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안식처, 이집트로 가는 길
정규영 지음 / 르네상스 / 2004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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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이집트 역사 다이제스트 100>을 빌릴 계획이었는데 바로 옆에 꽂아진 이 책이 눈에 띄어 먼저 읽기로 했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은 제목을 기억하기 힘들어 나중에 읽어야지 하면 결국 못 읽고 말 때가 많아 가능하면 우선 대출을 한다.
이 때 위험성은 책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기 때문에 과연 내가 원하는 내용인지 장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원래 읽으려고 했던 책 위주로 빌리려고 하지만 유난히 눈에 꽂히는 책들이 있어 그냥 지나치기 힘들 때가 많다.
이 책은 다행스럽게도 비교적 내용도 괜찮고 재미도 있고 책 수준도 평이해서 한 번에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은 다음에 이집트 역사를 읽으면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처음에는 이집트 역사에 관한 책인 줄 알았다.
저자가 카이로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만큼 일단 저자에 대한 신뢰도가 생겼다.
이 시리즈의 제목인 <세계 문명사 산책> 에 걸맞게 이집트의 문명을 소개하는 일종의 기행문 혹은 안내서 같다.
사진이 많이 실려 있어 보는 재미도 있고 정말 기행문이라면 이 정도 수준은 되야 책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서점에 난무하는 온갖 잡다한, 좀 심하게 말하자면 출판 공해 내지는 쓰레기 같은 책들이 버젓이 기행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독자를 유혹한다는 점에서 더욱 이 책의 성실함은 빛이 난다.
저자의 개인적인 소회는 가급적 삼가하고 이집트의 유적지와 관련 역사를 쉬운 문체로 편안하게 서술한 점이 책의 장점이다.
이집트를 가 보고 싶은 분이라면 이 책을 들고 비행기를 타도 좋을 것 같다. 

사실 이집트는 워낙 역사가 오래 되고 먼 옛날의 문명이라 구체적으로 감이 안 잡혔다.
막연히 피라미드의 나라라고만 생각했지 왕조의 역사에 대해 구체적으로 아는 것은 없었다.
모든 왕조를 숫자로 부른 점도 머릿속에 뚜렷이 각인되지 못하는데 일조를 했다.
하지만 관련 책들을 몇 권 보다 보니 이제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된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5000천 여 년 전에 인류 최초의 문명을 일구기 시작한 이 위대한 조상들은 피라미드와 상형문자 등을 비롯하여 고대 문명사에 엄청난 족적을 남겼다.
우리가 단군 신화를 근거로 고조선 건국 연도인 기원전 2333년부터 지금까지를 반만년의 역사라고 말하지만, 고고학적 증거가 거의 발견되지 않는 것이 비해, 이집트는 그야말로 명실상부하게 진정으로 반만면의 역사를 자랑한다고 할 수 있겠다.
5천 년 전의 왕조 연대표가 지금까지 전해져 온다는 것도 신기하고, 그 먼 옛날에 피라미드와 같은 엄청난 건축물을 세웠다는 점도 경이롭다.
책에는 전문가답지 않게 화성인이 세웠을 수도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학설까지 소개하고 있지만 학자들이 피라미드 건축을 불가사의하게 생각하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하겠다.
오늘날 수십 층의 고층 빌딩을 지을 수 있게 된 시작이 바로 고대의 피라미드 건축에서부터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 피라미드는 얼마나 단단한 곳에 부지를 선정했는지 지진 때도 전혀 흔들림이 없었고 밑으로 침강한 깊이도 불과 2~3cm 라고 한다.
그 거대한 화강암들은 대체 어떻게 옮겨 왔고 또 철기구도 없이 청동 연장을 가지고 어떻게 다루었으며 어떤 식으로 쌓아 올렸는지 여전히 의문점이 많다고 한다.
<피라미드의 과학>이라는 책을 읽어봐야겠다. 

이집트는 국토의 95%가 사막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고대부터 이 놀라운 문명이 가능했던 것은 순전히 나일강 덕분이다.
저자의 표현대로 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 정도가 아니라 나일강 그 자체다.
이집트 국토를 종단하는 이 긴 강 덕분에 풍부한 수확이 가능했고 그 풍요로움 덕분에 피라미드와 같은 거대한 건축물을 세울 수 있었을 것이다.
안타까운 점은, 로마의 속주가 된 이래 무려 2000년의 세월 동안 외국의 지배를 받다 보니 이집트 고유의 언어와 문자가 사라져 고대 문명과 단절됐다는 점이다.
샹폴리옹에 의해 상형문자가 해독되기까지 오랜 시간 동안 고대의 문명을 찬란하게 밝혀줬던 이 위대한 글자가 그저 장식용으로만 여겨졌단다는 사실이 기막히다.
상형문자는 표음문자의 기능도 하고 민용문자로 변형되어 일상생활에서도 널리 쓰였다고 하는데 무려 3천년을 이어오다가 사라져 버렸다는 게 너무나 의아하다.
문자는 그렇다 쳐도 왜 언어까지 아랍어로 바뀌게 됐는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도 한자를 쓰는 중국은 정말 대단한 나라다.
중국 같은 거대한 나라가 수천 년 동안 단일한 문화 체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야 말로 진정한 기적 같다. 

현재 이집트는 이슬람화 되어 있지만 국민의 10%는 기독교의 변형인 콥트교라고 한다.
모세가 파라오로부터 백성들을 이끌고 탈출했다거나, 요셉과 마리아가 헤로데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수년간 피난해 왔다는 전설도 있는 만큼 이집트는 기독교에서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것 같다.
나는 최소주의자의 학설을 신봉하는 만큼, 모세의 출애굽 자체를 믿지 않지만 전설과 관련된 장소들은 오늘날에도 수많은 관광객들을 끌어 들이고 있다.
특히 모세가 야훼를 만났다는 호렙산에는 카트린 수도원이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이 곳에 올라가서 아침을 맞으면 과연 신을 만날 수도 있겠구나 싶을 정도로 영성이 깊어진다고 하니 자연 풍광이 얼마나 장관일지 짐작이 간다.
기회가 되면 꼭 가 보고 싶다. 
콥트교와 관련된 유적지나 문화재도 꽤 많은 것 같은데 이집트 문화의 다양함에 일조한다는 생각이 든다. 

수에즈 운하는 그냥 운하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면 사막 한 가운데 배가 지나가는 장면이 압권이라고 한다.
사진을 보니까 정말로 모래둑 사이로 배가 유유히 지나가고 있다.
역시 말로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더 본질 파악에 유익하다.
사진이 없었다면 아마 난 대체 뭐가 장관이라는 거야, 하고 툴툴거렸을 거다.
그 동안 이집트 하면 피라미드 밖에 몰랐는데 여행을 하게 된다면 이런 곳들도 꼭 가 보고 싶다. 

인류 문화의 시작인 유구한 역사의 나라 이집트에 대해 소개한 재밌는 책이다.
간략하나마 이집트 역사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게 됐고 이집트 문화를 이루는 다양한 측면을 소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정말 꼭 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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