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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년의 나날들, 조선의 일상사 - 무관 노상추의 일기와 조선후기의 삶 ㅣ 너머의 역사책 2
문숙자 지음 / 너머북스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비슷한 책을 두 권 읽고 있다.
이 책에 앞서 르네상스 시대인들의 삶을 돌아봤고 이번에는 조금 뒷 시기이긴 하지만 역시 일기 같은 사적인 기록을 바탕으로 구성해 본 조선 후기 무인의 삶이다.
앞서 읽은 <르네상스 시대의 삶> 을 보면 그뤼켈이라는 여인이 나오고 그녀 역시 죽는 날까지 방대한 일기를 남겼다.
우리나라로 치면 장사를 하는 중인 계층 정도 되는데 남편이 죽은 후 50대 때 재혼을 했고 직접 귀금속 등을 거래하기 위해 온 유럽을 돌아다녔다.
그녀가 남긴 일기에는 개인적인 감회가 굉장히 많은 반면, 이 책의 주인공 노상추의 일기는 사대부라서 그런지 감상은 매우 적다.
그래서 저자는 일기라기 보다는 오히려 한 가문의 기록에 가깝다고 평한다.
노상추는 20대 때 벌써 두 아내를 사별하고 세 번째 결혼을 하지만, 반대로 그의 누이는 시집간지 5년 만에 청상이 되서 80 평생을 수절하고 역시 일찍 죽은 형이나 동생의 아내들도 노씨 집안에서 수십 년을 수절하며 심지어 그의 며느리는 남편이 죽자 따라 죽기까지 하여 가문의 명예를 드높인다.
일반적인 비교는 위험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꽉 닫혀 있는 조선 사회의 경직성이 자연스레 비교되어 숨이 막힐 것 같다.
여자가 혼자 경제 활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남편이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데도 과부들은 평생을 혼자 살았고, 그것이 가장 중요한 도덕률이었다.
그뤼켈처럼 경제 활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남편이 죽고 나면 그 가문에 기대어 외롭게 살아 갔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슬람 국가의 명예살인이나 부브카 등을 비난하지만 조선의 현실 역시 여성을 압박하는 면에서는 별로 다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노상추는 18세기 영정조 시대를 살다 간 무인이다.
벌써 노론이 정권을 장악하고 후기로 갈수록 일당 독재를 넘어서 급기야는 한 집안이 정권을 대물림 하는 세도정치가 득실거릴 때니 과거 합격하기가 얼마나 어려웠으며 관직에 진출하기는 또 얼마나 치열했을까?
노상추는 무인이라 외직을 떠돌아 당파 얘기는 많이 안 나오지만, 자신이 영남 출신이라 관직 진출에서 소외감을 느낀다는 인식은 분명하게 하고 있다.
시골 양반이 과거에 합격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돈이 들고 또 얼마나 긴 세월이 필요한지 정말 눈물나게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러고 보면 아홉 살 때 첫 장원이 된 이래 무려 아홉 번을 장원했다는 율곡 이이 선생은 얼마나 놀라운 천재였을지 조금은 짐작이 간다.
노상추네 집안은 무인이었지만 다들 처음에는 문과 시험을 시작한다.
전국에서 3년 만에 겨우 서른 세 명을 뽑을 정도로 좁은 문인 과거가 그나마 세도정치나 일당독재 등으로 얼룩져 시골 양반들에게는 점점 더 들어가기 힘든 바늘구멍이 됐을 것이다.
노상추는 문과를 포기하고 할아버지처럼 무과를 도전하는데 이것 역시 10년이 넘게 고생을 하다가 겨우 합격이 됐으나 이번에는 또 발령이 안 나 몇 년을 기다린다.
그 뿐만 아니라 동생이나 아들 역시 십 년 과거 공부는 기본이고 심지어 아들은 훈련주부라는 벼슬에 무려 열 아홉 번이나 후보에 올랐다가 떨어지는 이력까지 있다.
아마도 노상추네 집안이 중앙 정계에 특별한 세도가 없었기 때문에 쉽게 인사가 안 났던 것 같다.
그렇지만 할아버지 죽월공 노계정은 무인으로써 꽤 높은 벼슬을 했을 뿐 아니라 나중에 손자 노상철이 관직 생활을 할 때 왕이 친히 기억해 준 덕분에 무려 당상관직에 파격 승진을 하기까지 한다.
이 때 그는 심한 질시를 받았다고 기록한다.
역사책은 주로 승자 위주라 중앙 정계에 진출해 활발하게 관직 활동을 하고 많은 문집을 남긴 이른바 잘 나갔던 사람들 얘기만 듣다가 시골에서 고군분투 했던 평범한 선비들의 이야기를 듣자니 가슴이 아프고 우리네 서민들의 삶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면 상인이나 노비 계층은 아예 글을 남길 수 조차 없었으니 이들의 잊혀진 삶은 누가 기억해 준단 말인가.
