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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과 궁녀 - 역사를 움직인 숨은 권력자
박영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으로 유명한 박영규씨 책.
오래 전에 막 출간됐을 당시 어쩐지 드라마 <대장금> 의 인기에 편승된 책 같아 흥미는 있었지만 외면했던 책이다.
그러다가 얼마 전 서점에서 새로운 디자인으로 재출간된 걸 보고 우연히 읽게 됐는데 생각보다 꽤나 전문적인 내용이라 도서관에서 빌려 본격적으로 읽게 됐다.
1편은 환관의 역사와 유명한 환관에 관한 내용인데 사료가 부족하다 보니 중국 역사를 많이 차용했다.
무엇보당 유용했던 부분은 고려 시대, 특히 몽골에 지배를 당하던 시기에 활동했던 환관들을 통해 당시 역사를 상세히 알 수 있었다는 점이다.
요즘은 고려 시대도 드마라로 종종 만들어져 예전보다는 더 친숙하게 와 닿기는 하지만, 그래도 조선왕조이 비하면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 이런 책을 통해 당시 역사에 대한 지식을 보충하게 된다.
제일 흥미있는 왕은 원의 황제 계승에도 깊이 관여하고 티벳으로 유배도 갔던, 세조의 손자이기도 했던 충선왕일 것 같다.
충선왕은 충렬왕과 세조 쿠빌라이의 딸인 제국대장공주의 아들인데 원나라 황실의 힘을 이용해 아버지와 정권 다툼을 벌여 아버지를 상왕에 앉히고 등극했을 정도로 정치력이 대단했다.
그는 원 황실에서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 계국공주와 결혼했고 무종이 즉위할 때 큰 공을 세워 고려왕 뿐 아니라 심양 왕의 지위도 하사받는다.
나중에 두 개를 겸한 게 문제가 되자 고려왕은 아들 충숙왕에게 물려 주고 심양왕만 유지할 정도로 심양왕의 지위가 높았다고 한다.
그를 공격한 고려 출신 환관이 바로 독고사이다.
영종이 즉위하자 독고사가 충선왕을 모략하여 티벳으로 유배를 가기도 했는데 놀라운 정치력을 발휘하여 오히려 독고사를 죽이고 다시 정치에 복귀한다.
얼마 전에 공민왕을 드라마로 만들기도 했는데 이 충선왕이라는 인물도 드라마화 하기에 굉장히 매력적일 것 같다.
그 외에도 고려가 계속 독립국으로 남을 수 있게 힘을 쓴 방신우라든지, 8세에 즉위한 충목왕에게 영향력을 행사한 고용보, 충렬왕 때의 환관 도성기와 최세연 등 원에 건너가 출세한 환관들이 많이 등장한다.
고려 입장에서 보면 남의 나라에 가서 본국의 왕을 쥐고 흔든 굉장히 나쁜 간신의 전형이겠으나 신분 사회에서 놀라운 출세를 한 화려한 이력을 가진 인물들이라 꽤나 흥미롭다.
조선의 유명한 환관으로는 대범하게 세제 시절 영조를 공격하려다 오히려 경종에게 처형당한 박상검이나 조선 초 환관제도를 정착시킨 김사행과 조순, 태종을 보필한 노희봉, 단종의 폐위와 함께 처형된 엄자치, 연산군에게 끔찍하게 살해된 김처선 등이 있다.
환관들이 황제를 쥐고 흔들었던 중국의 역사에 비하면 고려나 조선은 환관이 활약할 수 있는 폭이 상당 부분 제한되어 있었는데 환관이 왕의 친위대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아 전통적으로 왕권이 신권에 비해 약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 외 궁녀 편은 워낙 많이 알려져 있어 아주 흥미롭지는 않았다.
역시 부족한 사료의 한계를 실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