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릉 - 고대 동아시아 문명 교류사의 빛 테마 한국문화사 4
권오영 지음 / 돌베개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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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풍부하고 도판도 훌륭한 예쁜 책이다.
테마 한국사 시리즈는 서문에 나온 저자들의 각오만큼이나 우리 역사를 사진과 함께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획물 같다.
이번에 불화 편도 나왔던데 가능하면 전부 읽어 보고 싶다. 

무령왕릉에 관심을 가진 것은 공주에 다녀온 다음부터다.
분명하게 누구의 묘인지 밝혀진 곳은 이 곳 뿐이라는 설명이 내 관심을 확 끌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벽돌묘라는 것도 흥미로웠다.
이 책에 따르면 무령왕릉은 6세기 중국의 남조 양나라와 일본의 아스카 시대를 연결하는 동아시아 교역의 상징이라고 한다.
저자는 무령왕릉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것보다, 남조 시대의 무덤 연구를 토대로 무령왕릉이 얼마나 양나라와 비슷한지를 설명하고 이것을 활발한 교역의 증거로 삼는다.
심지어 최고의 백제 보물로 일컫어지는 백제금동대향로마저도 중국에서 건너온 수입품일 가능성을 조심스레 제시한다.
실물이 중국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국내에서는 당연히 백제에서 제작됐다고 보나 중국의 여러 벽화나 화상전 등을 보면 이것과 똑같은 모양의 향로들이 많이 존재하므로 여러 정황으로 봤을 때 중국에서 수입됐던지 아니면 중국 수입산을 바탕으로 백제에서 제작됐다는 것이다.
어떻든지 이 대향로 역시 중국 남조와의 활발한 교역의 증거로 봐야 한다고 설명한다.
나 역시 중국 문화재를 소개하는 책에서 이 향로와 거의 비슷한 박산향로를 보고 깜짝 놀랬던 적이 있다.
그 전까지는 막연하게 우리나라의 독특한 향로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중국에도 비슷한 향로들이 있었던 것이다.
역시 일본에도 백제와 비슷한 양식의 부장품들이 많이 나와 저자는 양나라에서 수입한 문물을 백제가 주체적으로 왜에 전한 것으로 본다.
중국 영향은 축소화 시키고 일본에 전해준 것만 극대화 시키는 민족주의적인 시각보다는 훨씬 성숙한 태도로 보이나, 부득불 중국과 일본의 가교 역할을 강조한 것도 썩 바람직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이것과 똑같은 태도가 한반도를 뛰어넘어 직접 중국과 교류했다고 주장하는 일본 민족주의 학자들의 주장이 아닌가.
고대사를 현대와 연관지어 특히 민족의 자부심 등과 관련지어 이해하려는 시각의 한계 같다.
어쨌든 중요한 점은 저자의 최종적인 주장대로 6세기 동아시아는 무덤 양식이나 부장품 등이 즉시 수입될 만큼 활발하게 서로 교역하였고 그 대표적인 증거가 바로 무령왕릉이라는 것이다. 

1971년에 우연히 송산리 6호분의 배수로 공사를 하다가 발견된 무령왕릉은 도굴된 적이 없는 처녀분인 만큼 엄청난 양의 부장품이 쏟아져 나왔고 지나친 취재 열기 때문에 단 하루 만에 발굴이 끝난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화를 가지고 있다.
언제 누가 묻혔는지를 정확하게 설명하는 유일한 왕릉이 겨우 하루 만에 수습되다니, 정말 믿어지지 않는다.
장마가 지고 엄청난 취재 열기 때문에 도굴이나 훼손 위험이 커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당시의 발굴 태도는 이해되지 않는다.
심지어 어떤 기자가 밀치다가 청동제 부장품을 부러뜨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런 걸 보면 차라리 잘 보존되다가 후대에 발굴되는 게 훨씬 나을 것 같기도 하고, 이런 무수한 도굴과 훼손의 위험 속에서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는 문화 유산들이 얼마나 긴 인고의 세월을 이겨냈는지 새삼 놀랍게 느껴진다.
무령왕은 사망 후 27개월 동안 정지산에 빈전이 차려져 임시로 모셔졌고 그 기간 동안 왕릉을 지어 옮겨졌다고 한다.
요즘 장례가 3일장이던 것에 비하면 이 3년상은 확실히 고대에 조상 숭배가 일종의 종교였음을 보여 준다.
능에 매장한 지 한 해도 되지 않아 또 다시 왕비가 사망하여 다시 3년상을 지내니 당시 이런 장례 풍습이 얼마나 일상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는지 이해가 된다.
무령왕은 일본서기에 사마왕으로 등장하는데 개로왕의 아들로 나와 있고 동생인 곤지가 임신한 개로왕의 처를 데리고 일본으로 떠나던 중 섬에서 낳았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저자는 나이와 정황 등을 고려해 봤을 때 무령왕은 곤지의 아들로 봐야 하고 암살로 얼룩진 선대왕들 대신, 개로왕과의 직계 혈통임을 강조하기 위해 아들로 되어 있다고 해석한다.
다른 저자들의 의견을 참조해야 할 것 같다.
무령왕은 앞의 왕들이 암살당했던 것에 비해 당시로서는 환갑을 지낼 만큼 장수했고 (62세) 웅진 시기의 혼란기를 정비해 지방 호족들을 제압했으며 양나라와의 활발한 교역을 통해 영동대장군의 칭호를 하사받는 등 백제의 위상을 높힌 중흥의 군주로 나온다.
왕릉의 발굴 때문에 갑자기 위상이 업그레이드 된 느낌도 들지만 사료에 부족한 부분을 발굴을 통해 재정립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사진과 도판이 풍부해 읽는 내내 눈이 즐거웠고 서술 또한 작은 주제에 압축되어 그 밀도가 높다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좋은 기획들이 많이 나오길 바라면서 역사서에서 비교적 소략된 백제사가 다시금 그 중요성을 갖게 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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