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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7 아무일도 없었던 해
황런위 지음, 박상이 옮김 / 가지않은길 / 1997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이 절판이라니, 좀 놀랍다.
읽어 볼 만 하고 상당히 재밌는데 말이다.
의외로 책들이 쉽게 절판되는 것 같다.
거시중국사를 너무 재밌게 읽어 저자의 전공 분야인 만력제 당대에 관한 책을 읽게 됐다.
지난 번 책 보다는 좀 못하는 느낌이다.
중국사 전체를 조망하는 방식을 한 시대로 축소시켜 적용하려다 보니 지루하고 지엽적이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그러나 만력제라는 인물에 대해, 그리고 명나라 말엽의 시대 상황에 대해 더 정확하게는 근대 사회로 접어들지 못한 전통 농경사회의 몰락에 대해 제대로 이해한 기분이다.
만력제는 재위 기간이 50여년에 달하고 조선에 원병을 보내줘 조선 사대부들에게 큰 은인처럼 인식되는 황제라 이 책에 서술된 이미지가 사실 좀 낯설었다.
독재적이고 거드름 피우고 권력에 집착하는 무능력한 말기 왕조의 황제라는 이미지였는데 책에서 만력제는 어린 나이에 즉위해 장거정이라는 신하와 그 모후에 의해 좌지우지 되면서 자신의 발언권을 얻지 못하고 장거정 사후에는 결국 태업으로 국정을 낭비한 무능력한 가엾은 황제로 나온다.
황제가 정사를 거부하는 파업을 자행하다니, 황제 1인 독재국가에서 전제왕조에서 이 무슨 기막힌 일이었을까?
영국처럼 입헌전제국가도 아니면서 말이다.
관료제의 관성에 의해 어찌어찌 흘러 가기는 했으나 당시 명나라의 상황이 어떠했을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중국은 정식 왕비가 아니라 할지라도 아들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 태후로 격상시켜 주는 제도가 있나 보다.
유명한 서태후만 해도 그렇고.
만력제의 어머니 역시 아들이 황제가 된 덕분에 태후가 되어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효라는 절대적인 가치 때문인가? 어찌 됐든 후궁에 불과한 어머니가 어린 황제에게 이렇게 절대적으로 군림할 수 있는 것인지, 심지어 제위를 뺏겠다는 발언까지 할 수 있는지 좀 의아하다.
정말 중국의 황태후에게 이런 권한이 부여된 것인가?
장거정이라는 인물은 이름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 책에서는 전통적인 자영농 관료집단 안에서 개혁을 추구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이 책의 장점을 들자면 도덕주의나 명분론에 함몰되지 않고 비교적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어찌 보면 유물론적 관점에서) 사건과 인물을 분석했다는 것이다.
장거정은 판을 뒤집는 대신 안정을 추구하는 전통 관료제 안에서 나름의 혁신을 이루려고 애쓰지만 개인적으로 여자를 밝히고 재산을 치부하는 등 탐욕적인 면도 같이 보여 결국 죽고 나서 모든 관직이 삭탈된다.
당시 명나라의 관료는 월급이 너무 적어 지방관으로 파견되야 백성들의 수탈을 통해 비로소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수령의 수탈은 광범위하고 구조적으로 이루어진 관행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관료제 사회였기 때문에 중앙과 지방은 인맥으로 얽혀 있어 윗선에 선물을 바치는 것도 당연한 관례였다.
하급 관료의 경우 부유한 상인의 후원을 받거나 돈을 빌리지 않으면 생활이 어려울 지경이었다고 한다.
오죽하면 옹정제 때 수탈을 막기 위해 아예 양렴은이라는 세원을 만들어 줬을까?
그런데 가끔 정말로 공익만을 추구하고 사적인 이기심을 엄단하려는 극단적인 도덕주의자 관료가 등장한다.
전형적인 예가 바로 해서다.
마치 판관 포청천 같은 이미지인데 그는 쥐꼬리 만한 월급으로 생활하고 조금이라도 백성에게 뺏으려고 하는 관리는 심지어 사형시켜야 한다고 주장해 동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명성 때문에 관직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오랜 세월 가난하게 살아야 했고 중앙 무대에서 크게 활약하지 못했다.
