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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 - 신경과의사 올리버 색스의 병상 일기
올리버 색스 지음, 한창호 옮김 / 소소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의사의 환자되기에 관한 에세이.
기대했던 바에 비하면 별로였다.
너무 오래 전에 쓰여진 에세이라 그런지 시의성도 없고 얻을 만한 정보도 별로 그다지 썩 와 닿지가 않았다.
1970년대 영국 병원과 재활원 제도를 알게 된 게 수확이랄까?
대퇴사두근과 인대가 파열되어 다시 걷게 되기까지 근 두 어 달에 걸친 병원 투병기인데 저자가 신경과 의사이다 보니 의사가 아닌 환자의 입장에서, 특히 다친 다리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현상을 직업과 관련지어 자세히 분석한다.
의사나 병원이 얼마나 권위적인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개인적인 관심과 배려를 해 주기 힘든 구조인지 잘 알고 있다.
오히려 이 책 보다는 <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에 훨씬 더 잘 기술되어 있다.
대장암에 걸린 형을 돌보는 의사 동생의 심정이, 보통 환자를 대할 때 가졌던 무덤덤과 무감정이 얼마나 안타깝게 바뀔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cast를 오래 대면 근육이 위축될 뿐 아니라 그 쪽의 감각마저 상실되어 뇌의 이미지가 재편성된다.
즉 없는 다리로 인식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다리를 절단한 사람이 여전히 다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환지통과도 비슷한 원리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뇌는 불변의 고정된 영상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적응하고 새로 설계된 가변의 설명서를 만들기 때문에 안 쓰면 지워진다.
그래서 요즘에는 부러진 다리를 고정시킬 때도 심지어 walking cast를 대서 즉시 보행 연습을 시킨다고 한다.
사실 정형외과 병동에 가 보면 스크루 등으로 부서진 뼈를 고정시킨 장기 환자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데 보통 한 두 달은 기본으로 휠체어 신세를 진다.
과연 이들 대부분이 다리가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을 경험하는지 궁금하다.
정형외과 의사는 다리뼈가 잘 붙었는지에만 관심이 있을 뿐, 환자가 다리가 없는 것 같아요, 이런 말에는 아무 관심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자꾸 그런 소리를 하면 정신과에 컨설트를 낼 것이다.
사실 정형외과 의사는 뼈에 관해 전문가일 뿐 신체 이미지가 왜곡된다거나 사라지는 것 같은 현상에 대해서는 일반인과 크게 다를 바가 없으니 차라리 빨리 정신과나 신경과 의사에게 자문을 구하는 게 옳을 것이다.
환자가 된다는 것은 정말 너무나 엄청나게 두려운 일이다.
병원에 입원해 본 사람만이 그 공포를 알 것이고, 그들조차도 가망이 없는 불치병, 이를테면 말기암 환자나 평생 장애를 갖게 될 장애자의 절망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아프면 일단 통증에 시달리게 되고 그것이 해결되면 제대로 모든 기능이 회복될 수 있을지 두려워 한다.
재활치료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예전처럼 잘 걸을 수 있을까 등등.
그러나 정말 영구히 불구가 되어 버린다면, 노력해도 바꿀 수 없다는 판결을 받게 되면, 아 그 절망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지 못할 것이다.
건강이 왜 가장 우선인지 새삼 느꼈다.
건강한 신체, 아프지 않게 섬세하게 자신을 돌보기.
정말 저자의 표현대로 회복이란 단순히 병에서 벗어나는 게 아니라 재탄생이라 해도 좋을 만큼 엄청난 사건이다.
신경과학은 인간의 뇌를 다룬다는 점에서 다른 어떤 의학 분야보다도 더 흥미롭고 신비하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서 인지장애를 겪는 환자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다.
다음에는 <뮤지코필리아>를 읽어 볼 생각이다.
유쾌한 문체와 해박한 지식이 돋보이는 괜찮은 에세이스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