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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귀신 죽이기
박홍규 지음 / 생각의나무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아, 박홍규씨 정말 왜 이러나 싶다.
그리스 신화 다시 보기, 다른 관점에서 보기 뭐 이 정도까지는 좋은데 그리스 신화는 막장 드라마 보다 더 하다, 이건 아니잖아.
어쩐지 자꾸 천박해진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스 신화 열풍에 대한 반발심으로 삐딱하게 돌아보는 그리스 신화, 이 정도까지는 좋은데 왜 자꾸 신화 자체가 갖는 가치를 훼손시키는지 모르겠다.
그리스 신화는 경쟁적이고 전투적인 상업 민족의 제국주의적, 가부장적, 남녀차별적 시선이고, 단군 신화는 평화를 사랑하는 농경 민족의 평등한 이야기라는 식의 억지 대입, 도저희 공감할 수가 없다.
이 분의 다른 책, 이를테면 루쉰이나 카프카 평전을 꽤 재밌게 읽은 독자로써 이런 자극적 서술은 안타깝다.
흥미롭게도 나는 사실 그리스 신화에 대해 무지한 편인데 이 책을 통해 관심을 갖게 됐다.
교수라는 신분 때문인지 꼼꼼하게 신화 자체를 리뷰하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비판하려면 제대로 알아야 하기 때문인가?
군데군데 억지스런 해석들이 눈에 많이 거슬렸지만 얻게 된 지식들도 많았다.
본격적으로 신화를 좀 읽어 보고 싶어졌다.
성경도 그렇지만 특히 신화는 그 당시를 살던 고대인들의 가치관이고 세계관이라 생각한다.
그들이 사유하는 방식에 대해 현대의 관점으로 비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다면 고대의 모든 저술들은 페미니즘 관점에서 죄다 쓰레기고 다 제국주의적이지 않겠는가?
오히려 신화나 고전이 현대에까지 살아 남아 끊임없이 현대인들에게 깊은 감명과 자극을 주고 이차적인 생산물, 이를테면 소설이나 영화, 회화, 음악이 모티브가 된다는 것이 더 위대하고 가치있는 일 아닐까?
서구식으로 세계화가 되어 극동의 조그만 나라에서도 자국의 건국 신화 대신 낯설고 이질적인 왠 지중해 반도의 민족 신화를 열심히 외우고 아는 척 해야 교양인입네 행세하는 풍토가 못마땅 할지라도 어쩌겠는가, 그것이 우리가 지금 향유하고 있는 현대 문화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왜 평화롭고 평등한 농경민의 단군 신화는 관심도 없고 근친상간에 아버지 살해나 일삼는 특히 여성과 외국인을 야만시 하는 그런 비도덕적인 신화에 열광하냐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서구 사회에서 끊임없이 재해석 되고 서구 문화의 근간을 이루어 서구식으로 세계화된 오늘날에도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으나, 단군 신화는 문화적 컨텐츠가 너무나 부족하지 않은가.
오히려 우리 것이 소중하다면서 고대의 기억을 살려내는 억지스런 행위가 민족주의에 이용되고 치우 천황이 우리 민족의 시조였고 중원 대륙은 우리 것이었네, 이런 식으로 막 나가게 되버린다.
문화는 자연스럽고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는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의 관점으로 고대를 평가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이 또 있을까?
문화를 우리 것과 남의 것으로 구분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정신 세계에 이로울까?
고종석이 에세이에서 인용했던 말, 우리 모두는 그리스인이다, 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