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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 교수의 성서고고학 이야기
김성 지음 / 동방미디어 / 2002년 1월
평점 :
품절
도서관에 가면 우연히 좋은 책을 집어 들 때가 있다.
항상 읽어야 할 책은 많고 시간은 없기 때문에 우연히 발견하는 책은 그 때가 아니면 기억 속에 잊혀지기 마련이니, 어쩔 수 없이 먼저 선택을 하게 된다.
영 아니다 싶은 책도 있지만 이렇게 좋은 책을 만나는 행운이 찾아 오기도 한다.
이런 게 도서관의 묘미가 아닐까?
일단 사진이 마음에 들었다.
전체가 컬러 사진으로 거의 한 면이 다 사진이다.
그래서 책이 무척 예쁘다.
아쉬운 점은, 이게 90년대 출판된 책이라 업데이트가 안 됐다는 점이다.
고고학도 끊임없는 발굴을 통해 계속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이런 걸 들 수 있다.
재작년엔가, 성서 속의 미스레리 뭐 이런 취지의 DVD를 도서관에서 빌렸던 적이 있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보게 됐는데 중동의 골동품 시장에서 발견된 석류 모양의 토기에 야훼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었다.
이것은 곧 야훼의 존재를 최초로 알려 주는 증거물이 되어 여러 중개상을 거친 후 최종적으로 이스라엘 박물관에 전시됐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가짜였다는 판명이 나 결국 이스라엘 박물관에서는 전시를 철회했다는 내용이었다.
한마디로 사기극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는 버젓히 그 토기의 명문이 고대로부터 야훼 신앙이 존재했다는 증거로 실려 있다.
개정판이 나왔다면 이 부분은 분명히 삭제됐을 것이다.
그 외의 여러 부분들은 굉장히 유익했다.
핑컬스타인의 <성경: 고고학인가, 전설인가>를 읽을 때 복잡하고 어려웠던 개념들이 쉽게 설명되어 성서시대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저자는 기독교인인 것 같은데 성경문자주의에 함몰되지 않고 학자라는 본분을 잊지 않고 근거에 입각해 매우 합리적인 주장을 펼친다.
흥미로운 사실들을 몇 가지 써 보면,
1. 모세가 결혼한 미디아 여인은 오늘날의 사우디아라비아를 뜻한다고 한다.
2. 이집트의 힉소스 지배기를 저자는 이스라엘의 족장들로 본다.
즉 요셉이 이집트로 건너와 재상을 하던 그 시절이 바로 이민족 지배기인 힉소스 왕조라는 것이다.
이들이 물러가면서 자연히 이스라엘인들은 노예 신세로 떨어지고 출애굽을 감행한다.
이 부분은 선뜻 동의할 수 없는 게 단순히 스케럽 등에 기록된 왕의 이름이 야곱이었다는 식의 비슷한 발음으로 추정한 거라 근거가 약하다.
힉소스인들은 말을 탄 전사들로 알고 있는데 과연 이스라엘 민족과 얼마나 연관성이 있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겠다.
출애굽 자체가 넌센스고 오히려 이스라엘 민족은 팔레스타인의 정착민이었다는 핑컬스타인의 이론을 지지하는 나로써는 더 많은 증거가 필요하다.
하지만 흥미로운 가설이었다.
3. 40년 간 광야에서 방황하면서 숭배했던 금송아지는 바로 이집트의 전통이라고 한다.
암소의 형상으로 대변되는 하토르 여신이 터키옥 산지에서 숭배되었는데 이들이 방랑했던 광야가 이런 금광석 채굴 지역과 유사하다고 한다.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여보로암도 황소를 숭배했다.
이집트와 팔레스타인의 문화 교류를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그들이 괜히 금송아지를 만들었던 게 아니다.
저자는 재밌는 지적을 하는데, 당시 기술로 금송아지는 어림도 없고 (주조 기술 부족) 아마 얇게 금박을 입혔을 거라고 한다.
(어쩐지 신성모독의 냄새가 난다^^)
4. 소돔과 고모라는 아마도 초기 청동기 시대인 기원전 3000년 경으로 추정된다.
가장 유력한 지역이 밥 에-드라인데 이 곳은 기원전 3000년 이후의 주거지가 전혀 발굴되지 않아 그 후 버려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이 곳을 사해 문명지로 보는데 롯의 딸들이 아버지와 근친상간해 낳은 자손이 바로 이스라엘의 적인 모압과 압몬족이니 이 설화는 요단 건너편에 사는 이민족에 대한 악의적인 해석으로 본다.
5. 사라진 대륙 아틀란티스의 전설은 테라 섬의 화산 폭발은 아니었을까?
기원전 2000년 전부터 1500년 경에 이 섬의 화산이 폭발해 지중해로 가라앉았고 그 여파로 크레타 섬의 미노아 문명은 멸망하고 그리스 본토의 미케네 문명으로 이주한다.
