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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서유기 - 중국 역사학자가 파헤친 1400여 년 전 진짜 서유기!
첸원중 지음, 임홍빈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도서관에서 처음 받아 보고 두께에 살짝 기가 질렸던 책이다.
660페이지의 두꺼운 책은 근래 들어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여행을 다녀오는 바람에 계속 못 읽고 있다가 오늘이 반납 마감일이라 어쩔 수 없이 급하게 읽었는데 생각보다 내용이 쉬워서 한 번에 쭉 읽게 됐다.
역시 TV 방송물을 책으로 옮겨서인지 내용이 상당히 평이하다.
마치 TV 속의 이미지를 글로 설명한다고 해야 할까?
약간 중언부언 하는 점도 없지 않아 조금 더 압축해서 썼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지만 현장이라는 사람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된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다소 불만스러운 점을 먼저 말하자면, 현장이라는 인물에 대해 방대한 책을 쓰다 보니 너무 이상화시켜 정말 그랬을까? 이런 의문을 품게 된다.
구글을 검색하면서 읽었는데 신동아에 기고된 어떤 글에 따르면 현장이 당 태종의 지원 아래 서역 기행을 떠났기 때문에 대당서역기에 여러 나라의 정보들이 자세히 기록됐다고 되어 있었다.
마치 한 무제 때의 장건이나 명의 영락제 때 정화처럼 말이다.
그런 거창한 국가적 지원은 아니라 할지라도 어쨌든 완전히 순수하게 불경만을 구하러 간 건 아니었다는 뉘앙스였다.
이 책의 여러 정황 증거들로 봐서는 정말 개인적인 바램 때문에 중앙 아시아를 넘어 인도로 간 것 같은데 중요한 것은, 이 책에서 설명하는 대로 현장 개인의 힘으로 인도와 중국 간의 교역과 외교 관계가 이루어졌다기 보다는, 서역 경영에 관심이 많던 당 태종이 19년을 서역에서 보내고 온 현장의 중요함을 인식하고 그에게 관심을 보인 게 아닐까 싶다.
책에서는 모든 게 다 현장의 높은 학식과 고결한 인품 때문에 온 인도 국왕들과 당 태종까지 감복해 두 지역간의 사절이 오고가고 대승불교가 전 인도에 퍼졌다는 식으로 너무 미화시켜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 많았다.
그러나 어쨌든 중요한 것은, 당시 중국과 인도가 지금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서로에 대해 많이 알고 교류하고 있었고, 중국에서 온 승려라는 이유로 대우를 받을 만큼 대당제국의 위상이 상당히 높았다는 점이다.
개인 자격으로 외국에서 온 유학생에 불과한 스님이 서역의 여러 왕들과 친분을 가질 수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한 가지 반성했던 것은 내가 불교에 대해 너무 무식했다는 점이다.
막연히 불교는 누구나 성불할 수 있는 자기 수양의 종교가 아닐까, 기독교나 이슬람교에 비하면 교리가 약하고 미신적 요소가 많은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정말 그야말로 몰라서 하는 소리였다.
책에 소개된 수많은 불교 이론과 경전, 고승들에 대해 읽으면서 새삼 불교 사상에 관심이 생겼다.
그리고 역시 개창자인 붓다가 인도 사람인 만큼 인도 철학에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당장 서유기의 손오공이라는 캐릭터만 해도 인도의 유명한 서사시 <라마야나>에 등장하는 원숭이 하누만을 모델로 한 것이라고 한다.
저팔계의 팔계는 승려로 출가하기 전의 사미나 거사 같은 사람들이 받는 여덟 가지의 계율이라고 한다.
현장은 미륵불을 추종하는 유식종의 창설자인데 이 유식론을 배우기 위해 날란다 서원으로 유학을 떠난 것이다.
지식이 얕아서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이론이라고 한다.
불교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싶다.
현장은 산스크리트어에 능통하고 유가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유교 경전에도 소양이 있어 인도의 불경 번역에 탁월한 업적을 남긴다.
그는 흔히 동진의 구마라습에 비교된다.
이 분 역시 불경의 한화 작업에 큰 업적을 남기신 인도의 승려인데 유교적 교육은 받지 못해 비교적 쉬운 말로 번역했는데 현장이 이런 약점을 극복했다고 한다.
그는 태종의 명으로 대당서역기를 쓰고 국가의 지원을 받아 인도에서 돌아온 40대 후반부터 20여 년 동안 불경 번역에 매달여 2000 여 권에 달하는 엄청난 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했다.
한가지 슬픈 에피소드는 그가 가장 아끼는 제자가 당 황실의 공주와 사통하는 바람에 처형당했다고 한다.
현장은 중국의 도덕경 같은 것도 산스크리트어로 번역해 인도에 전했다고 하는데 불행히도 그의 산스크리트어 번역본은 전해지지 않는다.
현장이 사막을 건너 북인도까지 이르렀던 여정을 살펴 보면 상당 부분은 지금의 신강 위구르 자치 구역이다.
거기에 수많은 나라들이 존재했음을 대당서역기를 통해 알게 됐다.
얼마 전에 위구르족과 한족의 유혈 충돌도 있었는데 위구르 민족에게는 아픈 역사라는 생각도 든다.
인도에서는 불교가 금방 사그라든 줄 알았는데 상당 시간 동안 여러 왕국에서 신봉되고 경전과 여러 교리들이 완성됐음을 알게 됐다.
이슬람 세력이 몰려 오면서 점점 밖으로 쫓겨 가게 됐으나 고타마 싯다르타의 열반 이후 유명한 아쇼카 왕이나 카나슈카 왕 치세에 구전되던 부처님의 말씀이 하나의 경전으로 정착하면서 안정화를 거친다.
현장이 유학했던 날란다 사원은 유명한 학승들이 유학하던 곳으로 이슬람의 침입 후 폐허가 됐으나 1980년대에 대당서역기를 토대로 중국의 지원 아래 현장을 발굴하여 복원했다는 미담도 전하고 있다.
저자는 그만큼 대당서역기가 믿을 만한 자료임을 강조한다.
한 가지 특기할 만한 일은, 관세음보살에 대한 명칭이다.
사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본다는 표현이 비유적이면 몰라도 말이 안 되긴 하다.
소리를 들어야지 어떻게 본단 말인가?
예전에도 의문을 품었던 부분이다.
그런데 현장의 책에 왜 이런 오해가 일어났는지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산스크리트어로 관세음보살은 세상을 자유자재로 본다는 두 단어가 합쳐진 말로써 관자재보살이라 번역해야 맞다.
그런데 두 단어가 합성되는 과정에서 최초 번역한 사람이 그 뜻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 세상의 소리를 본다도 해석하는 바람에 관세음보살로 알려졌다는 것이다.
지금도 일부에서는 원뜻을 살려 관자재보살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발음이 좀 부자연스럽긴 하지만 관세음 보다는 관자재보살이 훨씬 이치에 맞는 표현 같다.
또 현장은 인도라는 말의 어원을, 산스크리트어로 달이라는 뜻으로 해석했는데 후대 승려는 다른 책에서 이것은 현장이 좋은 뜻으로 해석한 것이고 원래 인도를 가리키는 인디카라는 말이 있었음을 지적한다.
말의 어원을 추적한다는 게 무척 흥미롭다.
분량에 비해 너무 쉽고 재밌게 읽은 책이다.
항상 모호하기만 했던 서역의 이미지가 좀 더 생생하게 다가오고 불교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