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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그 거대한 행보 - 레이 황의 거시중국사
레이 황 지음, 홍광훈. 홍순도 옮김 / 경당 / 2002년 10월
평점 :
절판
1988년 무렵 출간된 책이니 벌써 20여년 전의 책이다.
시의성에서 약간 떨어질 수도 있겠으나 지금까지 읽은 중국 관련 책 중에서 가장 재밌게 읽고 있다.
거시중국사라는 독특한 관점이 마음에 들어 대체 어떤 내용일지 무척 궁금했었는데 왠지 긴 중국 역사를 한꺼번에 조망한다는 게 부담스러워 계속 미뤄왔던 책이기도 하다.
일본 관련 역사서 중에서 제일 인상깊고 재밌게 읽었던 책이 <현대 일본을 찾아서> 인데 이 책이 비교적 학술적인 느낌을 풍겼다면 이 책은 교양서에 더 가까운 느낌이다.
그만큼 읽기도 쉽고 굉장히 재밌다.
저자가 재미 중국인인 만큼 중국의 역사에 정통하고 이해하기 쉽게 미국의 예에 빗대서 설명하는 것도 흥미를 배가시켰다.
우리나라 사람이 미국에 건너가서 영어로 한국 통사를 쓴다면 미국인이 쓰는 한국사 보다 세부적인 면에서 더 자세하고 번역에서 오는 어색함도 줄어드는 것처럼 말이다.
무엇보다 마음에 든 것은 서문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당시 제도의 세세한 부분이나 단편적인 사실의 전달에 치중하지 않고 그 제도나 사건이 역사의 발전에 끼친 영향력은 무엇인지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유구한 중국의 역사를 읽는데도 지루하지 않고 성큼성큼 뛰어넘으면서 독서를 진행할 수 있었다.
같은 저자가 출간한 책, <허드슨 강변에서 중국사를 이야기 하다> 와 <아무 일도 없었던 해> 등을 같이 읽어 볼 생각이다.
지난 번 <대청제국>에서는 중국의 역사가 단지 한족만의 역사가 아니라, 몽골족, 티벳족, 만주족, 위구르족 등이 더해진 오족의 중화임을 깨달았다면 이번 책에서는 중국이 어떻게 자본주의 국가로 전환할 것인지, 왜 중국은 자본주의화에 실패했는지 전통적인 중국 농업사회와 전제왕권의 배경에 대해 이해하게 됐다.
일견에서는 지나치게 자본주의 관점에서 역사를 기술했다는 비판도 받는다고 한다.
확실히 중국은 (한국 같은 개방 이전의 동양 사회도 마찬가지겠지만) 르네상스나 대항해 등을 기점으로 자본주의 사회로 전환된 서양과는 전혀 다른 전통적인 농업 전제 국가였다.
그것은 덩샤오핑의 개방 이전까지도 계속 지속되어 온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서와 고증으로 확인된 상나라로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수천년 동안 지켜온 단일한 중앙집권제가 가능했던 이유도 바로 그 농업전제왕권의 안정성일 것이다.
변화와 혁신을 통해 성장하는 서구의 자본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시스템이다.
산업혁명이나 대항해 시대 이전의 전통사회에서는 농업을 바탕으로 민중을 먹여살리고 강력한 왕권으로 (특히 잔인한 형법으로) 백성들을 통제했던 중국의 시스템이 무척 안정적이고 효율적이었을 것 같다.
책의 표현대로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요구조건을 충족시켜 줌으로써 기층 사회를 안정시켰고 관료제로써 그것을 통제했으나 변화와 혁신을 바탕으로 성장해 가는 자본주의 시대에는 전혀 맞지 않는 시스템이다.
동양 사회가 근대화에 실패한 것은 어찌 보면 전혀 다른 체제로의 전환이 쉽지 않았음이 당연해 보인다.
또 그것은 전통 사회에서 서양에 비해 안정적인 사회를 유지했던 중국이 서구보다 왜 더 잘 살았는지를 설명해 준다.
