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그들 역사의 이방인들 - 섞임과 넘나듦 그 공존의 민족사 너머의 역사책 1
이희근 지음 / 너머북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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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확실히 다문화주의가 대세인 모양이다.
외국인 노동자들과 국제결혼으로 인해 외국인 비율이 전체 인구의 2%를 넘었다고 한다.
더 이상 단일민족국가라는 말을 써서는 안 되는 상황이 왔다.
단일민족국가라는 말은 차별적인 언어가 돼버렸다.
저자는 우리 역사에서 타 민족과의 동화가 결코 낯설지 않은 오래된 전통이었음을 보여준다.
대륙의 끝자락에 붙어 상당히 고립된 생활을 유지해 왔기 때문에 순혈주의가 가능했다고 알고 있었는데 상식을 깨는 사례들이 의외로 많았다.
이를테면 여진인이나 거란인, 몽골인들이 고려 시대 이래로 귀화하면서 백정 계층으로 편입됐다는 예가 그렇다.
그러고 보면 거란이나 여진인은 북쪽 국경을 맞닿으면서 유목 생활을 했던 민족이니 고래로 교류가 활발했고 특히 여진 같은 경우는 조선 건국 때 이성계를 도와 종묘의 배향공신으로까지 책봉될 만큼 큰 공을 세운 이지란으로 대표되는 친위 세력이 있었고, 몽골인 역시 원의 간섭기 때 고려의 다섯 국왕이 몽골인 공주들을 아내로 맞았으니 함께 들어온 몽골인 집단이 상당했을 것이다.
이들은 유랑 생활의 생활방식을 고수하여 농토에 정착하지 못하고 도축업을 하는 백정이나, 가죽을 손질하는 갖바치, 기예를 파는 재인 등으로 분류되어졌다.
그러고 보면 같은 평민 계층에서까지 백안시 됐던 백정의 기원이 타민족, 일종의 오랑캐였다는 게 이해가 된다. 

이들 외에도 명청 교체기 때 가도에 진을 친 모문룡을 따라 수십만의 중국인들이 난민으로 몰려 왔고, 임진왜란 때 일본 군사들도 많이 귀화했다고 한다.
또 신라 시대 아랍인들과의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흥덕왕 무덤 주위에 호종하는 무인상으로 서역인들이 세워질만큼 무슬림들의 정착도 활발했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이들의 인구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또 전통 사회에 얼만큼의 영향력을 가졌는지는 모두 추정치로 일종의 가설에 지나지 않는 면도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우리가 생각했던 것 보다는 훨씬 더 전통 사회가 외부에 대해 열려 있었고 교류와 이주가 활발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비주류의 이야기들도 발굴하면 흥미진진할 것 같고 우리 역사가 보다 풍부해질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서문의 저자 이야기가 제일 인상적이었다.
로마 제국이나 당, 미국 등이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타민족에 대한 관용적인 태도로 꼽고 있다.
패권주의의 옳고 그름은 차치하고, 다문화와 관용 정신은 시대를 아우를 수 있는 가장 큰 힘이라고 믿는다.
요즘 같은 다원화 시대에 시의적절하게 역사의 한 단면을 짚어낸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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