으나 공민왕은 안동에서 숨을 고르고 정세운 등을 앞세워 홍건적을 치러 올라갈 수 있었다.
개경에 들어가기 전 잠시 흥왕사에서 머무는데 이 때 김용의 반란이 일어나 최영이 이를 진압한다.
홍건적의 침입과 무장들의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많은 공신 책봉이 일어나고, 이를 배경으로 이성계나 최영 같은 신흥 무장세력이 등장하게 됐다.
무신 정권의 대몽 항쟁에 대해서는 상반된 시각이 많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 아리송 했는데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관점에 적극 동의하게 됐다.
어떤 책에서는 무신 정권이야 말로 귀족 사회를 전복시키고 실력 위주로 나가게 되는 획기적인 전환점이고, 30년간 대몽항쟁을 지속한 덕분에 자주국가로 살아 남을 수 있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나, 내 생각에 무신 정권은 또다른 비정상적 세력의 일당 독재에 불과하고 과연 고려 사회에 어떤 긍정적인 역할을 했는지 의심스럽다.
더군다나 삼별초의 난까지 합하면 무려 40여년 간 몽골에 시달리게 되는데 강화도로 들어간 것은 명백하게 정권 유지를 위해서였다고 생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긴 대몽항쟁 덕분에 고려는 비록 부마국이 되기는 했으나 고려라는 국호를 지킬 수 있었지만, 그것은 저자의 평가대로 고려 민초들의 저항 덕분이지 정권 유지에 급급한 무신 정권의 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죽하면 영흥 지방 사람들이 몽골에 귀순해 직할령인 쌍성총관부가 생겼겠는가.
공민왕까지가 끝이다 보니 이성계의 활약상이 안 나와 아쉽다.
쉬운 문장으로 쓰여서 고려 시대 외침의 역사를 정리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