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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에 길을 찾다 - 새로운 시대를 꿈꾼 13인과 그들의 선택
임용한 지음 / 시공사 / 200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정말 좋아하는 저자의 신간이 출간됐다.
<전쟁과 역사> 시리즈의 애독자이기 때문에 다음 권은 당연히 임진왜란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서점에 좀 느닷없는 듯한 주제인 "개혁" 을 화두로 신간이 출시된 걸 보고 놀랬다.
제목은 너무 전형적인 느낌이 들어 재기발랄한 제목을 붙였더라면 보다 많이 홍보가 되지 않았을까 아쉽다.
내용은 물론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나는 책을 읽을 때 내용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저자의 문장력을 중시하는데 이 분은 기본적인 역사 인식도 나와 비슷하지만 무엇보다 글을 참 맛깔나게 잘 쓴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은 학문의 깊이와는 또다른 차원의 문제 같다.
외국의 유명 학자들이 쓴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바지만 자기 전공 분야에서 최고의 석학임은 물론, 문장력 또한 탁월하다는 사실이다.
검증된 책만 번역이 되서 그런 것 같은데 책의 내용도 훌륭하지만 정말 글을 잘 쓴다.
번역된 책이 이 정도라면 직접 원어로 읽으면 얼마나 훌륭할까 싶다.
하여튼 임용한 씨의 글도 비문이 없고 위트가 있어 가독성이 뛰어난 편이다.
자신의 시대를 개혁하고자 했던, 그러나 좌절된 13인의 개혁가들이 등장한다.
서문에 나온 것처럼 너무 잘 알려진 개혁가, 이를테면 정조나 세종, 정약용 대신 윤치호나 황현처럼 덜 알려진 인물들을 택한 점도 무척 신선하다.
조광조의 순진무구한 도학 정치의 허실은 이미 <조선국왕이야기> 편에서 충분히 읽은 바 있고 소현세자의 좌절이나 궁예의 몰락도 비교적 잘 알려진 이야기라 큰 감흥은 없었다.
오히려 근대의 개혁가에 속하는 윤치호와 황현, 이익이나 정약용에 비해 덜 알려진 실학가 유형원, 박제가 등이 흥미로웠다.
흥선대원군 편에서는 명성황후가 고종의 어머니와 같은 항렬이라 어렸을 때 안국동 이모라 불렀다는 에피소드가 신선했다.
고종의 리더쉽 부재, 권위와 재물에 대한 집착, 안목 결핍 등은 평화로운 시기였으면 그저 그런 군주로 기록됐을 터이나 급변하는 19세기 말의 통치자로는 함량 미달이었음은 익히 알려진 바다.
오히려 신선했던 점은 명성황후와 아버지에게 휘둘린 나약한 임금이었다기 보다는, 민씨와 같은 탐욕과 야욕을 가졌기 때문에
협공을 폈다는 시선이다.
지도자로서는 비전과 추진력을 지닌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더 적합했겠으나 그 역시 왕조 국가 이후의 식견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결국은 실패한 개혁가로 남을 수 밖에 없었다.
윤치호가 답답해 했던 심정이 이해된다.
일본처럼 극적인 개혁을 이루기에는 당시 조선 사회가 너무 닫혀 있었고 지도층 역시 혁명이나 개혁 의지가 너무 부족했다.
매천야록을 쓴 황현 역시 자기 수양을 통해 국가의 나아갈 바를 제시하는 애국지사였고 을사늑약 때 자결했으나 결국 위정척사파에 지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그런 면에서는 나중에 친일파로 변신하는 윤치호가 훨씬 더 개방적이고 현실 인식에 탁월했음을 보여준다.
개혁안을 제시한 유형원 역시 성리학이라는 시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그러고 보면 산업화와 세계화의 거대한 물결을 맞기 전 시대의 성리학자들인 이제현이나 정몽주 등의 개혁가들은 자신의 개혁 의지가 아직은 성리학적 틀이 안전한 시대에 살았기 때문에 조선 후기의 실학자나 말기의 위정척사가들과는 다르게 평가받아야 하는 것 같다.
결국 옳고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현실적인지, 시대적 인식의 깊이가 있는지, 미래를 내다보는 탁견인지 이런 내용이 중요한 것 같다.
명분론에 대한 집착이야 말로 여전히 한국 사회를 좌지우지 하는 힘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하여튼 제대로 된 개혁을 한다는 건 퍽이나 어려운 일이다.
흥미롭게 읽은 책이고 임용한 씨의 신간들이 많이 발간됐으면 좋겠다.
이 분은 저술가로써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전문 필자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