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 중국문화 16
천팅여우 지음, 최지선 옮김 / 대가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워낙 글씨를 못쓰기  때문에 워드 프로세서가 개발된 게 너무 고마운 사람으로써 서예는 단순한 붓글씨가 아니라 일종의 예술로 느껴진다.
예로부터 서예는 글을 전달하기 위한 문자 이상의 의미를 넘어서 마음을 가다듬고 글씨 자체를 즐기는 예술의 하나로 인지되어 왔고 심지어 이 책에서는 모든 과학 분야의 기본 언어와도 같은 수학으로 비유한다.
서예는 모든 예술 분야의 수학과도 같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어떻게 좋은지는 모르겠다.
특히 행서나 초서 같은 경우는 말 그대로 너무 흘려 쓰기 때문에 무슨 글자인지도 모르겠고 어떤 게 잘 된 건지, 뭘 감상하라는 건지 포인트도 못 잡겠다.
다만 해서 같은 경우 부드럽게 쓰여진 조맹부체는 참 예쁘다, 유하다는 느낌은 든다.
<조선 왕실의 묵향> 이라는 우리나라 서예책에서 문종의 글씨가 정말 유려하고 둥글둥글한 느낌이 무척 아름답다는 생각은 했었다.
반대로 수양대군은 같은 조맹부체라도 힘이 있고 반듯반듯 해서 정말 그 사람의 성격과 기상이 그대로 드러나는 느낌이었다.
이 정도 수준을 넘어가면 사실 나에게는 언어 유희로 밖에는 안 들린다.
저자는 서예의 미학적 의의를 추상성에 뒀는데 충분히 이해되는 바다.
다만 서양의 추상주의 미술 같은 경우는, 형태가 주는 의미 보다는 색감에서 오는 감흥이 크기 때문에 먹의 통일된 검정색 대신 쓰여진 형태에서 미의식을 찾는 서예와는 감상 포인트가 좀 다르지 않나 싶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대체 뭘 즐기라는 건지, 심지어 글씨체가 어떻게 다른지도 잘 몰랐는데 찬찬히 짚어주니까 약간은 이해가 된다.
아마 내가 직접 붓글씨를 써 봐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초등학교 시절 미술시간에 몇 번 써 본 게 전부인 나로써는, 아무리 말로 설명해도 그 진짜 미학을 느끼기에는 역부족이다.
그 때도 정말 어렵고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작게 쓰는 펜글씨도 잘 못 쓰는데 큰 붓을 들고 정자체로 화선지에 쓰는 붓글씨는 생각만 해도 어렵다.
워낙 글씨를 못 쓰기 때문에 서예는 감히 엄두가 안 난다.
다만 동양만의 독특한 예술 분야인 서예를 지금보다 더 잘 감상할 수 있는 눈이 길러지길 바랄 뿐이다. 

생각해 보면 중국의 한자는 참으로 놀랍다.
저자의 설명대로 비슷한 시기에 생긴 이집트 문자나 수메르 문자, 마야 문자 등이 전부 과거의 기억 속으로 사라졌지만 여전히 중국의 한자는 실생활에서 쓰이고 심지어 예술로까지 승화되었다.
갑골문에서 시작해 오늘날 중국 대륙을 넘어 동아시아에까지 전파된 한자의 위대함에 새삼 놀란다.
뒷부분에 한국과 일본의 서예 전통이 첨부되어 무척 반가웠다.
말로만 듣던 신라의 김생은 중국에까지 이름이 퍼질 정도로 유명했던 모양이다.
書聖 으로 일컫어지는 왕희지의 어릴 적 스승이 위부인이라는 여성이었다는 점이 신기하다.
왕희지의 아들 왕헌지 역시 서예의 대가였는데 심지어 아버지 보다 자기 글씨가 낫다고 자신할 정도로 자부심이 대단했다고 한다.
보통 유교적 효 개념 때문에 아무리 잘해도 부모보다 자신을 낮추기 마련인데 자신의 글씨에 대한 자신감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만 하다.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황제인 측천무후 역시 글씨를 무척 잘 썼다고 한다.
당 태종 이세민도 명필이었다는 걸 보면 역시 영웅호걸들은 재주도 남다르다. 
각주에 보면 측천무후는 고종의 아내로써 지위이기 때문에 15년 간이나 황제위에 오른 이력을 반영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무측천, 측천여황이라 칭한다는 걸 새롭게 알았다.
그러고 보니 중간에 국명을 바꾸고 명실상부한 황제가 됐으니 정당한 명칭으로 불러 주는 게 맞을 것 같다.
얼굴도 예쁘고 글씨도 잘 쓰고 배포도 컸으니 과연 고종이 아버지의 후궁이었으나 황후로 맞은 이유를 알겠다. 

약간 현학적인 느낌이 든 것도 사실이지만 전체적으로 서예라는 예술 분야에 대해 어느 정도는 감이 잡히는 기분이다.
책을 많이 읽기 보다는 아무래도 직접 붓글씨를 써 보고 작품을 많이 감상해야 눈이 좀 떠질 것 같다.
수천 년 전의 문자가 현대 사회에서도 그 힘을 잃지 않고 오히려 예술로 승화되어 살아 숨쉬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놀랍고, 그 문화를 지켜온 중국 문명의 유구함에 대해 다시 한 번 감탄하는 바다.
오늘날 미국 위주로 세계화가 이루어져 학문이든 예술이든 일단 미국으로 건너가 그 문화를 흡수해 오면 가장 앞서가는 사람으로 대접받듯, 그 옛날 다른 세계와의 교류가 일체 없던 시절 중국 문화에 대한 선망과 동경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간다.
가끔 조선 시대 선비들의 사대주의 사상을 접하면 괜시리 주체적이지 못한 것 같아 화도 나고 우리 역사에서도 유난히 중국을 대등하게 보려고 많은 시도를 하지만, 당시 관점에서 중국이 얼마나 거대하고 압도적이었을지를 생각해 본다면, 오히려 그 엄청난 문명 속에 함몰되지 않고 우리만의 독자성을 오늘날까지 지켜왔다는 사실이 평가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동북공정 때문에 중국과 껄끄러운 관계지만 대국으로서의 자신감을 회복해 패권주의를 버리고 보다 큰 동양 문화적 틀에서 타 문화를 감싸안는 넉넉함을 보이길 기대한다.
중국 문화를 소개하는 이 시리즈는 가능하면 다 읽어 볼 생각이다.
책 분량도 많지 않고 사진이 많아 보기 편하고 무엇보다 중국 학자들이 직접 쓴 책이라 전문성 면에서 믿음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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