조선 후기 시골양반이었던 황윤석의 문집 이재난고를 중심으로 살펴 본 책과 비슷한 포맷이면서도 읽기는 더 쉽다.
일단 무인과 문인의 차이 때문인지 황윤석은 활발한 글쓰기를 통해 방대한 문집을 남겼고 그래서 어려운 한자가 많아 읽기도 힘들었다.
일상사 보다는 학문적 얘기가 많았던 것 같다.
반면 노상추는 문집 대신 개인적인 기록인 일기를 남겼고 얘기도 주로 일상생활이다.
그래서 더 쉽게 다가오고 작가 역시 당시 생활상을 흥미롭게 재구성하여 보여 준다.
황윤석은 당대 그 지방에서는 꽤 유명했으나 역시 중앙 정계에 진출하지 못했다.
노상추는 비록 과거에 급제하여 수 십 년 동안 비록 외직이나마 관료로 일했으나 부유하지 못한 건 마찬가지였고 당시 정국을 흔들었던 크고 작은 정치적 사건들에 대한 얘기가 별로 없었던 걸로 보아 역시 중심에서 소외됐던 걸로 보인다.
두 사람 모두 지방에서 양반으로 인정받기 위해 제사 모시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았고 형식적 체면차리기에 소홀함이 없도록 많은 돈을 썼다.
노비들을 데리고 농사를 지어 소득을 올리고 대가족을 먹여 살렸다.
당시 양반들이 왜 이렇게 결혼을 많이 하는가 했더니 출산시 사망이라는 무서운 현실이 숨겨져 있었다.
지금도 애 낳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의료 환경의 발달로 산모가 사망하는 일은 드물다.
수술적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당시에는 출산이라는 것이 죽음을 무릅쓴 엄청난 사건이었을 것이다.
노상추의 할머니와 어머니, 자신의 아내들, 며느리들까지 모두 난산 끝에 사망한다.
산모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태어난 아이들 역시 건강하지 못해 일찍 죽는 바람에 다들 급히 재혼을 한다.
심지어 노상추는 두 번째 아내가 죽었을 때는 삼년상을 기다리지도 못하고 5개월 후에 바로 삼혼을 한다.
대를 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커서 한시라도 빨리 자식을 낳아야 했던 것이다.
당연히 남자의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여자는 아이를 가질 수 있을 만큼 젊고 건강해야 하고, 초혼이어야 했다.
노상추의 할아버지는 50대의 나이에 10대 처녀와 삼혼을 하기도 한다.
이러니 영조가 무려 51세 차이가 나는 정순왕후와 재혼한 것이 당시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또 외직을 떠돌았기 때문에 아내의 보살핌을 받을 수 없는 처지라 노상추는 수청기들과 관계를 맺기도 하고 정식으로 첩을 들이기도 한다.
없는 살림에 일찍 죽은 형네 자식들과 형수들, 노비들에 첩과 서출들까지 챙겼어야 하니 과연 왠만한 재력이 아니고서는 헉헉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수청기가 아이를 낳으면 첩으로 들어 앉지 못하고 왜 헤어져야 하나 했더니, 이 기생들은 관아 소속이라 관에서 놓아주질 않았다고 한다.
아이만 데리고 가자니 어미 품에서 떼낼 수도 없고 마땅히 데리고 올라가도 키워 줄 사람이 없을 뿐더러 기생의 자식이니 천출이라 대접도 못 받을 것이다.
더군다나 겨우 1년여 있다가 옮기는 이직이 심한 시대라 어쩔 수 없이 변방에서 맺은 인연은 떠나면 그것으로 끝일 뿐이다.
양반의 자식을 낳아도 아버지에게 자신과 아이가 한꺼번에 버림받는 신세이니 춘향이와 월매의 신세가 얼마나 처량했을지 알겠다.
그러고 보면 남원 부사의 아들과 사랑에 빠져 그가 어사가 되어 죽게 생긴 춘향이를 구하러 온다는 춘향전의 내용은 당시 서민들에게는 정말 신데렐라 못지 않은 동화 같은 로맨스였을 것 같다.
문장이 무척 평이하고 입체적으로 구성되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보통 지하철에서는 소설 말고는 집중이 안 되서 잘 안 보는데 이 책은 지하철에서 조금씩 끊어서 읽어도 전혀 무리가 없다.
책도 무척 가벼워 가지고 다니기 편하다.
정말 요즘은 거시적 역사 보다는 이런 일상사들이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 같다.
고문서들을 연구하다 보면 당시의 시대상이 보다 섬세하고 정교하게 묘사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당대인들의 가치관이나 생활 양식, 기본적인 사고 방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우리가 역사적 사건을 보는 눈도 한층 성숙해지리라 믿는다.
오늘부터는 나도 일기를 성실하게 써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