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사 이병주 전집 29
이병주 지음 / 한길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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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서재에 있는 책을 읽게 됐다.
이건 순전히 아빠 취향이다.
집에 내려 왔는데 이것저것 뒤적이다가 제목이 특이해 골라 잡게 됐다.
역시 대표작인 <마술사>가 가장 흥미로웠다.
그러나 크게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뭐랄까, 너무 작위적이고 통속소설 느낌이 강했다.
도입부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송인규라는 마술사가 서커스단과 계약을 맺고 인도 마술을 보여 주기로 했는데 막상 무대에 서게 되자 자긴 못한다고 버틴다.
큰 돈을 들여 그를 고용한 곡마단원들은 송인규를 폭행하고 화자가 객주에서 그를 구해주면서 사정 얘기를 듣게 된다.
송인규는 일제 말기에 학도병으로 버마에 끌려간다.
거기서 일본 관리들에게 폭탄을 투여한 후 잡힌 버마인들 중, 크란파니라는 인도 마술사가 끼여 있다.
그는 크란파니의 독립의식에 감동받아 식민 조국의 현실에 눈 뜨고, 사형 직전에 그와 함께 탈출한다.
여기까지는 꽤 흥미진진했다. 

그러나...
송인규가 크란파니 집에 머물면서 마술 수행을 하는 이야기부터는 좀 황당무계한 느낌이 강했다.
불가촉천민인 크란파니가 자기 계급에서는 똑똑한 여자가 없다는 이유로 이웃 버마에서 아홉 살짜리 어린 아이 인레와 혼인했다는 설정도 부자연스럽고 (평등을 외치는 자신의 생각에 모순되지 않은가) 송인규가 수련 끝에 깨달음을 얻고 희열을 느껴 인레와 섹스를 하게 된다는 것도 억지스럽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소설 속의 섹스는 지나치게 미화됐던지, 혹은 지나치게 천시된다.
결국은 스승의 아내와 불륜을 저지른 셈인데 온갖 수식어를 동원해 법열의 순간을 섹스로 승화시켰다는 그런 논리가 억지스럽다.
또 한 번 송인규와 섹스를 했기 때문에 순결을 잃어 다시는 크란파니를 모실 수 없다는 설정도 남성 위주의 시각처럼 보인다.
결국 성이란 언제나 남성이 주도권을 쥐기 마련인가?
송인규가 인레하고만 섹스를 하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술집 여자와 정사를 나눈 후 마술을 하다가 한쪽 눈을 잃었다는 설정도 너무나 작위스럽다.
부부 관계도 아닌데 평생 한 사람과만 섹스를 해야 한다는 게 도덕적으로 합당한 건지 모르겠다.
이렇게 도덕심이 발달한 나라에 대체 색주가는 왜 있는 것인지.  

맨 마지막 단편, <망명의 늪> 에서도 섹스 얘기가 나온다.
주인공은 술집 작부에게 얹혀 사는데 그가 무위도식 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자신의 큰 물건 때문이라고 한다.
내가 이 좋은 걸 누구에게 보내, 절대 못 보내 하는 식의 대사는 어쩐지 현실적으로 와 닿지가 않는다.
남자들은 실제보다 훨씬 더 큰 성적 환상을 갖고 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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