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궁궐기행 -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운궁 경희궁 종묘의 건축과 역사읽기
이덕수 글 사진 / 대원사 / 2004년 3월
평점 :
품절


어떤 책을 완벽하게 소화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기도 하다는 걸 깨닫게 만든 책.
6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과 큰 판형이, 무수한 사진들과 함께 정말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서문에서 밝힌 각오가 부끄럽지 않은 책이다.
다만 너무 자세히 쓰려다 보니 지엽적인 부분까지 파고들어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기가 좀 힘들다는 점이 아쉽다.
우리 궁궐에 대한 저자의 무한한 애정이 잘 녹아난 책이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인데 대출이 되는 건 참 다행이지만 (어떤 도서관에서는 대출 불가) 워낙 판형이 크다 보니 책 훼손이 삼한 상태라 안타깝다.
건축 전공자답게 전통 가옥의 건축 양식을 자세히 기술했고 따로 한 장을 할애하여 기본적인 건축 지식도 기술했다는 점이 장점이지만, 솔직히 나는 좀 어려웠다.
워낙 건축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기 때문에 건축 부분이 나오면 대충 넘어가고 역사적인 부분이 나오면 열심히 읽었다.
그렇지만 반복되다 보니 어느 정도 감이 잡히고 덕분에 전통 가옥의 건축법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지식이 생겼다.
우리 궁궐에 대한 책들은 모두 마찬가지지만, 사진이 정말 아름답다.
특히 이 책의 사진들은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들인데 전문 사진사 못지 않게 훌륭한 영상을 선보인다.
얼마나 저자가 애를 썼는지 세심한 배려가 곳곳에서 눈에 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안타까운 것은 역시 일제에 의한 의도적인 궁궐 훼손이다.
이런 걸 보면 당시의 일본 역시 문화재 보존에 대해 상당히 무지했고 보편적인 세계 문화 보전이라는 큰 틀에서 생각하기에는 아직 국가의 역량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프랑스에서는 이집트 원정을 계기로 이집트학이 생겨나고, 인도차이나 점령을 계기로 앙코르 와트 등의 탐사가 활발해졌다고 하는데 야나기 무네요시 등의 일부 학자들이 있긴 하지만 일제의 우리 문화 훼손은 문화에 대한 무지함을 여실히 드러낸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일이다.
황실 복원 운동이라는 기사가 신문에 나면 왠 시대착오적인 발상인가 했는데 요즘 궁에 관심을 갖다 보니 전통 문화를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심정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된다.
종묘제례를 지내려 가는 행렬에 황실의 후손인 이구씨가 왕의 자리에 앉아 있는 사진이 실렸다.
왠지 가슴이 먹먹해지고 만약 황실이 보존됐다면 지키는 사람들이 있으니 우리의 왕실 문화가 훨씬 더 섬세하게 지켜지지 않았을까 싶다.
민주화라는 큰 대의에 비춰보면 특권층의 소멸은 너무나 당연한 명제이지만, 전통 문화의 보존, 역사의 연속성이라는 점에서 생각해 보면 현대 사회에서도 왕실의 존재 의의는 여전히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식민지 경험이 없는 일본이나 영국, 태국 등이 여전히 왕실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까닭이 비로소 이해되는 기분이다.
결국 왕실은 문화의 연속성, 전통의 이어짐을 대표하는 게 아닐까? 

비록 광해군과 흥선대원군은 창덕궁과 경복궁 중건으로 정권을 뺏길 만큼 치명타를 입었으나 그들의 노력 덕분에 두 궁궐이 비교적 온전히 보존되고 있어서 무척 다행스럽다.
반정이 일어나고 권좌에서 쫓겨날 만큼 당시의 궁궐 영건 사업은 보통 일이 아니었구나 싶다.
아관파천 후 고종이 경운궁으로 이어하여 덕분에 경운궁도 어느 정도는 궁궐로써 규모를 유지할 수 있는 것 같다.
경희궁은 거의 흔적도 없이 사라져 책에서도 별로 소개되지 못했다.
너무 많이 파괴되어 복원은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동궐도라는 훌륭한 도첩이 남아 있어 당시 궁궐 모습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복원도 가능케 한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주자학이라는 교조주의에 물들어 결국은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점에서 비판적이 되다가도, 이런 놀라운 기록 문화를 볼 때마다 500년을 지속해 온 힘의 근원을 발견하고 감탄하게 된다.
어떤 책에서는 조선이 임진왜란 후 망했어야 한다고 비난하기도 했지만, 왜란과 호란을 이겨내고 20세기 초까지 굳건히 버텨온 것은 절대로 그 체제가 호락호락하지 않았음을 대변한다.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가지 못한 지나친 주자학의 교조주의가 안타깝고, 순조 이후 등장한 세도정치와 왕다운 왕이 없었다는 점이 슬플 따름이다.
왜 효명세자의 요절을 안타까워 하는지 이해가 된다.
망국의 책임은 누구보다 당시 정치를 대표하는 고종에게 있다고 생각했지만, 책을 읽으면서 망해 가는 나라를 지켜 봐야 했던 마지막 임금의 비애가 절절히 느껴지는 것 같아 고종에게도 면죄부를 주고 싶어진다. 

재밌게 읽은 책이고 100% 다 소화하지는 못했지만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다음번에는 한영우씨가 쓴 <동궐도>를 읽을 생각이고 다시 한 번 궁궐 답사를 나가 봐야겠다.
봄에는 종묘제례도 구경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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