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찰 현판 1 한국의 사찰 현판 1
신대현 지음 / 혜안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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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 불교 관련 서적을 찾다가 우연히 제목을 보고 특별히 보관함에 넣지는 않았는데 오늘 도서관에서 역시나 우연히 이 책을 발견했다.
읽으려고 제목을 적어 놓은 책이 아니다 보니 이번에 지나치면 평생 못 보고 말 것 같아 이 책을 먼저 꺼내 들었다.
대출 가능 권수는 딱 한 권뿐이라 다른 책을 빌릴 예정이어서 이 책은 자료실 문 닫기 전까지만 읽다 보니 1/3 정도는 못 보고 반납했다.
집에서 편하게 인터넷 검색하면서 한자도 찾아보고 차분이 봤더라면 훨씬 더 유용했을텐데 아쉽다.
현판의 한문을 전부 번역하지 않고 적당히 취사선택 해서 알려 주는 방법이 지식이 짧은 나에게는 무척 좋았다.
어려운 한자가 많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쉽고 재밌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기왕이면 칼라로 절과 현판 사진을 싣고, 절이 위치한 지도도 실었으면 입체적인 책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1권은 2002년도에 나왔고 2권은 2005년도에 나왔던데 혹시 2권은 칼라가 아닐까 기대해 본다.
알라딘에서 확인하려고 했더니, 안 유명해서인지 미리보기가 안 되고 리뷰도 하나도 없어 아쉽다.
한국의 전통 미학은 불교를 모르고서는 제대로 알 수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불교문화가 왜 이렇게 대중에게서 멀어졌는지 안타깝다.
심지어 불교박물관의 해설사에게서는 관람객들이 종교적인 이유로 불교문화를 배척한다는 말도 들었다.
서양문화를 알려면 기독교를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기독교인들이 왜 우리 전통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불교문화는 배척하는지 모르겠다.
문화와 종교는 엄연히 다른 문제가 아닐까?
조선시대 성리학 교조주의 때문에 천 년의 세월을 이어온 불교 문화가 쇠락하고 고급화를 이루지 못한 점도 안타까운데 이제는 미국의 힘을 업고 한국사회의 주류가 된 기독교도들 때문에 그 중요성이 여전히 무시되고 있는 것 같아 정말 속상하다.
박물관에서 불교 관련 문화재는 이단 꺼라고 안 본다는 어떤 관람객이 생각난다. 
한숨 나온다. 

해남에 있을 때 아빠랑 같이 드라이브 갔던 미황사가 황소의 아름다운 울음소리를 뜻한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분명히 안내판에 써 있었을텐데 단순히 절은 가볍게 산책하러 가는 곳이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에 주의깊게 보질 않았었다.
소가 불경을 지고 가다가 쓰러진 곳에 통교사와 미황사가 세워졌다고 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전설인지.
제일 재밌었던 건 영주 부석사의 전설이다.
이 곳은 화엄종을 개창한 의상대사가 세운 곳으로, 당나라 유학갈 때 묵은 집의 딸 선묘가 의상을 유혹했으나 분연히 뿌리치고 떠난다.
돌아오는 길에 그 곳에 들러 가족을 감화시키고 배를 타고 돌아오는데 그녀가 선물을 주려 하지만 이미 배는 떠나 버린다.
여인의 애틋한 마음이 전해져 선물이 바다를 건너 대사에게 무사히 도착하고 선묘는 대사를 지키기 위해 물에 뛰어들어 용왕이 된다.
대사가 법회를 베풀 때 온갖 잡귀들을 물리치게 한 용왕이 바위로 변한 곳에 세워진 절이 바로 부석사다.
뜰 浮 돌 石 을 쓴다.
대사를 사랑한 여인이 용이 되어 대사를 지키고 다시 바위로 변하여 그 곳이 절이 되다니, 정말 환상적인 고대의 로맨스가 아닌가!
또 재밌는 것은 비록 불교가 조선시대에 탄압을 받긴 했지만 여전히 사적으로는 유학자들도 불교를 숭앙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시주도 많이 했으며 현판의 글도 많이 지어줬다는 것이다.
일종의 조상숭배교인 유교만으로는 삶과 죽음를 해결하기가 어려웠던 모양이다.
왕실에서도 원찰을 세우고 안녕과 평안을 빌었다.
선조의 아버지인 덕흥군의 원찰인 흥국사나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의 원찰인 보광사 등은 중수 때 왕실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고려 시대처럼 권력이나 재물을 모으기는 어려운 실정있었으므로 절을 중건하려고 할 때 스님들이 마을에 내려가 시주를 받느라 애쓰는 장면들이 나와 마음이 짠했다.
종교가 권력을 갖고 사람들을 핍박하는 것도 혐오스럽지만 (이를테면 김정한의 소설 사하촌에서처럼) 세상에서 배척되어 힘들게 신앙을 지켜가는 모습도 안타깝다.
예전에는 가끔 스님들이 목탁 두드리면서 시주하라고 할 때 항상 외면했는데 한 번쯤 뒤돌아 봐야겠다. 

언젠가 읽었던 조용헌의 사찰 기행보다 훨씬 성실하고 글솜씨도 뛰어나고 무엇보다 그 절이 간직한 역사와 향기를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해 준다는 점에서 정말 마음에 든다.
한자를 좀 더 알았더라면 더 재밌게 읽었을텐데 그게 아쉽다.
2권은 칼라로 나왔으면 좋겠다.
글을 보면 그 사람의 품격이 나온다는 말이 생각나는 책이다.
저자가 점잖고 교양있는 분이며 무엇보다 우리 절을 문화재로써 (그리고 신앙으로써) 얼마나 사랑하는지 많이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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