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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루트를 찾아서 - 동이가 열었던 위대한 문명의 길 ㅣ 지식기행 1
이형구.이기환 지음 / 성안당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일단은 재밌게 읽었다.
경기도 사이버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이다.
신간이라 인기가 많아서인지 두 군데 도서관에서 대출 거부가 되고 용인시 도서관에서 빌려 읽게 됐다.
도판도 많고 직접 중국의 유적지를 찾아가 세밀하게 답사한 노력도 돋보인다.
책의 결론은, 중국 문명의 시작은 중원에서 일어난 한족의 황하문명이 아니라 동북쪽의 동이가 세운 훙산문화라는 것이다.
동이족이란 당시 만리장성 너머에서 랴오둥 반도, 한반도 북부 지역까지 넓게 퍼져 살던 한국인을 비롯한 말갈인, 여진인 등등이고 이들이 중원을 쳐들어가 세운 나라가 바로 상나라라고 한다.
기자가 단군과 같은 민족이라는 것.
한 발 더 나아가 상나라가 갑골문을 만들었으니 결국 동이족인 우리 민족이 갑골문을 발명했다는 좀 이상한 결론을 낸다.
저자들은 동이를 반드시 한국인으로만 규정하는 건 아니다.
한족과 구분되는 만리장성 이북의 여러 민족을 아우르는데 그러나 역시 중심 민족은 한국인으로 보고 있다.
몽골이나 티벳에서도 단군신화와 유사한 전설이 전해 오는데 단군신화 기록이 앞서니 우리가 원류다, 뭐 이런 논리다.
중국의 동북공정이 심각한 수준이고 수당의 침략을 막아낸 고구려를 지방정권으로 치부하는 것을 비난하는 이 상황에서 갑골문이 동이족의 작품이고 동이가 곧 한국인이다, 이런 식의 비약은 어쩐지 불편해 보인다.
민족이라는 개념이 근대의 창작물이고, 그러므로 오늘날의 국경을 근거로 고대인을 논할 수 없다는 취지는 이해가 가면서도 막상 결론이 동이족이 세운 나라가 상나라고, 중국 문명의 근원은 황하 문명이 아니라 랴오둥 반도 근처의 홍산 문화이며, 고조선과 상나라는 한 민족이었다는 식의 결론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탈민족주의인 것 같으면서도 자꾸 중화주의와 겹쳐 보이는 건 왜일까?
<고조선은 천자의 나라였다> 는 이덕일의 책이 생각난다.
기자조선의 실체를 인정한 점은 긍정적으로 생각된다.
지금까지는 기자가 중국인이라는 이유로 기자조선이 부정되거나 무시되기 일쑤였는데 저자는 동이족이라는 큰 범주로 볼 때 상나라나 고조선이나 다 우리 민족의 나라다는 결론을 내린다.
강하게 드는 의문점은, 상나라가 중원으로 쳐들어가 세운 상나라는 역대 왕의 이름까지 낱낱이 밝혀질 정도로 갑골문이나 기타 유물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왜 고조선의 문헌 정보는 기껏해야 팔조법이 전부일까?
갑골문의 발명자인 상나라 후예들이 세운 나라가 고조선이라면 상나라 보다 훨씬 발달된 문명을 건설했을텐데 왜 고조선의 실체는 모호한 것일까?
그저 단군이 1500년 간 다스렸다는 전설 같은 얘기만 전해져 올까?
저자는 중국이 하나라의 연대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에 대해 전설을 역사 속으로 끌어들인 중화주의의 표상이라고 비난하지만, 박물관의 학예사에게 하나라가 역사적으로 인정됐다는 말을 분명히 들었고 (유물들이 쏟아져 나와 이미 세계 학회에서 인정했다고 했다) 산해경이나 삼국유사에 나온 단군의 건국 연도를 다른 고고학적 증거 없이 사실로 받아들이는 저자의 태도는 모순적으로 보인다.
중화주의나 동북공정 같은 중국의 민족주의적 시도는 경계돼야 마땅하지만, 우리 역시 자민족중심주의에 빠진 것은 아닌지, 같은 잣대로 재야 할 것이다.
인류의 기원, 민족의 시작을 밝히는 작업은 남아 있는 유물이 극히 적기 때문에 어렵지만 그만큼 가치있고 흥미로운 일 같다.
유럽인들이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을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지금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동북아의 문명 시작점도 한중일이라는 국가를 넘어서 유대감을 가지고 연구되길 바란다.
다른 관점의 책을 읽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