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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림 ㅣ 중국문화 1
러우칭씨 지음, 한민영 외 옮김 / 대가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세상에, 이렇게 좋은 책이 벌써 품절이라니...
수많은 책이 쏟아져 나오지만 없어지는 것도 참 빠른 것 같다.
홍보를 안 하면 좋은 책들은 독자의 눈길 한 번 못 주고 조용히 사라져 버린다.
그나마 이런 인터넷 서점의 리뷰란이라도 있어 잊혀진 좋은 책들을 소개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이 책은 경기도 관내 도서관의 상호대차 서비스를 이용해 빌린 첫 책이다.
전국적인 유통망이 있는 책바다의 경우, 5천원의 택배비를 내야 하는데 경기도 내의 도서관끼리 빌려 주는 경기도 사이버 도서관은 아직은 무료다.
이런 책처럼 서점에서 품절된 경우 소장 도서관을 검색해 가까운 도서관으로 배달해 주는 상호대차 서비스는 정말 훌륭하다.
앞으로 종종 이용할 생각이다.
특히 낙후된 지역의 작은 도서관을 이용하는 주민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중국 문화에 관심이 생긴 건 순전히 이번 여름 휴가 때 갔던 북경 여행 때문이다.
몇 년 전 휴가 때 일본 여행을 다녀온 후 일본에 대해 급관심이 생긴 것처럼 이번에도 북경 여행 후 중국이 너무너무 궁금해졌다.
어떤 분들은 중국이 지저분하고 볼 게 없는 싸구려 여행지라고도 하는데 문화에 관심이 많은 나로써는 유럽이나 일본 등에 비해 값은 매우 저렴하면서도 볼거리는 풍부한 중국이 여행지로 최적처럼 느껴진다.
딱 하나 안 좋았던 건 화장실이 아직도 수세식이라는 거.
이것만 빼면 이번 북경 여행은 정말 환상적이었고 다음에는 천하절경이라과 하는 항주와 소주 등지를 가보고 싶고 또 기회가 된다면 티벳으로 가는 중앙아시아도 가 보고 싶다.
하여튼 중국 여행 후 이화원이나 자금성 등에 대해 관심이 막 생겨 중국 문화 관련 서적들을 뒤적거리다가 어떤 알라디너의 서재에서 이 책을 소개받고 막연히 중국식 정원이나 건축물 아닐까 생각하고 읽게 됐다.
園林 은 뒷뜰 개념인 정원과는 좀 다른데 일단 규모가 엄청나게 크고 정원이 잔디를 깍고 조경을 하는 등 인공적이라면 원림은 자연 환경을 이용해 건축물 등을 배치하여 그 풍경을 감상할 수 있게 만든다.
풍경 좋은 곳에 정자를 짓고 회랑을 만들어 산책하면서 주변을 감상할 수 있게 하고 모양을 낸 창을 통해 바깥을 바라보게 하는 식으로 말이다.
樂山樂水 라는 말이 왠 뜬구름 같은 소리인가 했더니 중국 사람들이 자연 감상을 자기 수양의 덕목으로까지 생각할 만큼 중요시 했다는 의미라는 걸 알았다.
그러므로 모든 원림에는 당연히 산과 호수가 있어야 한다.
가산을 만들 때는 흙으로 쌓거나 (토산) 돌로 쌓는다 (석산)
호수는 보통 1池3山 이라 하여 하나의 호수에 세 개의 인공섬을 만들어 전설적인 신선들의 산인 봉래산, 영주산, 방장산을 표현한다.
중국의 원림 전통은 고대 은나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래 되었다.
국토가 어마어마 했던 만큼 자연의 절경도 엄청났을 것이고 자연히 풍경 좋은 곳에 담을 둘러 주거지와 정원을 만들었을 것이다.
언젠가 소쇄원에 가서 정원이라더니 왠 땅이 이렇게 넓나 싶어 깜짝 놀랜 적이 있다.
담양의 소쇄원도 일종의 원림인 것 같다.
이 원림에서 시와 산수화와 글씨가 나왔다.
그러므로 원림은 중국 문화의 자양분이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개인의 원림도 경제력이 풍부하고 경치가 좋았던 항주나 소주의 경우 규모가 엄청나고 훌륭한데 역시 압권은 황제의 원림이다.
사실 이화원의 경우는, 서태후의 별장으로 알고 갔지만 워낙 규모가 커서 또다른 궁전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바로 이 이화원이 건륭제의 원림이었던 것이다.
곤명호 앞에 서서 멀리 보이는 만수산을 바라 보는 것도 장관이지만, 온갖 고사와 이야기들로 꾸며진 긴 화랑을 산책하는 게 너무 좋았다.
