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세계사 - 지금의 세계지도와 역사를 결정한 59가지 전쟁 이야기
김성남 지음, 진선규 그림 / 뜨인돌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뜨인돌이라는 출판사에서 삽화가 많이 첨부된 가벼운 소재의 말랑말랑한 역사서들을 많이 출판하는 것 같다.
역사의 대중화라는 관점에서, 혹은 청소년들에게 역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킨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면서도, 필자진이 전문 학자들이 아니라는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노출한다.
가끔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는데, 역사에 관심이 있다거나 혹은 전공한 사람들과 본격적인 역사학자의 차이는 뭘까, 재야 사학자들과 강단 사학자의 차이는? 인터넷에 수준있는 글을 올리는 일반인들과 교수의 차이는?
명확한 답변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막연하게나마 느낀 점을 써보자면 한 주제에 대해 연구하는 이른바 학자들은, 역사철학이 있고 시대를 조망하는 눈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한 사실의 나열보다는, 그 사건이 역사 발전에 미친 영향이나 결과 등을 보다 유기적으로 분석하고 지나친 확대 해석을 자제하고 주장에 끼워 맞추지 않고 보다 합리적인 해석을 한다고 해야 할까?
적어도 자기 주장에 책임있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무리한 주장은 하질 않는다.
이덕일 같은 사람도 역사를 전공한 이른바 학자인 걸 보면 이 말이 모두다에게 해당하는 건 아니지만 하여튼 지금까지 내가 읽은 역사서들에 비춰 볼 때 아마추어와 전문 학자들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이 책은 전쟁을 소재로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풀어낸다.
비교적 재밌게 읽었고 유용한 내용도 많은 편이지만 우리나라 이야기가 나오면 너무 민족주의적으로 해석하는 모습을 보여 아쉽다.
광개토대왕이 정말 CEO 형 군주였을까?
과거의 인물을 현재의 관점에 맞춰 해석하는 것은 언제나 위험하다.
그 때부터는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단지 이미지화 된 캐릭터에 불과하다.
내가 잘 모르는 동로마 제국의 위인들을 소개받아서 흥미진진했지만, 한편으로는 역시 전후사정을 잘 모르기 때문에 미화되고 전형화된 에피소드 중심으로만 인지하고 있지는 않는지 걱정스럽다.
이를테면 책에 소개된 광개토대왕이나 이순신 같은 인물편에서는 저자의 오버나 자니친 확대해석을 비교적 명확하게 짚어낼 수 있었지만 잘 모르는 서양사의 경우 이게 저자의 오버인지 제대로 된 평가인지 구분을 못하겠다.
그러므로 어떤 주제에 대해 자신이 정말 전문가라고 확신할 수 없다면 너무 지나치게 극단적인 언어는 자제해야 할 것 같다.
(네티즌들의 그 과격하고 격렬한 언어들을 볼 때마다 어쩜 그렇게 자기 말을 맹신할 수 있는지 신기할 뿐이다.) 

전쟁을 일반 병사의 입장에서 그린 챕터는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전쟁을 직접 수행해 내는 최하층의 병졸들에게 전쟁은 얼마나 끔찍하고 두려운 일이었을까?
근대 이전까지만 해도 동서양의 군인은 대부분 둔전병이었다.
군에서 지급한 농토에다 농사를 짓고 살다가 출동 명령이 떨어지면 군인으로 변신하여 낫 대신 창을 집어드는 식이다.
이들은 무장도 알아서 해야했고 이동 경비도 스스로 충당해야 했다.
반면 로마 군인은 직업 군인으로 월급을 받고 은퇴하면 연금도 받았으며 군대 내에서 최고의 의료진에게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무장도 군대에서 지급해 준다.
일종의 상비군 개념이었다고 해야 할까?
로마가 끊임없이 팽창하는 국가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어 보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로마는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나라다.
대체 학익진이 뭔지를 한니발의 칸나에 전투를 통해 알게 된 점도 기록할 만 하다.
학익진과 칸나에 전투의 초승달 대형은 같은 원리인데 중앙에서 적군을 유인해 한 곳으로 몰면 양 옆으로 기병대가 나타나 적군을 에워싸는 것이다.
학이 날개를 펴는 것과 같다고 해서 학익진 전법이라 불렀다고 한다.
한니발도 이런 방법으로 칸나에 전투에서 로마군을 몰살시킨다.
말의 등장은 매우 획기적인 사건이었지만 처음에는 말의 몸집이 작아 사람을 태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
대신 전차를 끄는 운송용으로 이용했다.
벤허의 화려한 전차 경주와는 다르게 실제로 전차를 주무기로 이용한다기 보다는, 상대의 대열을 깨는 역할을 주로 했다.
일단 전차로 돌진한 후 대열이 흩어지면 그 때 보병들이 달려들어 공격하는 것이다.
말이 개량되어 사람을 태울 만큼 튼튼해지자 이동에 제한이 많은 전차는 사라졌다.
신립이 조총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번에 알았다.
여진족들도 조총을 사용했기 때문에 북방에서 활약한 신립은 이미 조총의 존재와 한계를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점은 다른 책에서 다시 살펴 봐야 할 것 같다.
조총은 점화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조총만으로는 싸우기 어렵고 주변에 사수들이 도와 줘야 하는데 조총이 임진왜란 당시 얼만큼의 역할을 했는지는 더 살펴 볼 문제다. 

비교적 흥미롭게 읽은 책이고 삽화도 많아 지루하지 않았다.
다만 책의 수준이 아주 높은 편은 아니라 가볍게 일독할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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