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의학, 그 위대한 도전의 역사 - 노벨 생리.의학상으로 보는 질병과 의학의 투쟁사 메디컬 사이언스 4
예병일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기대했던 바와는 달리 내용이 너무 평이하다.
약간의 편견일지 모르겠지만 대체적으로 이런 과학 서적은 국내 필자의 책보다 번역책의 수준이 훨씬 높다.
당장 의학의 역사만 해도 캐나다 사람이 집필한 <의학의 역사>가 훨씬 낫다.
검증된 책만 번역이 되기 때문일까?
무시무시한 표지나 위압감을 주는 제목과는 달리 내용은 무척 평이하고, 의학적인 사실 외에 저자가 문제제기를 하거나 논평한 부분은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가볍게 화두를 던지는 정도지 책으로 엮기에는 수준이 너무 낮다.
국내에서는 드물게 의학사를 연구하는 분이라고 하는데 전문적인 필력을 갖기에는 아직은 내공이 더 많이 쌓여야 할 것 같다. 

부제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이 책은 노벨 생리의학상을 위주로 서술되어 있다.
<노벨상의 교양을 읽는다>라는 책에서 보면 부적절하게 수여되서 상의 권위를 깍아먹는 경우가 많이 등장하는데 내 기억으로는 적어도 생리의학상 부분에서는 의학 발전에 공헌한 이들에게 적절하게 수여되어 훌륭한 촉매제가 됐던 것 같다.
이 부분을 다시 읽어 볼 생각이다.
어떤 업적이 몇 년도에 노벨상을 받았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되서 현대 의학에 획을 그은 훌륭한 발견들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이런 과학적 발견을 접할 때마다 느끼는 바지만 세계적인 과학자들은 범인들과는 다른 특별한 머리를 가진 천재들이자 놀랄 만큼 창의적이고 성실한 사람들 같다.
교과서에 나올 정도의, 한 시대의 패러다임을 정립한 왓슨이나 크릭 등의 업적을 접할 때면 그저 감탄하는 수 밖에 없다.
이들이 발견한 내용을 제대로 이해도 못하고 있는 나 같은 평범한 독자들은 그들이 밝히고자 했던 진리보다도 누가 스승보다 먼저 상읕 탔다더라, 누구는 운이 좋아서 발견을 했다더라 같은 가쉽거리가 흥미로우니, 약간의 자괴감마저 든다.
정말 세상은 평범한 이들이 그럭저럭 꾸려 가고 있지만 혁신과 창조, 진보는 소수의 천재들에 의해 이끌어지는 게 아닐까 싶다. 

교과서에서 무조건 암기하던 다양한 질병과 근본원리들이 일화들과 더불어 쉽게 설명돼서 신선하기도 하고 이해하기도 쉬웠다.
이를테면 말라리아가 이탈리아어로 나쁜 공기라는 뜻이라는 걸 알게 되면 병에 대해 더 친근감을 갖고 접할 수 있다.
과거에는 공기에 의해 감염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미생물의 발견은 19세기 파스퇴르에 이르러서야 가능했으니 당연한 발상이다.
지금도 완치는 어렵고 열대 지방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무서운 질병인 만큼 약이 발견되기 전에는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학질로 알려졌다는 걸 보면 과거에도 풍토병처럼 있었던 모양이다.
뉴스후 같은 프로그램에서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모기장이 없어 말라리아에 걸리고 또 치료제가 없어서 죽어간다는 슬픈 소식을 자주 접하는데 이렇게 질환의 생활사와 치료약이 나왔는데도 돈이 없어 죽어 간다는 사실이 정말 안타깝다.
천연두나 홍역 같은 바이러스 질환들은 예방접종으로 유아기 사망률을 극적으로 낮출 수 있게 됐다.
결핵 예방접종을 왜 BCG 라고 하는 줄도 알게 됐다. 
발견자 두 사람의 이름을 딴 것이다.
같은 예로 나병도 환자에 대한 편견을 버리기 위해 균을 발견한 과학자의 이름을 따서 한센병이라 부른다고 한다.
교과서가 아닌 인문학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잔잔한 재미들이다. 

뒷부분은 생명 복제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저자가 지적한 바대로 이미 인간 유전자를 박테리아 등에 삽입하여 인슐린을 만들어 내는 만큼 실제 환자들에게 엄청난 도움을 주고 있는데도 무조건 윤리적인 측면에서 거부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시험관 아기가 처음 태어났을 때 신에 대한 도전 운운하면서 시끄러웠지만 지금은 불임 부부에게 희망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무엇보다 아직은 생명복제 기술이 완벽한 개체를 만들어 낼 만큼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이고 당연히 윤리적인 측면에서 다양한 논의가 있어야 하겠지만, 유전병이나 불치병에 걸린 불행한 환자들을 생각한다면 배아 세포나 줄기 세포에 대한 연구는 더 개방적인 쪽으로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팔이 잘라지면 복제 인간을 만들어 내서 팔만 이식하는 식의 공상과학적인 얘기는 현재 기술로는 황당무계한 일이니 지나친 경계는 기술 발전에 저해가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일이다.
하여튼 유전 기술은 과거에 비하면 깜짝 놀랄 만큼 극적인 발전을 계속 하고 있어서 생명에 대한 이 놀라운 신비가 과연 얼마나 밝혀지게 될지 흥미진진 하다.
침팬지와 인간의 유전자 차이가 겨우 1.3% 에 불과하다던가, 인간 유전자 일부를 선충 유전자에 삽입하여 세포 분열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등의 이야기를 보면 결국 생명을 구성하는 기본 원리는 동일하고 인간이 모든 자연계의 최고 지배자가 아니라 지구상에 있는 생명체 자체가 하나의 형제들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도킨스의 말대로 우리가 선충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근거가 대체 뭐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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