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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전선 이상 없다 ㅣ Mr. Know 세계문학 31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지음, 홍성광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의 글 쓰는 스타일이 부드럽다.
어렵지 않고 쉽게 풀어서 마음에 콕콕 박히게 쓴다.
현재형 문장들이 속도감을 주면서도 다소 눈에 거슬리기도 했으나 내 수준에서 음미할 수 있는 편안한 문장들이다.
초등학교 교사와 세일즈맨 등을 전전한 본격적인 문학 수업을 받은 작가가 아니기 때문일까?
토마스 만의 소설 읽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편한 느낌이 좋다.
<지상에서 영원으로>를 쓴 제임스 존스의 문체를 대할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에둘러 말하지 않고 직선적으로 감정을 표출해 마음에 콕콕 와 닿는다.
영화를 먼저 봐서인지 끔찍한 전쟁 장면을 접할 때마다 더 생생하게 와 닿는 느낌이다.
특히 학생들을 선동해 전쟁터로 몰고 간 공명심 많은 선생에 대한 분노라든가, 빵을 먹어 치우는 쥐떼들과의 전쟁, 전투 중에 죽어가는 전우를 데려가지도 포기하지도 못해 안절부절 하는 모습 등은 영화에서도 정말 생생하게 그려진다.
전쟁은 대체 뭐란 말인가.
주인공이 휴가를 나와 선술집에서 만난 교장은, 자네 같은 일개 병사는 주변 밖에 모른다면서 작전과 지령 등을 떠벌린다.
진짜 전투가 뭔지도 모르는 후방의 안전한 민간인 주제에 파리를 점령해 버렸어야 한다느니 하는 몽상 같은 술자리의 객기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인간의 본능상 전쟁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불가능 하겠지만 적어도 전쟁을 결정하는 정치인들을 제일 먼저 전방에 배치한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덜 싸우게 될 게 틀림없다.
혹은 싸운다 할지라도 어마어마한 인명 피해를 내는 이런 끔찍한 전면전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을 부추기는 입바르고 교활한 정치인들을 먼저 최전방에 배치해야 한다.
히틀러에게 제일 먼저 소총을 주고 부대 최전선에 세워 돌격 앞으로를 외치게 했었어야 하는데!
저자가 직접 1차 대전을 경험해서인지 포탄 속을 뚫고 나가는 병사들의 심정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그들은 이제 겨우 스무 살이다.
젊음의 치기에 몸을 맡겨도 괜찮을 너무 아름다운 나이에, 포탄과 쥐떼와 배고픔과 죽음의 공포 속을 헤매어야 하다니!
전쟁은 아무리 미화를 시켜도 끔찍하고 잔인하며 개인의 꿈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대재앙이다.
이런 엄청난 참상을 겪고도 독일이 다시 2차 대전을 일으켰다는 게 정말 신기할 지경이다.
군대에 가면 화장실 욕이 일상화 될 수 밖에 없다는 문장에 공감한다.
가장 본능적인 것, 가장 원초적인 것을 까발려야 조금의 부끄러움과 수치심도 남기지 않고 정말 살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살고자 하는 본능, 배부르게 먹고 쉬고자 하는 욕구.
이른바 문명이라는 걸 이룬 후부터, 생산력이 높아져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본적인 생존의 욕구를 채운 다음부터 비로소 인간은 사랑이니, 문화니, 자아실현이니 하는 사치스러운 감정에 눈을 뜰 수 있었을 것이다.
가난한 집에서는 먹고 살기 힘들어 부모 자식간에 살뜰한 정을 표현할 여유도 없다는 문장이 아프게 와 닿았다.
군대에서는 포만감과 휴식만 있으면 천국이라는 말, 적군의 포화 앞에 노출된 최전방의 병사가 아니라면 제대로 느끼기 힘들 것 같다.
지하철에서 조금씩 읽고 있는데 너무 재밌고 또 끔찍하고 안타깝다.
군인들이 이 끔찍한 참상을 겪고 나서 사회에 제대로 복귀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이라는 병명이 정말 이해가 된다.
겪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 같다.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고 살아 남은 자의 고통을.
미스터 노 시리즈는 손에 딱 잡히는 핸디형 사이즈에 가벼운 종이, 예쁜 디자인 등 뭐 하나 버릴 게 없는데 왜 벌써 이 책이 절판인지 안타깝다.
레마르크의 다른 소설, 개선문과 사랑할 때와 죽을 때, 도 읽어 봐야겠다.
반납 날짜에 밀려 드디어 다 읽었다.
대출을 하면 밑줄긋기나 메모를 할 수 없어 불편하기도 하지만 대신 언제까지 읽어야 한다는 기한이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강제성이 있어 좋기도 하다.
사실 내 책 보다 대출한 책을 항상 먼저 읽는다.
결말은 너무 허무하고 비극적이다.
1인칭 시점으로 쓰여진 소설이라 당연히 주인공이 살아 남아 과거를 회상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서부전선 이상없다>는 비극적인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주인공 파울 보이머는 종전 직전 서부전선의 최전방에서 전사하고 만다.
사령부 보고서에는 파울 보이머가 사망한 날, 서부전선 이상없다고 기록된다.
전체로 보면 역사가 흘러가는 굵직굵직한 사건들의 연속이지만, 그것을 실제로 겪어 내는 한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사의 이런 엄청난 사건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주는지 모르겠다.
영웅이 시대를 창조하는 게 아니라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과 비슷한 맥락같다.
역사책 속에 나오는 1차대전과, 소설 속에서 병사들이 겪어 내는 1차대전은 왜 이렇게 다른 의미를 가지는지!
문장이 쉽고 평이해서, 또 1인칭 시점으로 한 개인의 감정변화를 진솔하게 풀어내서 편하게 읽었다.
레마르크 작품 중 가장 유명하다는 <개선문>을 읽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