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결혼문화와 젠더
엄익란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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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인데 경기도사이버도서관의 도움으로 드디어 읽게 됐다.
일단 여성차별의 대표적 문화권인 이슬람의 결혼문화를 여성학자의 눈으로 짚어 봤다는 시도가 마음에 든다.
아무리 이슬람 문화가 평화를 사랑하네 인본주의네 어쩌네 해도 명예살인이나 여성할례로 대표되는 잔혹한 여성 억압의 문화가 존재하는 한, 절대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이건 인종차별과도 같고, 오히려 문화 상대주의나 종교적 관용 차원에서 교묘히 은폐된다는 점에서 더 질이 나쁘다.
적어도 이런 명백한 차별과 억압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서구 사회가 기독교로부터 독립되어 심지어 예수가 막달라 마이라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다는 신성모독의 영화로 백만장자가 되는 이 시대에, 예언자를 희화화 했다는 이유만으로 살해 위협을 느낀다는 것은 여전히 이슬람 사회가 종교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억압당하고 있다고 밖에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기대했던 내용은, 이슬람 사회에서 여성의 실제적인 위치와 역할 등이었는데 처음에는 그런 식으로 나가는 것 같더니 뒤로 갈수록 결혼 풍속을 서술하는데 중점을 둬서 여성에 대한 책이라기 보다는 문화 풍속지 같다는 느낌을 줘서 어쩐지 용두사미가 되버린 것 같다.
소득이라면, 이슬람 사회도 역시 사람 사는 곳이기 때문에 일방적인 여성학대나 복종만이 강요되는 곳은 아니고 실제로 푸코가 말하는 미시권력 차원에서 여성 역시 은밀하게 그 권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다만 밖으로 드러낼 때는 남자를 통해 대신 할 뿐이고, 개방이라는 세계화 물결 속에 노출된 이상 많은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어디나 사람 사는 곳은 똑같다고 해야 할까?
그러고 보면 학자들이 단지 문헌과 통계 자료에 의존해 한 사회를 분석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편견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는 생각도 든다.
직접 그 사회에 뛰어들어 생생한 현장 체험이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단지 말을 위한 말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서구 학자들의 이슬람 문화나 아시아 문화 분석은 한계가 있어 보이고 그 문화권에서 자문화를 분석하는 이론과 학자들이 많이 나와야 할 것 같다.
이슬람 사회에서도 이제 서서히 여성 학자들이 제 목소리를 내고 있으니 보다 발전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길 기대한다. 

이슬람 사회와 유교 문화권의 결혼 문화는 많은 점에서 비슷하다.
지금은 많이 변하긴 했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결혼은 성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로써 선택이 아닌 거의 필수에 가깝다.
적정 연령이 되면 결혼에 대한 사회적 압력을 받게 되고 배우자 선택에 있어 부모의 영향력이 크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자발적인 독신이란 불가능한 것으로써 심지어 사제들도 전부 결혼을 한다고 한다.
배우자 선택은 전적으로 부모에게 달렸고 특히 여자가 청혼한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
결혼 의사는 가족 중 남자에 의해 대리되야 한다.
그래서 데이트라는 개념도 없다고 한다.
개인 대 개인의 만남이라기 보다는 집안끼리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결혼 문화와 유사하다.
단 이슬람 사회에서는 사촌혼을 선호한다.
심지어 한국에서는 동성동본이라는 이유로 생판 모르는 남과의 결혼까지도 강력하게 금지되어 왔는데 말이다.
체면을 중요시 하기 때문에 결혼식을 성대하게 거행하고 예물과 혼수로 신부의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것도 비슷하다.
남자는 여자를 부양할 경제적 능력으로, 여자는 순결과 외모로써 가치를 평가받는다는 것도 똑같다. 
그래서 집도 남자가 장만하고 심지어 혼납금, 즉 마흐르를 신부 집에 지불하고 이혼할 경우 떼 줄 재산을 미리 결혼계약서에 명시한다.
이 점은 좀 다른 것 같다.
우리는 오히려 지참금을 가지고 가는 문화인데 말이다.
여성의 사회 활동이 불가능한 사회에서 이혼을 당했을 경우 경제적 자립을 위해 마련된 제도가 바로 이 후불 혼납금이다.
재밌는 것은 서구 사회에서 결혼이 신과의 성스러운 맹세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이혼도 불가능하지만, 이슬람 사회에서 결혼이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계약으로써 증인이 필요하고 혼수품이나 혼납금 등을 모두 계약서에 기재하며 계약이 파기되면 이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어찌 보면 좀 더 현실적인 것 같기도 하다. 

이슬람 사회에서 명예란 스스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남에 의해 평가받는 타인의 잣대다.
남자의 명예는 여성을 보호하고 부양하는 등의 의무를 지킬 때 가능하다.
반대로 여자의 명예는 몸에 의해 가능하다.
즉, 순결과 정조를 지키면 명예로운 것이고 반대로 한 번이라도 순결을 잃게 되면 회복 불가능하기 때문에 죽어야 한다.
왜적과 손이 닿았다는 이유만으로 순결을 잃었다고 자결했다는 우리 민담이 생각나는 시점이다.
여성의 명예는 왜 여성의 육체로써만 대표되는가?
명예를 잃으면 그녀는 죽음으로써 그 값을 치뤄야 하고 개인은 집단과 동일시 되기 때문에 가족 내 여성이 명예를 잃으면 집안 남자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
이게 바로 명예살인이다.
이슬람 사회에서는 서구의 성문화를 문란하다고 비난하고 자신들이 순결하다고 도덕적 우월감을 느낀다는데 오히려 그들이 훨씬 더 육체에 집착하고 성에 예속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처녀막 재생 수술이 행해진다는 현실도 한국 사회와 비슷하다.
하긴 요즘에 설마 첫날 밤에 처녀가 아니라는 이유로 이혼한다는 미친 놈이 있을까 싶긴 하지만...
신부가 처녀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다른 여성이 들어와 손가락으로 처녀막을 뚫고 그 혈흔을 사람들에게 보여 줬다는 전통을 듣고 있자면 한숨이 나온다.
언제쯤 종교와 사회 관습이라는 명목의 이런 억압들이 사라질까? 

집단이 아닌 개인으로써 나를 정의할 수 있는 것, 집단에 함몰되지 않고 전적으로 내 결정과 자유를 존중받을 수 있는 것, 이것이 내가 바라는 가치이고 이상이다.
이런 점에서 어쩔 수 없이 나는 개인주의자이고 여전히 한국 사회의 집단 문화가 불편하다.
다만 어떤 사회의 문화를 평가하는데 있어서 다양성의 측면에서 봐야 할 것을 단지 경제력을 이유로 문화의 서열을 나누는 행태는 사라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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