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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Goya - 고야가 말하는 고야의 삶과 예술 ㅣ I, 시리즈 2
다크마어 페겔름 지음, 김영선 옮김 / 예경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일단 나에게는 어려웠다.
가끔 미술에 관한 번역책을 읽을 때 저자가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이해가 잘 안 될 때가 있는데 이 책이 딱 그렇다.
적어도 미술에 관해서라면 국내 저자가 쓴 책이 더 와 닿는다.
이를테면 김광우씨 책처럼 말이다.
글 쓰는 스타일의 차이인지 아니면 내가 좀 전문적인 서적을 읽어서인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며칠 전에 봤던 <생각의 나무>에서 나온 고흐 화집이 너무 좋아 역시 큰 도판으로 봐야겠구나, 싶어 평소 관심있던 고야의 화집을 골랐는데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도판은 훌륭하다.
역시 큼직큼직하게 확대되어 그림 감상하기는 좋았다.
하지만 본문 내용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친절하지 않은 느낌이랄까?
아무래도 좀 더 쉽게 써진 고야 관련 서적을 읽어봐야겠다.
19세기 에스파냐의 분위기가 그래서인가?
미신적인 것, 종교재판, 자학적인 고행, 마녀사냥, 전제정치...
뭔가 음울하고 광기어린, 낙후된 무서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투우 경기도 축제 같은 전통으로만 생각했는데 책을 보면서 느낀 것이, 왠지 이것도 살육을 통한 피의 분출이라는 느낌이 든다.
하나의 편견일까? 아니면 정말 당시 사회가 그랬을까?
<고야의 유령>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거기서도 이런 무시무시한 종교적 광기와 전근대적 관습이 성행하는 에스파냐의 사회상이 잘 드러난다.
정말 고야의 암울한 그림과 딱 어울린다.
특히 에칭 판화들이 무시무시하다.
뭔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무서운 느낌이 든다.
후반부로 갈수록 청력 상실이라는 장애가 더해져 더욱 내면으로 침잠하고 더 무서워진 것 같다.
이를테면 이런 것, <날아다니는 마녀들> 같은 작품, 악령들이 귀신들린 사람을 들고 올라가는 장면인데 설명에는 미신에 대한 계몽주의 지식인들의 거부감과 매혹을 동시에 보여 준다고 되어 있지만, 내가 보기엔 음침하고 무시무시해서 정말 이런 그림이 당시 유행이었다면 사회 분위기에 문제가 있지 않나 싶다.
동시대에 그려진 다른 작품들도 같이 공부해 보고 싶다.
엘 그레코의 그 기괴한 그림들이 에스파냐에서 그려진 이유를 알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옷을 입은 마야> <옷을 벗은 마야> <알바 공작부인> 같은 색감 좋은 초상화들이 좋다.
보기에 편안하다.
고야 역시 초상화가로써 이름을 날렸고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한다.
특히 <오수나 공작의 가족> <마누엘 오소리오> 등의 초상화가 너무 마음에 든다.
18세기 말 정도 되니까 우리나라로 치면 김홍도 등이 활동할 시기인데 먹으로 그린 한국의 초상화 전통과는 확실히 보는 관점이 매우 다름을 느낀다.
특히 한국의 전통 초상화는 손을 감춘 반면 서양의 초상화는 손의 묘사가 탁월하다.
입체적이고 정교한 느낌, 손에 만져질 듯한 자연스러운 색상들.
인물의 얼굴 묘사에 집중한 한국의 초상화와 매우 다른 느낌이다.
또 김홍도나 정선 등이 흥겨운 풍속이나 수려한 자연 경관을 그린 것에 비해 고야의 작품들은 너무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게 많아 비교가 된다.
피학적인 당시 기독교적 관습 때문일까?
어찌 보면 십자가상도 고통받는 죽기 직전의 모습이니 섬뜩한 그림이라 할 수 있겠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같은 고전주의 작품이 감상하기에 참 편안하다.
어두운 배경 아래 고통받은 예수의 십자가상은 주제 자체로 보면 솔직히 매우 피학적이지만, 그 경건하고 정교한 인체 묘사가 탁월하다.
그런데 정작 고야는 이런 고전주의를 거부했다고 한다.
보다 앞서 가는 스타일이었던 것일까?
창조적으로 파격적이었던 화가.
어떤 평론가의 지적처럼 애스파냐의 옛 풍속을 기록하기 위해 태어난 화가.
<양산> 같은 그림에서 보여 준 화사한 색감이 정말 좋은데 어쩐지 고야 자신은 이런 그림은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렸을 것 같고 그 자신은 매우 음울하고 격정적인 그림을 선호했을 것 같다.
유럽 여행 때 에스파냐는 못 가봤던 게 무척 아쉽다.
기회가 되면 프라도 미술관에 꼭 가고 싶다.
고야에 관한 다른 책을 읽어봐야겠다.
누가 한국의 수묵화와 서양화 혹은 비슷한 시대의 동서양 화가들을 비교한 책을 써 줬으면 좋겠다.
무척 흥미로울 것 같다.
서로 교류가 없었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19세기만 해도 일본의 우키요에가 인상파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하는데 조선의 산수화나 풍속화 등도 서양에 소개됐다면 혹은 서양화가 조선 화단에 전해졌다면 서로에게 의미있는 충격이 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