보통 이런 도덕주의자는 대부분의 책에서 부정부패와 싸우는 도덕적인 관료의 현신으로 추켜 세워지는데 저자는 당시 명나라 정치 구조로 봤을 때 매우 극단적인 이상주의자라고 평한다.
한마디로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모르고 혼자 여기저기 휘젓고 다니는 꼴이랄까?
그래서 역사는 도덕적인 관점으로 돌아가는 게 아닌 모양이다.
개인으로서는 청렴결백하고 칭송받아 마땅하나 전체로 봤을 때 반드시 그것이 선인지는 또다른 문제다.
기본적으로 명나라는 자영농에 의해 유지되는 농업 국가였고 정교한 법 발달 대신 도덕적 원칙에 의해 통치되는 느슨한 국가였다.
너무나 빠른 시기에 이룩한 너무나 엄청난 인구와 국토의 중앙집권제는 교통과 통신 시설의 부족, 통계 처리의 미숙함 등으로 처음부터 현대 국가처럼 관리될 수 없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므로 중앙의 정책을 세울 때 벌써 조사 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대충 책상머리에서 세워진 정책은 각 지방의 특성을 무시한 채 일괄적으로 강제 집행되어 당연히 실무 현장에서는 이상향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거대한 전통국가가 수천년 동안 단일한 정치 체계를 유지해 왔던 원동력은 법이 아닌 도덕적 명분에 의한 자기 절제, 상호 감시 시스템이었다.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하는 대신 관리들은 소규모 자영농을 지배하고 향촌 사회에서 사대부 계층이 (명대에는 신사층) 관리와 협력하여 공동체 내의 자체적 기율을 잡는다.
일괄 부담된 세금은 각 지방의 형평을 고려하지 않았으나 어찌 됐든 구색은 맞춰서 보내져야 한다.
당연히 수탈되고 억울하게 거둬지는 예가 많았을 것이다.
명대의 기본 구조는 안정, 평균적인 생활 유지였기 때문에 혁신이나 강력한 군사 제도는 운영되기 어려웠다.
척계광의 예에서도 나오지만 그가 남쪽의 지원병을 받아 조련시켜 북경을 지키게 한 것은 충정심의 발로라기 보다는 사병화 되는 군사 집단으로 보이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누르하치의 여진족과는 기본적으로 명은 다른 시스템의 국가였다.
그러므로 몽골족이나 여진족 등의 유목민이 기세를 떨쳐 진격해 오면 수비해 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고 어쩔 수 없이 확장해 나가는 공격적 체제가 아닌 안정 지향의 농업 국가인 중국은 유목민과의 투쟁사를 겪어 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명의 군대는 질보다는 숫자로 승부하는 대규모 병력에 있었기 때문에 보급 체제를 효율적으로 유지하기 힘들었고 방어보다는 농민반란을 막는 것이 진짜 목적이었다.
중국과 같은 시스템인 조선이 명에 사대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사정이 이해된다.
유교가 전통 사회에 미친 영향, 그리고 근대 국가로 전환할 수 없었던 그 한계점에 대해 이해하게 됐다.
자본주의의 싹이 자라고 있었다는 해석이야 말로 현대적 관점에서 당시를 보려는 억지스러운 역사 인식 같다.
조선 출병에 관한 얘기가 같이 나왔으면 좋았을텐데 아쉽고 대신 광해군의 세자 책봉을 반대했던 당시 명나라의 사정을 알게 되서 반갑다.
만력제는 첫째 아들 대신 좋아하는 후궁에서 난 셋째 아들을 황태자로 삼고 싶어 관료들과 대립 중이었던 차라, 장남이 아닌 차남 광해군의 세자 책봉도 쉽게 승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버지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던 이 불행한 첫째 아들은 만력제의 오랜 제위 기간 끝에 황제의 자리에 오르긴 했으나 한 달 만에 사망하고 만다.
인생이란 또 역사란 참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저자의 현실적인 관점이 무척 마음에 들고 다른 책도 같이 탐독해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