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속의 그림, 그림 속의 시 - 문인화 2 보림한국미술관 11
김현권 지음 / 보림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글솜씨 자체가 아주 훌륭한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유용하고 재밌게 본 책이다.
특히 책의 판형이 크기 때문에 실린 도판들도 큼직큼직하고 시원스럽다.
덜 유명한 그림들을 위주로 실었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접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선비화가들의 그림이다 보니 화려한 맛은 적지만 품격있고 우아한 고졸한 맛이 있다.
특히 압권은 강세황이었는데 지상편이라는 백거이의 시를 표현한 <지상편도>라는 그림이 너무 마음이 든다.
나는 강세황의 그림을 무척 좋아하는 편이지만, 이 <지상편도>는 옅게 채색을 해서 마치 산뜻한 수채화를 보는 기분이 든다.
전문 화가도 아니었다는데 단순히 기품을 표현한 문인화가들과는  수준이 다른 묘사력과 색채감을 선보이는 느낌이 든다.
윤제홍의 지두화는 이른바 핑거페인팅인데 수묵으로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쓴다는 게 무척 신선했다.
정선의 <인왕제색도>는 흔히 접했던 그림인데도 저자의 설명을 듣고 보니 정말 먹으로 힘차게 뻗어 내려간 필선이 담대하고 기존의 관념산수화와는 다른 느낌이 든다.
역시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은 매화서옥이었다.
선비화가들과는 약간 차이가 있는 전기나 조희룡 같은 중인 계층, 이른바 위항문인들이 그린 매화서옥류의 그림은 색체감이 화려하고 한 편의 멋진 풍경화를 보는 느낌이 든다.
김정희가 조희룡의 그림을 두고 기술에 비중을 둬서 품격을 잃었다고 평했는데 그의 <세한도>를 보면 무슨 얘기를 하려고 했는지 이해가 간다.
이 책에는 19세기 화가인 김수철의 매화 그림, <설죽한매> 가 실렸다.
권신 김안로의 아들이 화가였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이름이 김시인데 혼인하는 날 의금부에 끌려갔다고 하니, 그 후에 아들의 삶이 얼마나 척박했을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여인천하>에서 김안로의 몰락을 재밌게 지켜봤는데 벼슬길이 막힌 아들의 입장에서 보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런 배경 때문인지 김시의 그림은 왠지 먹먹한 느낌을 준다. 

우리 그림이 이렇게도 많고 구구절절한 사연을 담고 있는지 정말 몰랐다.
언제나 인상주의 그림에 감탄하고 화가들의 풍성한 이야기를 부러워 했는데 이제서야 마치 내 것을 찾은 기분이 든다.
아무리 내가 서양문화를 잘 이해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피상적이고 제한적이라는 한계를 느꼈었다.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다 보니 예술을 대하는 관점 역시 다를 수 밖에 없음을 느꼈다.
그렇지만 우리 문화는 내가 한국인이고 한국어를 쓰고 여기서 자라왔기 때문에 다른 어떤 외국인 보다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가슴절절하게 감동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정말 아름다운 우리 문화들이 많이 발굴되어 우리의 일상이 풍요로워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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