특히 서구 사회가 중세를 지나면서 도시에서 상인들이 영주로부터 권리를 빼앗아 오고 시민계급의 권리가 점차 기층민들에게까지 퍼져 가는 과정이 민주주의의 발전이었던 것에 비해 중국 사회는 관료제의 발달로 언제나 관료는 상인들보다 우월했고 도시민들을 완벽하게 제압하고 있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나 인권의 발달은 불가능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책에서도 본 것처럼 정조나 맹자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민주주의나 인권 등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서양에서 말하는 자결의 의미가 아니라 단순한 소민보호주의, 측은지심이나 인의 발로 등이라는 뜻이다.
근본적으로 중국 사회에서 황제는 소규모 자영농들을 세금과 병역의 징수 단위로 삼았기 때문에 호족들의 토지 겸병이 늘어날수록 국가의 이득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중국은 토지 면적보다는 호수를 기준으로 세금을 징수했기 때문에 호족들의 노비가 늘어나고 기근으로 아사자나 도망자가 늘면 남아 있는 백성들에게 부과되는 양은 더욱 늘어날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전통사회의 통계 기법으로는 시시각각 변하는 농촌 사회의 토지 변동 사항을 정확히 측정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므로 기본적으로 황제는 지주 계급의 확산을 저지해야 하는 입장이었고 언제나 소규모 자영농의 보호, 이른바 소민보호주의, 민중에 대한 측은지심의 유지 이런 것이 기본적인 정치 기조였고 균전법이나 한전법, 점전법 등의 토지 소유 제한도 이런 취지에서 나왔다.
국가의 이러한 세금 확보 방법이 사회의 안정에 기여한 반면 최대의 경제적 효율성을 추구하는 쪽은 당연히 아니었을 것이다.
심지어 상업도 국가에서 균수법이나 전매법, 평준법 등을 통해 통제하고 그 이익을 취하려고 했기 때문에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동양 사회에서 서양의 도시처럼 자발적으로 발전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동안 지주 계급, 대상인 등의 계층은 민중의 고혈을 빨아먹는 흡혈귀, 통제해야 하는 대상 이런 식으로만 생각했는데 윤리 등의 관점 대신 역사의 발전 방향의 축에서 보면 다른 의미도 가능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송나라 때 왕안석의 신법이 사회 시스템상 성공하기 힘들었고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켰다는 어느 역사가의 평가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또 동양사회에서 자본주의의 맹아가 싹텄고 서구의 침입이 없었다면 저절로 자본주의가 발전했을 것이라는 그 맹아론에도 의문이 생긴다.
자본주의가 역사가 나아가야 할 사표가 아닌 이상 모든 사회가 다 자본주의로 나아가야 하는 것도 아닌 만큼, 오히려 그런 관점이야 말로 (전통사회에서 자본주의의 흔적을 찾으려고 애쓰는 것) 자본주의의 우월성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그래서 저자는 두 가지 관점을 비교한다.
첫째는 전통적인 사람들의 인식이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삼국지연의에서 보여주는 조조에 대한 미움, 관우나 유비 등을 추앙하는 분위기 등인데 역사학자들도 이런 윤리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기술한다.
이른바 소전통인데 조조는 한나라를 배반하고 황제를 억압해 나라를 세웠으니 나쁜 놈이고 유비는 한나라의 지키려고 했으니 착한 사람이다, 이것이 기본적인 역사 인식의 틀이다.
다른 하나는 역사가들 사이에서 보이는 이른바 대전통인데 공자나 주희 등이 주장한 춘추기법일 것이다.
정사의 구별, 의인과 악인의 대비, 칭찬과 비난의 확연한 구분으로 역사를 이분법적으로 분명하게 대비되도록 기술한다.
나라가 번창할 때의 황제들은 언제나 성군이고 망할 때는 항상 혼군인 것처럼 말이다.
개개인의 도덕심이나 윤리 의식 등이 역사 발전을 망치고 흥하게 한다기 보다는 사회 구조나 시스템의 변화가 역사의 흥망성쇠를 가져온다.
어찌 보면 지나치게 이분법적이고 단순화된 관점인데 지금도 기본적인 마인드는 선인과 악인의 구별, 윤리의식의 투영 등인 것 같다.
그래서 자본주의의 관점에서 바라 본 저자의 이 거시중국사가 흥미진진 하다.
기존의 당위적인 전통적 관점에서 조금 비껴섰기 때문에 신선하고, 색다른 관점에서 역사를 볼 수 있게 된다.
모처럼 재밌게 읽고 있는 책이고 한자를 많이 표기해 줘서 보다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