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그림으로 읽는 중국 역사
이은상 지음 / 시공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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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대 그림과 당대의 역사를 잘 버무린 새로운 시도의 책이다.
동양화는 서양화에 비해 편하게 감상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했던 터라, 본격적인 동양화 해설서 보다는, 오히려 역사학자가 설명한 그림이 부수적인 이런 책이 읽기가 더 편했다.
그러나 역시 전공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인지 그림 해석에 있어서 지나치게 전형적이고 도식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또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저자의 글솜씨가 썩 훌륭한 편이 아니라는 점이다.
좋은 책의 조건은 두 가지라고 생각하는데 일단 깊이가 있어야 하고 (적어도 그 주제에 대해 논문을 써서 학위를 받을 정도의 전문성) 문장력이 갖춰져야 한다.
비문이 없어야 읽기 편하고 쉽고 위트있게 풀어써야 흡인력이 생겨 술술 넘어가게 된다.
훌륭한 내용인데도 정작 서술하는 힘이 떨어져 꾸벅꾸벅 졸면 읽은 보람이 없으니 어쩌면 이런 교양서에는 책의 깊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문장력인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시도는 신선했으나 문장력 면에서는 평이한 수준이라 아주 재밌게 읽지는 못했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예전에는 한 번에 알아볼 수 있는 정교한 묘사와 화려한 색체감각이 돋보이는 서양화가 마음에 들었다.
한편으로는 동양화가 서양화에 비해 답보적이고 발전이 덜 된, 한 수 아래의 그림이라고 생각했다.
맨날 수염 기른 노인들이 폭포수 아래 앉아 바둑이나 두고 있고 색체 감각도 전혀 없는 바위산이나 먹으로 그리고 도무지 와 닿지가 않았다.
일단 서양화에 비해 색의 사용이 너무 제한적이고 평면성을 벗어나지 못하며 무엇보다 묘사력이 너무 떨어져 도대체 비교를 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마치 러시아의 이콘화와 비슷한 느낌이랄까?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우리 그림, 산수화, 수묵화 등에 관심이 생기게 됐다.
어쩌면 너무 자주 접하다 보니 색채와 묘사 위주의 화려한 서양화에 조금씩 싫증이 났는지도 모른다.
한시의 매력에 빠져 들고 한자가 주는 아름다움과 철학에 취하고 거대한 중국의 역사에 반하면서 나도 모르게 동양 문화에 마음을 열게 됐다.
정말 우리 것이, 전통 문화가, 동아시아의 문명이 너무 좋았다.
궁궐 답사를 다니고 박물관에 들락거리고 한자 공부를 시작했다.
그동안 내가 잘 몰랐기 때문에 그 가치를 제대로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정말 문화란 우열의 차이가 아니라 다양성의 문제, 세계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들의 차이 같다.
우리 것이 최고가 아니라 우리 문화도 훌륭하고 다른 나라의 문화에 대해서도 호기심과 궁금증을 갖는 것, 그것이야 말로 인식의 창을 넓히고 정말로 즐길 줄 아는 자세가 아닐까 싶다.
국수주의나 왜곡된 민족주의가 왜 편협할 수 밖에 없는지 알 수 있다. 

왜 동양화는 서양화에 비해 정교한 묘사가 부족한 것일까?
왜 동양화는 꼭 제문이 함께 있는 것일까?
동양화는 그림 자체가 목적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철학이나 인격, 포부 등을 밖으로 드러내는 하나의 도구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러시아의 이콘화가 신앙심의 표현인 것처럼 말이다.
혹은 이집트 미술이 일부러 평면적인 그림을 추구한 것처럼 각 문화권의 그림 양식은 그 문화를 지배하는 가치관이 담겨져 있어 서로 상이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원근법의 발명이나 여러 미술 기법 만을 가지고 서양화의 우위를 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동양화의 매력을 제대로 알려면 유교나 한자 문화에 익숙해야 하고 시와 그림의 연관성을 잘 파악해야 한다.
사실 이 책에서 지나치게 도식화 해서 당시 시대 상황에만 맞춰 해석한다는 느낌도 들지만 그림이 인용한 고사와 옆의 한시를 해석해 줘서 어느 정도 기본적인 이해는 할 수 있었다.
얼마 전에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서 무량사의 화상석 탁본을 본 것과, 조식의 낙신부도 모사본을 본 것이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화상석 탁본은 솔직히 형체 구별도 잘 안 되서 한참동안 공을 들여 설명문을 읽고 나중에 도록까지 따로 읽었을 만큼 공을 들였던지라 이제 어느 정도는 그림들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에도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다.
실제로 그 그림을 보고 읽는 것과 막연하게 사진만 본 것은 느끼는 감동의 강도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다.
조식이 낙수에 갔다가 그 곳 여신인 복비를 만나고 온다는 내용의 시, 낙신부를 고개지가 그린 그림이 낙신부도다.
두루마리 형태로 되어 있는데 이 조식이 바로 조조의 둘째 아들이자 조비의 동생이고 그가 만난 여인은 죽은 형수 견부인이라고 한다.
견부인은 조조, 조비, 조식 이 삼부자가 모두 사랑했던 여인으로 조비의 아내가 되지만 조식과 사랑하는 사이라 결국 남편의 질투심에 목숨을 잃고 만다.
형에게 불려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낙수에서 죽은 연인을 만나는 내용이니 참으로 환상적이고 애절하며 또 슬프다.
박물관에서 볼 때는 대체 이게 뭔 그림이냐 했는데 찬찬히 내용을 알고 나니 가슴이 찡하다. 

송 휘종이 그린 서학도도 궁궐의 지붕 위에 내려앉은 스무 마리의 학들이 참으로 화려하고 아름답다.
나는 아무래도 이런 장식적인 그림을 좋아하는 것 같다.
밤에 꽃이 지는 것을 두려워 하여 낮처럼 촛불을 환하게 켜 놓는다는 병촉야유도도 마음에 든다.
사실 고개지의 여사잠도나 낙신부도는 묘사력이 썩 훌륭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시대가 고구려의 광개토대왕 시절이라고 하니 그 선구적인 앞섬을 생각하면 가히 놀랄만하다.
송 휘종의 매제인 왕선이 그린 안개 낀 강가와 첩첩의 산 그림, 연강첩장도는 전형적인 평원화 그림이고 북송 시인인 소식의 친구였다고 한다.
항상 유럽이나 미국의 미술관에만 목말라 했는데 이제는 중국 미술관에 가 보고 싶다.
이런 명화들을 직접 볼 수 있다면!
책의 도판이 너무 작아 작가가 설명하는 부분이 보이지 않아 답답했다.
좀 더 도판을 크게 넣던지 아니면 부분 확대를 해 놓던지 할 것이지. 

중국의 역사와 명화에 대해 함께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이번 중국 여행에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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