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 잠들지 못하는 역사 1
이우상 지음, 최진연 사진 / 다할미디어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유네스코 등재 문화유산전에서 조선 왕릉 사진을 보고 감탄하여 관심을 갖게 됐다.
요즘에는 답사가 꽤 일반화 되어 왕릉도 훌륭한 답사 코스로 인지되고 있는지라 관련 책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
일단 사진이 훌륭하고 잘 몰랐던 왕이나 왕비들, 이를테면 단명한 예종이나 장순왕후, 헌종이나 효현왕후 등에 대해 조금이나마 능을 통해 정보를 얻게 되어 기쁘다.
저자가 꽤나 꼼꼼하게 자료 조사를 한 것 같다.
그러나 책의 가치를 깍아 먹는 것은 저자의 집필 태도다.
소설식 에피소드 삽입, 혹은 저자의 지나친 감정 노출이야 말로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가르는 분기점이라고 생각한다.
학술적이지 못하고 흥미 위주로 지면을 메우는 모습이 간간히 눈에 띄어 책의 가치를 깍아 먹는다.
그러고 보면 해당 분야를 전공한 사람들의 책은, 그 주장이 옳든 그르든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상당히 정밀하게 논지를 전개하는 것 같다.
아마추어 저술가들이 유의해야 할 점이다. 

사실 왕릉은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보지 못한 주제라 동9릉이나 서5릉이니 하는 용어들이 생소했다.
조선의 역사는 근대사이기 때문에 고려나 신라에 비해 많이 알려진 편이라 굳이 외우지 않아도 어디에 왕릉이 있는지를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는 사극도 도움이 된다.
역사 왜곡이나 어쩌니 하지만 대중에게 관심을 환기시키는 것만으로도 사극의 역할은 꽤 크다고 생각한다.
당장 성종의 원비 공혜왕후도 워낙 빨리 죽었고 계비인 폐비 윤씨 사건 때문에 거의 조명을 못 받는 인물이다.
그런데 구혜선 나온 사극에서 꽤 매력적인 캐릭터로 그려져 일반인들에게 공혜왕후라는 인물을 알리게 됐다.
그녀는 세도가 한명회의 넷째딸로 언니가 바로 예종의 원비인 장순왕후다.
이 둘은 열 두 살 차이가 나는데 한명회가 마흔 하나에 얻은 딸이다.
재혼도 아니고 정실 부인에게서 얻은 적녀이니 조선 시대에 마흔 이후의 노산도 꽤 많았던 것 같다.
당장 엄귀비만 해도 마흔 셋에 영친왕을 낳았다.
아이 낳다가 죽는 일이 다반사였던 당시 의료 수준을 생각해 보면 타고난 건강체들이었던 것 같다.
한명회의 셋째딸은 열 다섯 살에 세자빈으로 책봉되어 예종에게 시집간다.
그런데 나이차가 꽤 난다.
(이 책의 나이는 전부 만으로 나온다)
신랑 예종은 열 살에 불과했고 신부가 다섯이나 위다.
보통 세자빈이 열 살 전후에 책봉되는 걸 보면 세도가 한명회의 입김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여튼 시집오자 마자 임신을 해서 다음해 인성대군을 낳지만 불행히 산후병으로 곧 죽고 만다.
이 불쌍한 아들 역시 세 살 때 죽는다.
<왕과 비>에서 죽은 손자를 않고 오열하던 세조와 한명회의 모습이 떠오른다.
정말 사극의 효과는 대단하다!!
겨우 열 한 살에 아버지가 되다니, 놀랍다.
예종이 열 아홉에 사망했는데 이 아들이 살아 있었다면 당연히 대통을 이었을 것이다.
또다른 사위 성종이 왕이 되긴 했지만 한명회로서는 아쉬운 대목일 것 같다. 

또 재밌는 것은 폐비 윤씨의 나이다.
성종과 무려 열 두 살 차이다.
<왕과 나> 에서는 구혜선과 고주원이 각각 역할을 맡았는데 실은 굉장히 연상이었던 셈이다.
소년왕의 마음을 어떻게 훔쳤을지 흥미롭다.
윤씨는 양반이었던 윤기견의 딸로 28세 때 숙의에 책봉되고 공혜왕후가 죽은 후 왕비에 오른다.
성종이 왕이 된 게 열 두 살이었으니 나이로 봐서 후궁으로 들어온 게 아니라 궁인으로 있다가 승은을 입었던 것 같다.
보통 중인이 궁녀가 된다고 생각했는데 몰락 양반도 궁녀로 들어왔는지 궁금하다.
하여튼 정사대로 하면 <왕과 나>에서 보여주던 그런 애틋한 로맨스가 아니라 꽤 육감있는 자극적인 스토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서울의 지명도 바로 이런 능에서 유래된 곳이 많다는 걸 알았다.
수시로 들락날락 하는 삼성역 근처의 선릉이 바로 성종과 정현왕후의 묘라고 한다.
서울 시립 미술관이 있는 정릉 역시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묘고 선수촌으로 유명한 태릉은 바로 그 유명한 문정왕후의 묘라고 하니 유래를 알면 역사가 보인다.
그냥 지나치기 쉬웠던 작은 에피소드들이 숨어져 있는 능 이야기, 무척 재밌게 읽었고 실제로 답사를 한 번 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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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10-01-06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옆지기가 역사체험학습을 하는 지라 이 책을 집에서 본적은 있지만 읽지는 못했습니다.
앞으로는 읽을 기회를 호시탐탐 노려보겠습니다. ㅋㅋ

marine 2010-01-08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그런 게 있군요. 좀 자극적인 상상력에 근거한 일화 삽입이라든가 독살설 운운하는 역사의식이 다소 불편하긴 하지만 자료 조사를 무척 많이 한 책이라 얻는 게 많았어요.

박혜연 2011-09-02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특히 영친왕의 친어머니 순원황귀비 엄씨는 대단한여자라고 할수있어요! 다른 궁녀들과 비교할때 얼굴도 못생기고 더군다나 체격도 남자같고 성격도 걸걸함에도 불구하고 고종임금의 승은을 받아 마흔셋이라는 너무 늦은나이에 첫아이를 낳았잖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