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근대회화전 도록 : 대(大) - 터너에서 인상주의까지
크리스토퍼 뉴얼 지음 / 지엔씨미디어(GNCmedia)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얼마만에 가 보는 전시회인가.   
정말 오랜만에 예술의 전당에 갔다.
작년에는 전시란 전시는 빠지지 않고 죄다 쫓아다녔는데 올해는 시간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잡다한 일들로 관심이 뜸해졌던 것 같다.
이 전시도 우연히 광고를 보고 알게 됐다.
직접 가서 보고 도록을 구입할 것인가, 먼저 구입할 것인가로 고민한 이유는 역시 책에 담겨진 평일 관람권 때문이었다.
대도록은 비싸기 때문에 소도록에 눈길이 먼저 가지만 결국은 모든 작품이 다 나와 있다는 유혹에 못 이겨 항상 대도록을 들고 나왔던지라 평일 관람권이 들어 있는 대도록은 먼저 주문했다.
예습을 하면 어쩐지 작품이 주는 첫 느낌이 전문가에 의해 좌지우지 될까 봐 그래서 흥미가 떨어질까 봐 나중에 해설을 읽는 스타일인데 이번에는 책도 먼저 왔겠다, 예습을 하고 가자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역시 시간부족으로 먼저 전시회에 다녀왔고 집에서 도록을 보고 복습했다.
전시회에 다녀오면 도록이 꼭 필요한 이유는, 짧은 시간 동안 감상했던 작품들을 리마인드 하기 때문에 두 배의 감상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때 받았던 느낌을 여백에 쓰다 보면 보다 더 밀도있는 감상이 가능하다.
그래서 아주 비싸지 않는 이상 도록은 항상 구입하는 편이다.
아쉬웠던 점은 도록의 해설을 그대로 음성으로 옮겨 놓은 게 오디오 가이드인 경우가 많아 이번에는 대여를 안 하고 들어갔더니만, 이럴 수가, 모든 작품에 해설이 단 하나도 붙어 있지 않은 거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 봤다.
그렇지만 오디오 가이드의 해설 없이 처음 내 느낌 그대로 작품을 편견없이 대할 수 있었던 점은 좋았다.
시간이 맞아 도슨트의 해설도 들을 수 있어 더 알찬 전시였다.
방학이라 그런지 평일 오후 시간대인데도 초등학생들이 정말 많았다.
감상에 상당히 방해가 되긴 했지만 (너무너무 떠든다...) 어린 아이들이 미술에 관심을 갖고 전시회장을 방문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생각된다. 

작품에 대해 말하자면, 해외 유명 전시회의 아쉬운 점은 대작은 한 두 점에 불과하고 유명하지 않은 작품이나 습작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이 전시회 역시 터너의 작품은 두어 점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습작이 끼어 있었다.
전시회의 포스터로 쓰인 조지 클라우슨의 작품처럼 눈길을 사로잡는 대작도 매우 드물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유명 작품을 실제로 본다는 기쁨은 못 느끼더라도 대신 몰랐던 것, 관심없던 분야의 여러 작품들을 접할 수 있는 새로운 기쁨이 있다.
이런 기회가 아니라면 내가 언제 또 영국 풍경화와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접할 수 있겠는가.
풍경화는 별로야, 영국은 별로 유명한 작품이 없어, 이런 편견을 일거에 날려 버릴 수 있을 만큼 인상적이고 훌륭한 작품들이 많았다.
무엇보다 평소에 별로라고 생각했던 수채화의 매력을 발견한 점이 가장 큰 소득이다.
수채화는 어쩐지 유화에 비해 작품의 밀도가 떨어지는 느낌이 들고 성의가 없어 보여 진정한 그림은 유화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맑은 담채 느낌의 수채화로 그려진 풍경화는 진한 느낌의 유화와는 또다른 신선하고 상쾌한 분위기를 전달했다.
수채화로도 유화처럼 짧은 붓터치를 여러 번 사용하는 기법도 있고 무엇보다 여름날 저녁의 서늘한 분위기나 시시각각 변하는 대기의 느낌들을 너무나 훌륭하게 표현했다. 

인간은 환경의 동물임을 이번 전시를 보면서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영국에서 풍경화가 발달한 배경은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는 날씨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풍경의 느낌은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순간의 것이라 영국 화가들은 그 순간을 그림으로 영원히 남기고자 했다.
한국과 비슷한 크기의 국토라고 들었는데 자연환경은 꽤 다양한 것 같다.
섬이라는 특성 때문에 바다에 대한 애착도 무척 강해 보인다.
시골에 대한 영국인들의 열정은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는 전통과도 맞물려 보이고, 자연에 대한 강한 향수가 느껴진다.
그런 분위기가 풍경화라는 위대한 장르를 만들었을 것이다.
터너는 영국이 자랑하는 최고의 화가이기 때문에 그 명성은 진즉부터 알고 있었으나 작품으로 접하니 다시금 그 천재성에 놀라게 된다.
도슨트도 설명한 바지만 겨우 열 일곱 살에 그린 수채화를 보면 피카소가 어렸을 때부터 라파엘처럼 그렸다는 일화가 생각난다.
특히 대기의 표현이라든가 후기로 갈수록 추상으로 변해 가는 화풍을 보면 선구자란 바로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구나 실감이 난다.
문득 드는 생각이, 진정한 예술가와 단지 대중의 시선을 끄는 엔터테이너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싶다.
현대미술은 기술적인 것보다는 상상력, 자극성, 아이디어 등으로 승부하는 느낌이 드는데 이를테면 데미안 허스트처럼 최고의 대우를 받고 있는 동시대 작가가 우리 다음 세대에게도 (혹은 수백 년이 지나서도) 터너처럼 진정한 예술가로 평가받게 될까?
이미 평가가 끝난 기존의 위대한 화가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데 주목받는 동시대 작가의 명성은 과연 그 예술성과 실력에 걸맞는 것인지 늘 의심이 간다.
어차피 과거에도 시대를 앞서가고 선도하는 새로운 화풍은 기존의 아카데미로부터 쓰레기라고 평가절하 당했을텐데 말이다.
세월의 흐름을 이겨내고 영원한 미의 전당으로 들어갈 수 있느냐 마느냐는 결국은 내가 죽고 나서 후손들이 판가름할 일인 것 같다. 

