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유럽 현대미술관 기행 - 현대미술을 보는 눈 1 현대미술을 보는 눈 1
이은화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의 이력은 화려한데 내용은 평범하다.
언제나 느끼는 바지만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저자의 전문성 여부와는 또다른 문제 같다.
이를테면 박종호씨의 경우, 오페라에 대해 전문가인가 아닌가와는 상관없이 기본적으로 글을 잘 쓰는 편이다.
반면 아무리 그 분야의 전문가라 할지라도 글솜씨가 떨어지는 필자들이 있다.
개인의 기본 역량의 문제라고 할까?
책이 쉽고 다양한 미술관을 소개해 준다는 점에서 재밌게 읽고 있긴 하지만 이주헌씨 책에서 보여 주는 문장 읽는 재미는 별로 없는 편이다.
저자는 일부러 쉽게 썼다고 하는데 쉬운 책과 재밌는 책은 다른 개념이다.
어려운 말을 쉽게 풀어 쓰는 게 독자의 눈높이를 맞추는 게 아니라, 어려운 내용을 재밌게 써야 독자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다.
현대 미술 전문가의 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평범하고 깊이가 얕다.
전체적인 수준이나 문장력이 아쉽긴 하지만 말 그대로 워낙 쉽게 가볍게 쓰여져 지하철 안에서 부담없이 읽고 있다. 

솔직히 아직은 현대 미술에 대해 정확히는 모르겠다.
즐기는 수준의 한계라고 할까?
다만 미술 전시회에 가서 직접 작품을 보고 제목을 들었을 때 작가가 환기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해서 한 번쯤은 생각해 보고, 공감할 때가 있긴 하다.
마음의 동요을 일으키는 작품들이 있다.
그래서 가끔은 현대 미술이, 발칙한 상상력을 제도권 안에서 보호해 주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여기 소개된 트레이시 에민 같은 작가는, 낸시 랭과 차이가 뭔지 모르겠고 솔직히 말하면 상상력을 제외한, 미학적 가치가 있기는 한건지 모르겠다.
자본주의와의 영합, 대중매체의 기삿거리, 자극적인 소재, 그런 부정적인 생각만 든다.
루벤스나 뒤러 등도 당시 권력자에게 봉사하면서 그들이 원하는 그림을 그려 주고 오늘날 위대한 화가로 명성이 남았으니 아직 평가가 끝나지 않은 현대 미술을 어떻게 평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하여튼 지금의 내 심정은 모든 작품들을 예술로 받아들이기는 상당히 어렵다.
데미안 허스트의 경우, 해부학 실습책에서 보는 인체 모형이 <찬가>라는 작품으로 버젓이 전시됐으니 과연 공구사와 저작권 싸움이 벌어질만 하다.
상어를 포르말린에 박제시켜 전시한 작품 등은 기발하다.
그러고 보면 현대미술은 미학적 쾌감 보다는 발랄한 상상력을 주제로 한다는 생각도 든다.
다만 이런 다양한 시도들을 제도권 안에서 받아 들여 주고, 상상과 표현의 자유를 확보해 주는 미술계의 넓은 포용력이 부럽긴 하다.
정말 한계가 없는 것 같다. 

이렇게 많은 현대 미술관이 있었다니, 놀라울 뿐이다.
아직 루브르나 프라도 같은 대표적인 미술관도 제대로 못 돌아 봤는데 어느 세월에 이런 곳을 다 방문해 볼지 모르겠다.
문화가 주는 이 엄청난 즐거움을 생각하면 정말 한 500년은 살아야 할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정말 진로를 선택할 수 있는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문화와 관련된 일을 해 보고 싶다.
요즘 제일 관심이 가는 직업이 학예사이고, 저자처럼 미술 평론을 전공해도 좋을 것 같다.
박종호씨처럼 진로를 이제 와서 바꿀 수도 없고...
하여튼 나는 영원한 딜레탕트가 운명인 것 같다.
현대 미술에 대해 궁금하다면 조각가가 쓴 유럽 현대 미술 전시회 관람기인 <그림 없는 미술관> 도 추천한다.
실제 작품 활동을 하는 사람이 본 날카로운 감식안과 미의식이 돋보이는 책으로, 사진이 많아 볼거리가 화려한 이 책과는 다르게 정말 글자 뿐이지만 현대 미술이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잘 설명한다.
이주헌씨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이 분이 책을 너무 많이 내는게 아닌가 싶었는데 이만큼 글을 잘 쓰는 분도 드물다는 걸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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