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오래된 도시로 미술여행을 떠나다 - 미술사학자 고종희와 함께 이상의 도서관 26
고종희 지음 / 한길사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기행문은 이제 정말 안 봐야겠다.
제목에서 벌써 기행문임을 암시하지만 그래도 이 분의 전작들을 재밌게 본 나는 꽤 기대를 하고 도서관에 신간을 신청해서 읽었는데 만족도는 그저 그렇다.
훌륭한 기행문을 쓴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실감했을 뿐이다.
그러고 보면 이주헌씨만큼 평범하고 무난하게 쓰기도 어려운 것 같다.
어떤 기행문도 자기 여행 코스 소개하고 거기서 본 미술품이나 건축물 좀 소개하고 약간의 소회를 덧붙이고 사진으로 치장하면 끝이다.
차라리 작가들의 기행문을 읽는 게 나을 것 같다.
이문열 같은 글쟁이가 쓰면 좀 나으려나?
예전에 신라 왕릉을 소개한 어떤 작가의 기행문을 읽었는데 문장 하나하나에 정말 감탄했었다.
고종석씨 기행문도 참 괜찮은데.
역시 에세이는 아무나 쓰는 게 아니라 에세이스트가 쓰는 거다. 

문체나 글의 수준은 솔직히 실망스럽지만, 책 내용은 무척 좋았다.
이탈리아에서 5년 동안이나 수학한 만큼 또 전공인 만큼 이탈리아 구석구석을 세심하게 소개한다.
이탈리아 하면 기껏해야 베네치아, 피렌체, 로마가 전부인 줄 알았는데 정말 곳곳에 유명한 미술관이 많다.
도시 전체가 문화유산에 지정된 곳이 많다고 한다.
밀라노에 가면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그려진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 성당을 볼 수 있다.
식당에 이렇게 엄청난 그림이 있다니, 밀라노란 도시가 달리 보인다.
이 성당은 역시 유명한 건축가 브라만테가 설계했다고 한다.
두오모 대성당 역시 프랑스의 고딕을 압도하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사진으로 봐도 우와, 할 정도니 실제로 올려다 보면 신심이 절로 생길 것 같다.
무려 500여 년에 걸쳐 제작됐다고 한다.
작가의 생각에 딱 동의하는 말이 있었는데 이 분은 나처럼 라파엘로를 세상에서 가장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라고 생각한다.
나도 평소에 라파엘로야 말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화가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반가웠다.
완벽한 비례, 균형, 대칭, 그리고 살아 숨쉬는 그 선명한 색체 감각!
고전주의의 완벽한 현신이라고 생각한다.
이 라파엘로의 <아테나 학당> 밑그림이 밀라노의 암브로시아나 미술관에 있는데 단순한 밑그림이 아니라 그 자체로도 완벽한 소묘라고 한다.
정말 가서 꼭 보고 싶다.
여기에는 다 빈치의 <음악가의 초상> 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카라바조의 <과일 바구니> 라는 최초의 정물화도 있다.
밀라노가 자랑하는 또 하나의 미술관, 브레라 미술관은 미술책에 흔히 나오는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대표작 <신성한 대화> 가 있고, 물에 빠져 죽은 사람 같은 만테냐의 <죽은 그리스도> 가 있다.
라파엘로의 <성모 마리아의 결혼식> 도 만날 수 있다.
다들 미술책에서 여러 번 등장했던 위대한 그림들이다.
저자의 말대로 이탈리아에서는 단지 오래 됐다는 것만으로는 언급이 되지 않는 것 같다.
명작 중의 명작, 그야말로 명품들만 언급하기에도 모자란 회화와 조각, 건축의 보고가 아닐까 싶다.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 에 나오는 만토바의 공작궁에는 만테냐의 유명한 그림 <루도비코 곤차가의 가족과 신하들> 이 있다.
<목이 긴 성모 마리아> 를 그린 파르미자니노는 파르마의 대성당에 가면 만날 수 있다.
파도바에는 조토의 벽화가 있는 아레나 예배당을 볼 수 있고,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수도였던 라벤나의 성 비탈레 성당에서는 빵과 포도주를 봉헌하는 유스티니아누스 1세 부부의 모자이크를 볼 수 있다.
치마부에와 조토의 벽화로 가득찬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성당도 있다.
이름만 주어 섬긴 도시들이 모두 엄청난 미술품들을 소장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저자의 분석대로 지방 분권제가 오래 지속되어 통일까지 시간이 한찬 걸리긴 했으나 대신 각 지방의 독특한 문화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소개된 그림들이 모두 미술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야말로 화가들의 대표작들이라 하나하나 눈을 뗄 수 없었다.
이 책 한 권을 들고 이탈리아 순례를 떠나도 좋을 것 같다.
정말 서양 미술의 역사는 알면 알수록 더 매력적이고 감탄사만 연발하게 된다.
이런 예술품들을 일상으로 즐길 수 있는 이탈리아 사람들은 얼마나 축복받았는지!
사실 유럽 여행 때 이탈리아에 들렸을 때 프랑스나 독일과는 달리 너무 덥고 왠지 지저분한 느낌이 들어 (특히 소매치기들 때문에 너무 예민해져서) 별 감흥이 없었는데 다시 간다면 이 놀라운 미술품들을 마음껏 보고 싶다. 

파란 표지가 무척 예쁘다.
저자가 언급한 그림과 조각들은 모두 사진으로 싣는 정성이 돋보이고 내용도 어렵지 않게 한번에 죽 읽을 수 있다.
다만 역시 수박 겉핥기 식의 쓱 둘러 보는 정도라 깊은 내용은 없다. 
가벼운 이탈리아 미술 기행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