아이가 태어나면 미술 교육은 꼭 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문적인 화가는 아니더라도 어떤 풍경이나 정물을 보고 느낀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삶이 굉장히 풍부해질 것 같다.
알랭 드 보통의 책에서 여행을 가면 거기서 느낀 점을 그림으로 그리라는 문구를 읽은 기억이 난다.
사진을 찍는 것과는 또다른 느낌을 것 같다.
사진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찍어서 보여 주지만, 그림은 그리는 사람의 감정이 들어가 있다.
그러니 근대 화가들이 고전주의 시대와는 달리 자연의 재현 대신 그것을 보고 느낀 화가의 주관적 감정을 그리고자 한 것이 이해가 된다.
직업적인 화가가 될 것은 아니니 약간의 기술과 기본적인 지식만 있다면 자신의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도 정말 매혹적일 것 같다.
그래서 일요화가 같은 아마추어 모임들이 많이 생기나 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풍경이, 여름날 해가 뜰 무렵의 하늘이다.
여름에는 눈이 빨리 떠지는데 새벽 5시 즈음이 되면 밤새 더웠던 공기도 서늘해지면서 파아란 여명이 밝아온다.
그 때의 그 서늘한 대기와 푸르스름한 하늘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여름날 새벽이야 말로 내 마음 속에 가장 이상적으로 자리잡은 풍경이다.
이런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이번 전시회에는 여름날 저녁의 서늘한 분위기도 많이 그려졌다.
화가들이 표현하고 싶은 바로 그 순간, 감정이 절정에 다다르는 그 순간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전시회장에서 화가들이 그린 실제 풍경을 사진으로 보여주는데 나도 모르게 감정이 북받쳐 살짝 울고 말았다.
사진과 비슷하면서도 화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그 감동의 순간이 그림에서 느껴져 가슴이 뭉클했다.
정말로 예술가들은 훌륭한 족속들이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왜 원본보다 도록이 더 나은 작품들이 있냐는 것이다.
전시회장에서는 별 느낌이 없었는데 도록으로 보면 굉장히 인상적이고 감동적인 작품들이 있다.
물론 반대로 도록에서는 별로인데 실제로 보면 감격적인 작품도 있다.
사진보다는 원본이 나은 게 당연한 줄 알았는데 신기하게도 작품을 찍은 사진이 더 멋진 경우가 있다.
풍경이야 사진 작가의 구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원본 그대로 찍은 축소판 사진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경우는 대체 뭔지 모르겠다.
나는 인물화를 좋아한다고 믿었는데 전시회장을 다니면서 느낀 점이 의외로 내가 녹색과 파란색 계통의 색감을 굉장히 좋아해 풍경화에 끌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나는 시골보다는 도시가 좋아, 이런 주의인데 은근히 나도 자연의 매력을 마음 깊이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녹색 중에서도 막 피어난 새순 같은 연두색이나 진한 초록색의 발랄하고 상큼한 느낌들이 너무 좋다.
파아란 대기와 신선한 숲과 초목이 어울어진 풍경화는 생각만 해도 상쾌하고 시원하다.
이번 전시에서 또 느낀 점은, 영국의 풍경화와 프랑스의 인상주의가 서로 깊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다.
따지고 보면 인상파는 실내에서 고전적인 주제를 그리는 대신 밖으로 나가 직접 스케치를 하며 빛이 변하는대로 색깔을 표현하는 외광화파가 아닌가.
대기와 빛의 변화에 따라 자연을 그리는 것, 인상파와 영국 근대 낭만주의 시대의 풍경화는 맥이 닿는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영국 인상주의 작품들을 보면 (핸리 허버트 라 생처럼) 마네나 모네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그래서 프랑스 화가들도 터너를 인상주의의 선구자로 인정했다고 한다.
영국 인상주의와 프랑스 인상주의를 비교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오랜만에 보는 좋은 전시였고 도록도 훌륭하다.
예술은 드라마나 영화, 수다 떠는 것, 맛있는 음식 등등처럼 삶을 자극하는 즐거움 중 하나인 것 같다.
<재미>가 느껴진다는 말이다.
약간의 배경 지식과 경험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tv처럼 일차적으로 접근하기는 다소 어렵지만, 어쨌든 스노비즘이 아니고서도 얼마든지 삶을 자극하는 기쁨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여운이 오래 남는다는 점에서 일차적인 오락보다 한 단계 높다고 생각한다.
예술이 고상하고 다른 것들에 비해 월등하게 우월한 분야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확실히 예술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해 주고 나같은 평범한 사람에게도 굉장한 기쁨을 주는 놀라운 매체임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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