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국왕의 일생 규장각 교양총서 1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엮음 / 글항아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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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이런 쪽에 관심이 많다 보니 이제 어느 정도 기본적인 내용은 대충 알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자세히 파고들면 금방 얕은 지식이 바닥을 보이긴 하지만...
신병주씨가 쓴 의궤나 테마 한국사 시리즈에서 소개된 내용들과 대동소이 하다.
화려한 도판들과 함께 여러 저자들이 다양한 측면에서 조선 국왕의 일생을 조명한 점은 전문적이면서도 쉽고 재미있게 풀어 썼다는 장점이 있으나 한편으로는 기존에 익히 알려진 내용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좀 밋밋하다는 게 단점이겠다.
하여튼 재밌다.
기록문화의 산실인 조선왕조의 전통 때문에 또 바로 앞세대라는 점 때문에 우리는 조선 시대에 대해 상당히 많은 부분을 알 수 있고 끊임없는 흥미거리를 제공한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조선이 근대화에 성공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았다면, 혹은 프랑스 대혁명처럼 역성혁명이 아닌 진정한 시민계층의 혁명이 가능했다면 수 천 년을 이어온 우리의 전통이 보다 세련된 형태로 한국인들에게 전해지지 않았을까?
정조 시대까지만 긍정적인 서술이 보이고 순조 때부터는 세도정치, 민란, 근대화 실패 같은 부정적인 서술들이 지속되어 항상 안타깝다.
효명세자의 짧은 대리청정에 큰 아쉬움을 보이는 것도 (혹은 정조 독살설이 여전히 힘을 갖고 있는 것도) 조선 왕조의 몰락에 대한 후대인의 안타까움 때문일 것이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조선이라는 나라는 확실히 유학을 숭상하는 문치의 나라임이 분명하다.
국왕부터 유학을 몸으로 습득하고 실천하는 당대 최고의 교양인이자 학자이고 시인이었으니 말이다.
숙종이나 영조, 정조 등의 글씨와 시집, 문집 등을 보면 국왕의 유교적 교양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왕이라 할지라도 놀고 먹는 편한 위치가 아니라 신하의 모범이 되고 학문과 교양을 연마하는 매우 엄격하고 힘든 자리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걸 보면 확실히 조선 왕조의 역량은 놀랍고 매우 학문적이며 생산적이어야 마땅할텐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국난도 잘 이겨낼 만큼 기반이 튼튼했지 않은가) 왜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성리학 교조주의가 문제였던가?
절대 군주의 위치가 절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제멋대로의 자리가 아니고 신하들 못지 않는 학문과 교양과 자기절제를 통해 국정을 장악하는 타의 모범이 되는 자리였음을 확인했다.
심지어 반정으로 쫓겨난 연산군마저도 시를 좋아하는 문인이지 않았던가.
한문을 좀 할 줄 알면 역대왕들이 지은 한시들을 공부해 보고 싶다.
겨우 생활한자나 더듬더듬 아는 수준이라 서예나 한시의 깊은 맛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 들여다 보고 있어 참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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