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으로 빚어낸 조선의 마음, 백자 테마 한국문화사 1
방병선 지음 / 돌베개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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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한국사 시리즈는 한가지 주제를 정하여 풍부한 도판과 함께 전문적인 해설을 싣기 때문에 만족도가 높은 책 중 하나다.
가능하면 전권을 다 읽어 보려고 하고 있다.
그 중 하나인 조선 백자 편을 골라든 까닭은, 요즘 한창 도자기에 마음을 뺏겼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리움 미술관에서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를 원없기 감상하고 나서 좀 더 알고 싶다는 마음에 이 책을 빌렸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내용도 풍부하고 문장도 쉽게 쓰여져 읽기 편했고 다양한 백자들을 도판으로 만나볼 수 있어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박물관에서 느낀 바는, 어쩐지 고려청자는 하나같이 최상품으로 품격과 격식이 느껴지는데 반해, 조선백자는 대충 만들어진듯 한 분청사기를 포함하여 격이 좀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청자가 워낙 귀하기 때문에 왕실 진상품만 만들어져서일까?
조선 시대로 들어오면서 자기 만드는 기술이 널리 퍼져 사대부 집안에서도 백자를 이용할 수 있었던 대중성 탓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청자보다 백자가 더 마음에 든다.
언젠가 미술관의 해설사 말이, 일본 사람들이 분청사기를 그렇게 좋아한다면서 자기의 좋고 나쁘고는 품질보다 개개인의 취향에 달렸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나 역시 분청사기의 해학저이면서 추상적인 문양이 어쩐지 현대적으로 세련되게 느껴져 마음에 들고, 청화백자나 철화백자의 그 산수화 같은 시원한 문양들이 좋다.
용준 같은 경우는 왕실 행사 때 종이꽃을 장식하는 화준으로 쓰이거나 혹은 술을 담아놓는 항아리였을텐데, 그렇다면 좀 더 작은 매병류는 무슨 용도로 사용했을지 궁금하다.
우리나라는 생화보다 조화가 주를 이뤘기 때문에 화병으로 쓰였을 것 같지는 않고 위로 높은 모양새가 술을 담기에도 불안정해 보이는데 아쉽게도 이 책에서 역시 의문점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그냥 바라보는 완상용으로도 충분히 훌륭하고 쓰임새가 있어 보인다.
도판들이 너무나 생생하고 선명해 보는 내내 정말 즐거웠다. 

얼마 전에 열린 국립중앙박물관의 백주년 기념전에서 철화백자포도문항아리가 전시되어 본 적이 있다.
바로 옆에는 명문에 쓰여진 홍치이년명 청화백자송죽문항아리가 나란히 전시됐다.
둘 다 대학박물관에서 대여해 온 작품들이고 국보다.
그러고 보니 이 책에서는 국보나 보물 표시가 안 돼 있어서 아쉬웠다.
하여튼 그 두 유물이 무척 마음에 들었고 특히 넓은 도자기의 윗쪽만 철화 안료로 포도넝쿨을 배치한 철화백자포도문항아리가 마음에 꼭 들었는데 책으로 다시 만나니 반가웠다.
여백의 미를 제대로 살린 도자기라고나 할까? 
바로 아래의 작품이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점은, 무조건 우리 도자기가 최고다, 라는 식의 자화자찬으로 흐르지 않고 중국과 일본의 도자기와 비교하여 조선백자의 위상을 정립하고 당시 자기 생산의 흐름을 설명했다는 점이다.
청나라를 본받아야 한다는 북학 운동이 일어나면서 화려하게 장식한 중국 자기에 비해 조선 백자의 기술적 미흡함을 질타한 여러 책의 소개도 신선했다.
임진란 이후 조선의 도공들이 일본으로 붙잡혀 가면서 주로 자기를 수입하는 쪽이었던 일본에서 비로소 자기 생산이 가능해졌고 좋은 태토의 발견으로 17세기 이후에는 수출까지 할 수 있었다는 설명에서 우리 도공들이 무척 자랑스러웠다.
성리학의 전파와 더불어 이런 걸 보면 우리 입장에서는 임진왜란이 문화전쟁인데 과연 일본에서는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하다.
현재 국가의 자존심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이런 도공들의 희생은 가치있게 온당한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 

국력이 쇠약해지면서 결국 국가에서 운영하는 관요도 망하게 되고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후 조선자기의 명맥도 끊겨 일본이나 서양자기를 수입해야 하는 처지가 된 현실이 안타깝다.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자기를 생산했던 우리의 훌륭한 전통이 이렇게 사그러져 갔다는 게 참 서글프다.
민속박물관에 갔을 때 도자기를 굽는 영상을 한 20여 분 동안 차분히 본 적이 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자기를 굽는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을 요하는지 새삼 느꼈으며 저런 게 바로 장인 정신이구나 감탄했었다.
자기 만드는 장인들이 좀 더 사회적으로 높은 대우를 받았다면 또 상업화에 성공했다면 공예 문화가 지금보다 훨씬 발달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200 페이지가 조금 넘는 알맞은 분량에 쉽고 재밌게 또 볼거리가 풍부하게 쓰여진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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