서태후가 비를 맞지 않고 전각을 이동하기 위해 지었다고 들었는데 알고 보니 이 회랑은 원림의 건축 요소 중 하나다.
대부분 직랑 보다는 곡랑으로 지었다고 한다.
정말 중국인들은 자연을 운치있게 감상할 수 있는 온갖 방법들을 고안해 낸 것 같다.
방에서 바깥 풍경을 볼 때도 창을 훤히 열고 보는 게 아니라 창에 격자 무늬를 수놓은 누창이나 예쁜 모양으로 구멍을 낸 공창 등을 통해 색다르게 즐겼다.
동양 정신은 자연을 개발하는 게 아니라 관조하고 즐기는 것이라는 말의 뜻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사진으로 유명한 승덕의 피서산장은 무려 5백만평이 넘는 대지로, 중국 최고의 원림이다.
강희제 때부터 짓기 시작해 건륭제가 완성하기까지 무려 87년이 걸렸다.
이 곳이 바로 연암 박지원이 황제를 만나기 위해 갔던 열하다.
만리장성 너머에서 목초지를 키우고 군사 훈련을 하기 위해 행궁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강희제는 4남 옹정제에게 원림을 선물했는데 이게 바로 원명원이다.
황제위에 오른 옹정제는 장춘원과 기춘원을 합하여 원명원의 규모를 넓혔다.
이 엄청난 규모의 원명원은 불행히도 의화단 운동 후 서양 군대가 북경을 장악하면서 군인들에 의해 무참히 파괴되고 말았다.
결국 조상의 문화재가 어떤 대접을 받느냐는 오늘날 후손들의 처지에 달린 것 같다.
해군 증강을 위해 영국으로부터 수백만 냥을 빌려 그 돈으로 자신의 회갑연을 기념하기 위해 이화원 증축에 써 버린 서태후 같은 어처구니 없는 여자가 최고의 권력을 틀어 쥐고 있을 때니 어쩌겠는가.
청나라는 중원을 정복한 후 역대 왕조와는 다르게 새로 궁전을 짓지 않고 기존의 자금성과 원림 등을 이어서 사용했다.
처음으로 지은 원림인 창춘원은 명의 청화원 터였다고 한다.
이 창춘원은 산이 높고 반대쪽의 원명원은 호수가 많은 평지라 산과 호수를 동시에 갖고 싶었던 건륭제는 두 원림 사이에 옹산과 서호가 있는 장소를 골라 청의원을 짓는다.
이게 바로 중국 관광 코스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이화원이다.
중국 영토를 최대로 넓혔던 건륭제는 무려 89세를 사는데 강남을 너무나 사랑해 무려 여섯 번이나 순시를 갔고 특히 항주의 서호를 북경의 원림에 옮기려고 애썼다.
어마어마한 규모와 화려한 중국의 원림을 보면서 문득 드는 생각이, 인구는 많고 생산성은 낮은데 전란은 끊이지 않아 끔찍한 기아와 병고의 연속이었다는 역사책의 설명은 한 쪽 면만을 본 게 아닌가 싶다.
중국 역사책을 읽으면 학정에 시달리고 절대 권력자 황제의 말 한 마디에 수천 명이 죽는 끔찍한 전제주의적 분위기가 풍겨 불행한 느낌이 드는데 이렇게 아름답고 엄청난 문화를 향유했던 중국인들의 생활 수준은 내 생각보다 훨씬 높았을 것 같다.
문제는 일부 계층에게 국한됐다는 거지만 고대 세계로 갈수록 자연을 통제하지 못하고 기계 대신 사람이 식량을 생산해 내야 했으니 어느 나라나 농민의 삶은 다 비슷했을 거다.
이렇게 화려한 정원을 음풍농월 하면서 즐겼을 귀족들과, 인육을 먹어야 할 정도로 끔찍한 기아에 허덕였을 백성이라니, 참 비극적인 대조가 아닐 수 없다.
칼라 사진이 많아 보는 즐거움이 있고 중국 학자가 쓴 글이라 전문성도 있다.
무엇보다 책이 너무 예쁘다.
중국의 정원 문화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된 계기였다.
아쉬운 점은 책에 나온 장소들을 본문 내용에 맞게 다 소개해 줬더라면 훨씬 더 많이 즐길 수 있었을텐데 가격 문제 때문에 소략하지 않았나 싶다.
처음 들어 보는 장소를 아무리 멋진 미사여구로 설명을 해도 직접 눈으로 보는 것보다 못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