이 전설은 이집트인에게서 솔론이 전해 들은 이야기를 플라톤이 책에서 보고 기록한 것이니 개연성이 있어 보인다.
저자는 한 발 더 나아가 테라 섬의 폭발로 인해 하늘이 어두워지고 화산재로 햇빛이 차단되어 흉년이 들고 강물이 말라 개구리와 메뚜기떼들이 날뛰었던 재앙에 대한 기억이, 성경에 묘사된 출애굽 당시의 이집트의 열가지 재앙으로 표현된 것은 아닌가 추론한다.
흥미로운 해석이다.
6. 왜 아브라함은 갈데아의 우르 사람이라고 설정됐을까?
그것은 성경이 쓰여질 무렵인 기원전 6세기 경에 가장 발달된 문명이 바로 바빌로니아였고 그 근원이 바로 갈데아의 우르였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말하자면 우리 조상은 최고의 문명지에서 왔다는 자부심의 표현인 셈이다.
아브라함은 기원전 2000년 경의 중기 청동기 사람으로 이해된다.
7. 텔 단 석비에 최초로 다윗 왕조가 아람어로 기록됐다.
아람의 벤하닷 왕이 유대의 아사 왕의 부탁을 받고 원정하여 북 이스라엘의 단 지역을 정복한 것을 기념한 석비인데 여기서 다윗이 최초로 언급됐다고 한다.
이것은 핑컬스타인의 저서에서도 다윗을 역사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라고 언급했었다.
8.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모압 왕 메샤의 석비에서는 야훼라는 이름이 최로로 등장했다.
이스라엘을 물리치고 야훼의 성물을 탈취하여 모압의 신 그모스에게 바쳤다는 내용이다.
이것 역시 핑컬스타인의 책에서 읽은 바가 있다.
같은 내용을 다른 책에서 보니 확실하게 인지가 된다.
9. 흥미로운 아라랏 산과 노아의 방주 이야기.
저자는 창세기에 등장하는 아라랏이 단순히 지금의 터키에 있는 산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아라랏 지역 즉 우라르투 왕국의 히브리어식 표기라고 설명한다.
이 곳은 반 호수 중심의 고원지대인데 기원전 900년부터 590년까지 우라르투 즉 아라랏 왕국이 존재했다고 한다.
기원전 6세기 무렵 바빌론 유배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최종 편집된 창세기의 홍수 이야기는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 널리 퍼진 수메르의 홍수 신화에 영향을 받아 (그리스 신화에도 등장한다) 기록됐고, 기원전 3세기 무렵, 베로소스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아라랏은 아르메니아의 주디산이나 아르 산, 즉 현재의 아라랏 산을 가르킨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창세기 집필 당시에는 현재의 아라랏 산과 별 관련이 없었던 셈이다.
그러니 아무리 아라랏 산 꼭대기를 뒤져도 뾰족한 증거가 안 나올 수 밖에.
10. 북이스라엘이 망한 뒤 사라진 열 지파의 후예가 바로 사마리아인이라고 알려졌는데 의외로 이들이 유대교에서 분리되어 나간 것은 기원전 2세기 무렵, 즉 이스라엘 멸망 후 한참 지나서라고 한다.
이들은 이제 겨우 600여 명이 남은 소수 민족으로 보호를 받고 있고, 모세 5경만 믿는다고 한다.
유다인들이 성전이 파괴되고 성궤를 잃어 버린 후 희생제사 자체가 사라져 버린 반면, 이들은 여전히 성전이 있던 그리심 산에서 희생제의를 지낸다고 한다.
11. 여리고의 성벽 이야기도 빼 놓을 수 없다.
세계 최초의 도시라고 일컫어지는 여리고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만 여년 전에 이미 성벽을 세우고 도시를 건설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기원전 16세기 무렵, 중기 청동기 시대에 파괴되어 다시는 재건되지 않고 주거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러니 여호수아가 팔레스타인으로 건너 온 기원전 13 세기 무렵에는 나팔을 불어 성벽을 허물고 싶어도 성벽 자체가 없었으니 허구라는 얘기다.
이 설화의 맹점도 역시 핑컬스타인의 책에서 읽은 바 있다.
일각에서는 출애굽 시기를 기원전 15세기까지 끌어 올려 생각하기고 한다는데 그러면 또 고센 지역에 신전 공사를 시킨 이집트의 람세스 2세 때와 맞지를 않는다.
저자가 기독교인이면서도 이렇게 학문적으로 분석적인 책을 썼다는 게 참 흥미롭다.
그러니 성경문자주의자들만 진정한 기독교인은 아니라는 얘기다.
저자의 말대로 성경은 고대인들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쓰여졌다.
그러므로 그들이 어떻게 세상을 이해했는지에 대해 고민해야지 단어 하나하나가 모두 과학적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오히려 성경의 가치를 깍아 먹는 일이리라.
고고학이 좀 더 발전하여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