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황의 역사와 문화 - 동서문화 교류의 십자로, 실크로드의 요충, 돈황의 역사지리학적 통사
나가사와 카즈토시 지음, 민병훈 옮김 / 사계절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책표지가 너무 예쁘다.
디자인이 무척 잘 된 책 같다.
분량도 260여 페이지도 짧아서 부담이 없고 내용 역시 평이하다.
본격적인 학술서라기 보다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교양서 수준으로 나 같은 독자들에게 딱이다.
학자들이 이런 교양서를 좀 많이 출간해 줬음 좋겠다.
역자인 민병훈씨는 중앙박물관의 학예사로써, <큐레이터와의 대화>에서 몇 번 뵌 적이 있다.
전라도 사투리를 쓴다 했더니, 고향이 전주셨다.
설명을 들으면서 역시 학예사들은 전문가구나 감탄했는데 번역도 무척 매끄럽게 잘 하신 것 같다.
뒷쪽에 한국의 돈황학에 대해 보론을 첨가해서 더 도움이 됐다. 

사실 돈황은 막연히 석굴이 있는 중앙 아시아 지역이라는 것 밖에는 몰랐다.
유럽이나 미국, 중국, 동남아시아 다 다녀오고 나면 이제는 좀 특이한 곳에 가 보자, 싶을 때 여행지로 떠오르는 곳이라고 할까?
그만큼 이국적이고 멀게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이 돈황은 실크로드의 시작점으로 중국의 서역 경영에 시초지가 됐다고 한다.
기원전 5세기에는 월지가 점령하고 있다가 기원전 3세기 무렵 묵특 선우에 의해 통일된 (아버지 두만 선우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유명한 인물) 흉노족에게 넘어 갔고 한무제의 흉노 정벌 후 비로소 중국의 군으로 편입됐다.
한무제가 기존의 주인인 월지에게 도움을 청하고자 보냈던 사신단이 바로 장건이다.
돈황의 중요성은 페르시아, 심지어 로마 등에서부터 시작된 무역상 행렬이 중국으로 흘러 들어가는 관문지였다는 것 외에도 (즉 실크로드로서의 의의) 인도의 불교가 동아시아로 전해진 중요한 루트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곳은 석굴들이 많고 남북조 시대의 혼란기에도 북위 왕조들은 끊임없이 석굴을 짓고 경전을 편찬했다.
중국을 통일한 수와 당 역시 불교를 지지했기 때문에 불교 문화는 돈황에서 꽃을 피웠으나 혼란기가 지나가고 11세기에 송이 지배력을 상실하면서 탕구트 족의 서하가 정복하면서 불교는 사라졌다.
서하 침략시에 석굴 속에 봉인된 문서가 바로 그 유명한 돈황 문서인 것이다. 

이 고문서는 사해 문서와 비견될 만큼 중요성이 크다고 한다.
저자가 일본인이라 그런지 청말 스타인과 펠리오, 오타니 등에 의한 문서나 벽화 약탈을 비교적 호의적인 관점에서 써 놔서 읽기가 좀 불편했다.
명백한 문화재 약탈인데 이들로 인해 돈황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어 오늘날 돈황학이 꽃피게 됐다는 식으로 미화시킨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이후 프랑스에서 이집트학이 유행했고, 인도차이나 점령 이후 극동학이 꽃을 피운 것처럼 돈황 고문서의 발굴로 돈황학이 성립된 것은 사실이라 할지라도, 제국주의의 무차별적인 문화재 침탈에 대해서는 분명히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교적 쉽게 잘 써진 책이고 돈황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개략적인 지식을 갖게 됐다.
관광객들로 인해 벽화가 손실되고 있다니 안타깝긴 하지만 기회가 되면 꼭 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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